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종달이 Mar 10. 2024

재혼 회사 소개의 첫 남자

내가 그렇게 별 볼일 없어?

재혼 회사 매칭 매니저의 소개로 첫 번째 만나게 된 남자는 요식업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항상 그렇듯이, 첫 번째의 경험은 두려움 속, 항상 떨리고 설렌다. 

'첫인사를 어떻게 하지? 뭐라고 소개할까? 연락처를 언제 공개할까? 무슨 이야기로 대화를 해야 하지?' 

끝나지 않는 물음표를 멈춘 것은 바로 소개남의 등장이었다.


내 앞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상대 남자는 굉장히 피곤한 듯한 얼굴로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하고 있는 일 이야기, 어떻게 요리를 하게 되었는지부터 가족 이야기까지. 

어색함이 싫어서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한 시간 넘게 한 대화의 마지막은 상대 남자의 아이 이야기. 사춘기 지만 아빠와 잘 지내는 아이를 홀로 키우는 아빠의 하루 일과, 소소한 육아정보까지.. 결국 그 남자와 나는 비슷한 나이대의 아이를 키우는 공통점으로 수다 떠는 흔한 엄마들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내 커피의 얼음이 모두 녹아갈 때쯤, 나는 이 불편한 자리를 얼른 벗어나고 싶었다. 

물론, 상대방 남자도 똑같은 생각이었을 거다.

한 시간 넘게 질문을 하면서 대화를 한 나의 노력과는 달리, 그는 나에게 전화번호를 묻지 않았다.

물론 내가 그 남자를 맘에 들어한 것은 아니었는데, 뭐랄까? 

애프터 신청을 못 받은 비참함. 자존심이 순간 무너졌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기분이 별로지?'


오래간만에 풀 메이크업을 하고 한껏 옷차림에 신경을 쓴 나의 노력이 헛수고로 변해 버렸다. 


어젯밤 얼굴에 올려놓았던 마스크 팩의 쓸모없음. 대화의 주제를 고민한 나의 노력의 헛됨. 

재미없는 이야기를 한 그를 무안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던 억지웃음과 리액션. 

뭐, 이혼한 남자들, 이혼한 여자들의 영양가 없는 대화... 


'내가 이 정도야? 어차피 전화번호를 공개했다고 해도 계속 만나볼 사람은 아니었는데. 

자기가 뭔데, 전화번호도 안 물어?' 


재혼 회사 소개의 첫 번째 남자는 그렇게 나에게 스스로를 '별 볼일 없는 이혼녀'로 몰아가면서 

별로 높지 않았던 내 자존감을 좀 더 바닥으로 내려오게 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첫 번째 만남 이후, 나는 갑자기 나를 평가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별 볼일 없었어?



내 대화의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아이 밥을 혼자 차려 먹게 해서 항상 맘이 아프다는 그에게 

적절한 리액션을 덜 했던 내 잘못?

커피를 너무 빨리 마신 것인지? 내 옷이 너무 화려했는지? 

화장이 떴는지? 머리띠를 하고 간 것이 잘못인지. 


그는 배가 불뚝 나온 50대의 동네 아저씨. 

다크 서클이 한껏 내려온 피곤한 얼굴로 대화를 할 때마다 

손을 어쩔 줄 몰라했던 남자. 전 부인에 대한 안 좋았던 기억이 한껏 있었던 남자. 

'그런 그 사람이 나를?' 


솔직히 그 남자가 내 전화번호를 물었다면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을 텐데. 

40대 중년이 되어도 '누군가의 이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충분히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이혼녀'이었기에 나의 자존감은 그만큼 바닥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나는 갑자기 궁금해졌다. 

전 남편은 어떻게 이 불편한 대화와 만남을 계속해 가면서 

여자를 만나서 사랑에 그렇게 홀딱 빠질 수 있었을지... 




첫 번째 만남 이후에 매칭 매니저는 또 다른 남자를 소개해 줬다.

그 남자와의 만남 일정을 정하면서 나는 떨리는 설렘보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직면해야 했다.


'또 전화번호 신청을 못 받음 어쩌지?' 


뭔가 대단한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한 시간 남짓한 대화 속에서 '나를 좀 더 궁금해하지 않은 타인'에게 

나는 알게 모르게 상처받고 있었다. 


돌아보면, 그런 작은 상처와 낮아진 자존감은 

내 마음속 가득했던 '이혼녀'라는 피해 의식의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당차게 했던 '이혼' 앞에서 

숨겼던 나의 진심을 보게 되었던 날, 

그것은 이혼한 지 6년이 지나고 만난 '재혼회사의 소개남' 과의 만남이었다. 


낯선 남자가 나의 전화번호를 묻지 않아서 화가 난 것이 아니라 

나는 '이혼'이란 단어 앞에서 결코 스스로 

용감하지도 당당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나 사랑해요'라고 했던 것은 

결국 위선 된 메시지였다. 

나는 '이혼한 나'를 미워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이전 02화 전 남편에게 350만 원 복수를 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