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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종달이 Sep 28. 2023

나는 대한민국 영어교육의 잡초다.

모르겠고, 일단 돈이나 벌자.

"얘들아, 이건 수능에서 무조건 나오는 거야. 알지? 1등급 킬러 문제다."
"야, 졸지 마! 닭이니? 이것도 몰라? 몇 번을 말해?"

"아, 선생님, 죄송해요."

내가 23살에  대학생이니, 고등학생 학생들 이래 봤자 몇 살 차이가 나지 않는다.
더더구나 키는 한참 작고 몸집도 조그만 여자 선생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남학생들은 내게 등짝을 맞고, 욕도 먹어가면서 나한테 시달려야 했다.

숙제를 안 하거나, 졸거나, 목표했던 점수를 못 내면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그 덕에 내 학생들의 성적은 고공행진이었다. 




나는 집안의 유일한 '경제원'이다. 

남들이 말하는 '소녀 가장' 까진 아니어도 우리 집에서는 '나' 아님 돈을 정기적으로 벌 사람이 없었다.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지만.  아빠는 지금 회복 불능 상태.
엄마 역시 그런 아빠 옆에서 아빠 챙기고 집안 챙기면서 정신없이 살아 보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으니...


정기적인 수입원은 나 일 수밖에 없다.
휴학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고 최고의 방법이다. 


"엄마, 나 말리지 마. 과외랑 학원까지 뛰고, 짬짬이 피아노 레슨도 하고, 애들 논술도 가리킴 돈 금방 벌 거야. 걱정하지 마." 


엄마는 미안하다는 말을 수 십 번 했다. 아울러 내 건강도 걱정했다. 
하지만, 결코 엄마는 내 휴학을 말릴 수 없었다.
나 아님, 정말 우리는 오갈 데 없이 하루를 버티지도 못할 테니까.






밤이 되면, 고등학생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여든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 고등학생 그룹 과외를 한다. 고등학교 3학년 2명 상위 클래스다. 고등학교 1학년 중하위와 하위권 학생이다.



수준이 극과 극이지만 전혀 문제없다. 
학생들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기 때문에 전혀 문제없다. 
맞춤식 수업이 가능하고, 정확한 피드백이 가능, 집중적으로 단기간 성적 올리기 가능한 것이 '과외' 아니던가??

낮에는 정철 어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영어가 전공이 아니지만, 상관없다. 
원장 선생님이 나의 시강을 보고 흡족해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과외했던 것이 차곡차곡 쌓였나 보다. 
초등학생들부터 중학생까지의 영어는 너무 쉬웠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나를 좋아한다. 나도 아이들과 코드가 잘 맞는다.


잠깐 시간이 될 때는 피아노 레슨을 한다. 여섯 살부터 피아노를 쳤던 나는 
현재 밴드, 성가대의 반주자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피아노가 적성에 맞는다.
오죽하면 '어머님, 피아노 시키셔야 해요. 전공으로요.'라고
음대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을까?

하지만, 사춘기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공부하겠다고 엄마랑 싸웠다. 피아노를 취미로만 한다고 선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피아노를 전공자들 사이에서 인정받을 만큼 연주할 수 있으니, 교회에서 레슨과 반주를 정식으로 요청했다. 


'종로 학원'에서 논술 선생님으로 재택 첨삭 및 지도도 한다. 

문화 일보 대학생 인턴기자도 꽤 짭짤하게 원고비가 들어온다. 

며칠 전에는 교회에  지인분들을 통해서 연락이 왔다. 초등학생 6학년 그룹 과외와 5학년 과외도 부탁한다면서. 문제없다. 

휴학생인 내게, 돈을 벌겠다는 내게 '과외 요청'은 무조건 오케이니까.  

더더구나 한 시간 안에 몇 명을 가르치면 돈은 더 쉽게 벌 수 있으니까.....

이 대로만 하면 돈은 금방 모을 것 같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은 소위 말해서 '영포자 문제아' 아이의 1:1 과외를 한다. 


선생님, 다른 거 필요 없고요, 중학교 과정만 마쳐 주세요.
애 아빠가 애네 고모 있는 미국으로 보낸다는데.
이 녀석이 정신을 덜 차려서요..

그냥, 교과서만 딱 떼게 해 주세요.
교육비는 생각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가 부족하지 않게 드릴게요.

이 녀석만 사람 만들어 주세요.



시내에서 가장 큰 한정식을 하는 사장님 댁의 아들은 '문제아'였다.
고등학생이지만,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자식이 하나뿐인 이 사장님 부부는 결혼 후, 힘들게 얻은 이 아이의 방황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다. 

학교생활은 '자퇴'와 '퇴학' 사이에서 위태로웠고 아이의 성적은 물어볼 수도 없었다. 노란색으로 물들이고 담배 냄새 푹푹 나던 아이의 첫인상. 

학생인지, 아저씨 인지.. 


'휴, 내가 이 녀석을 어떻게 사람을 만들어? 부모도 못한 것을.. 모르겠다. 일단 돈이나 좀 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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