“이 미희 씨 맞으시죠?”
“네, 그런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죠?”
“아, 네. 김 혁수님 아드님인 김 민호 학생 아시죠? 김 민호 군을 최근 때리신 적이 있으시나요?”
“아, 네. 뭐, 때린 건 아닌데요.……. 그냥 좀 말다툼이 있었어요. 뭐가 잘못 되었나요?”
“김 민호군의 친모인 OOO 씨께서 이 미희 씨를 아동학대로 고소 하셨어요. 경찰서에 나와서 조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네, 아동학대 신고요?”
미희는 기가 막혔다. 틀린 얘기는 아닌데, 아동학대라는 단어가 주는 압박감이 컸다. 세상에서 가장 악질인 가해자들에게 주는 주홍 글씨. ‘내가 피해자 아닌가? 하긴, 내 인생 말이 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미희는 가슴 속 깊이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렀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날 낳은 여자의 뱃속부터 잘못 되었을 거야. 저주 받고 태어난 나의 인생. 그러니까 남들 다 채우는 열 달도 못 채우고 일곱 달 만에 세상에 나왔지.’ 미희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해야 했다. 칠삭둥이로 태어나서 유난히 병치레가 많았던 어린 시절, 부모한테 따뜻하게 사랑받지 못했던 유년시절, 그리고 어른이 되었지만 매일 지옥 같은 이 인생을. ‘정말, 내가 죽어야 고통이 없어질까?’ 미희의 눈에 팔목에 있는 자국들이 들어 왔다.
마흔 셋의 미희가 혁수와 동거를 한 지 2년이 되어 갈 무렵, 미희는 경찰서의 전화를 받았다. 일용직 근로자 혁수는 돈 벌이는 좋지 않다. 하지만 전에 같이 살았던 그 놈에 비하면 천사나 마찬가지이다. 혁수는 따뜻한 말은 못하지만, 최소한 미희에게 손찌검을 하진 않는다.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술을 진탕 먹고 와서 욕을 하는 것, 그 정도는 참을 만하다. 사실, 법적으로 전 남편이라는 그 놈을 피해서 사는 곳은 어디라도 좋다. 노래방 도우미를 하던 도중에 알게 된 혁수는 까무잡잡한 얼굴, 다부진 체격 그리고 털털한 웃음이 인상적이었던 남자였다. 노래방에 와서 술을 마시면서 노래는 거의 안 하고 듣기만 했던 사람. 그 사람이 어느 날, 미희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
“내가 나이가 일곱 살 더 많으니까 말 놓을게요. 호칭은 편하게 불러. 오빠라고 해도 좋고.”
“네, 그럼 저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미희와 혁수는 쉬는 날이면 함께 밥을 먹었다. 진상 짓 하는 노래방 손님들 때문에 기분이 나빠진 날이면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 주는 혁수, 미희는 혁수가 참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희야, 너는 아직 젊으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을 잘 찾아봐. 노래방 도우미가 나쁘진 않지만, 술 먹으면 인간들이 별 짓 다 하잖아. 내가 남자라도 꼴 보기 싫은데, 넌 얼마나 짜증나겠냐?”
“오빠, 나도 그러고 싶은데, 어디 나 같은 여자 혼자서 살기가 만만해? 우리 애들한테 전 남편 몰래 용돈도 좀 줘야 하고. 고객센터 전화만 받아선 고시원 월세랑, 생활비 내기도 빠듯한데. 오빠도 알듯이, 첫째 수빈이가 공부를 엄청 잘하잖아. 나 걔한테 뒷바라지 조금이라도 해 줘야 내 맘이 편해.”
함께 밥을 먹은 지 일 년쯤 지나자, 혁수와 미희는 비밀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래? 그럼 너, 나랑 같이 살래? 네가 알다시피 나 돈 없어. 그래도 너 하나는 충분히 함께 살 수 있어. 그냥 숟가락 한 개 더 얹어놓고, 밥 먹으면 되잖아? 우리 애들이야 이미 고등학생들이니 다 컸고. 그냥 걔들이랑은 서로 불편하지 않게만 하면 돼. 애들도 뭐, 나랑 자기 엄마 이혼한 것도 다 알고, 한 달에 두 번씩 엄마 만나러 가는 거니. 가끔 애들 밥이나 해 주고. 다 큰 아들들이라서 나랑도 별 말 안하고 산다.”
“오빠, 그 말 프러포즈 같잖아. 진짜, 오빠네 집에서 나 살아도 돼? 그래도 될까? 애들이 싫어하진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