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 1
사물과 우리의 기이한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2002년, 첫 다큐멘터리 [문자]를 촬영하러 간 이집트 룩소르 골목의 한 작은 호텔에서 여장을 풀 때였다. 그 전 열흘 남짓 열사의 이란 도시들과 시리아, 레바논, 카이로, 사카라 등을 돌아다니느라 나는 지쳐 있었다. 평균 온도 40도에 육박하는 한 여름의 중동이었다. 햇병아리 다큐멘터리 피디로서 버거운 첫 해외촬영. 계획했던 일정은 벌써 꼬였고, 제작비는 오버되고 있었다.눈을 뜬 아침부터 눈을 감는 밤까지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늘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아마 꿈에서도 불쌍한 내 영혼은 쉬지 못하고 시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작은 호텔에는 신기하게도 로비의 한 쪽에 기념품 가게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길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들어서자마자 작고 까만 고양이 신들이 지친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카이로의 국립박물관과 룩소르의 신전들에서 오리지널 조각상들을 보았다. 당연히 진품이 아니었다. 제법 잘 만들었지만 그래도 관광객용으로 만들어진 기념품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숨겨진 성소에 발을 들인 고대의 여행객이 된 느낌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암흑의 실루엣.
관능적으로 흘러내리는 허리의 선.
꼿꼿이 고개를 치켜든 고고한 얼굴.
금빛으로 빛나는 눈.
발밑 제단에 적힌 금빛 상형문자의 마법 주문.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신들이 나를 보고 있었다. 운명. 나는 말 그대로 홀려서 이 고양이 신들을 바라보았다.
룩소르에서의 며칠 촬영 기간 중 숙소로 돌아오면 늘 그 고양이 신들을 만나러 갔다. 마음속 작은 번민들은 있었지만 데려온다는 생각은 그때도 하지는 못했다. 값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부피. 앞으로 남은 두 달여의 긴 여정. 짐도 많았고 앞으로 다녀야 할 곳도 많았다. 왜 이 고양이 신들이 이토록 나를 홀리는 것일까? 고양이 한 마리를 칠 년째 키우고 있어서일까? 전생에 내가 고양이라도 되었던 것일까? 나는 답을 알 수가 없었다.
호텔을 떠나는 아침 그 경황없는 시간 속에, 결국 고양이 신들을 업어 오는 중대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그것은 우리가 사랑에 빠질 때 하는 결단과 똑같았다.
도저히 그녀를 두고 혼자 떠날 수가 없다.
이렇게 그녀를 떠난다면 영원한 이별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우리는 함께여야 한다.
한 뼘 크기의 바스트 두 개, 그리고 가로 촛대 위에 서 있는 바스트 하나. 이 작은 세 신들은 나와 함께
시나이 사막을 지나,
수에즈 운하를 건너,
요르단,
이라크,
이스라엘,
프랑스,
도버 해협,
영국을 거쳐 와서,
지금도 내 뒤의 책장 위에서 나를 내려보고 있다. 이 신들의 보호가 있었기에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을까?
그때는 몰랐지만 바스트는 미의 여신이었다. 아름다움은 평생 내가 찾아 헤맨 주제중 하나였다.
돌이켜보면 내 첫 수집품으로 그렇게 절묘한 선택은 없었다.
사물과 우리의 기이한 인연, 그것은 운명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