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상황을 마주하든 먼저 부정적인 결론부터 내리는, 대체로 우울한 사람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든 늘 어둠을 먼저 보는 눈을 지니고 있다. 반쯤 찬 물 잔을 보면 ‘반이나 차 있네’가 아니라 ‘반밖에 없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올해 초 잇따른 불운은 그런 내 성향을 더 깊게 만들었다.
원래도 심한 알레르기로 인해 환절기마다 고생하던 터였는데, 직장을 옮긴 뒤 생활 패턴이 무너지고 건강은 더 나빠졌다. 몸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버텨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마다 손이 마비되는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잠자리가 불편해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여겼지만, 증상은 점점 심해져 키보드를 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혹시 류마티스일까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진단을 받는 것이 무서워 병원을 찾는 일조차 미뤘다. 평생 앓아온 알레르기만으로도 벅찬데, 또 다른 병까지 얻게 된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마음은 무너지고, 가족에게조차 날카롭게 굴었다.
결국 전문 병원을 찾았지만, 류마티스는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안도감은 잠시뿐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다는 말은 곧 치료법도 불분명하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시간과 비용을 쏟아 부은 끝에, 신경 쪽 문제라는 진단을 받았다. 치료로 증상은 조금 호전되었지만 완전히 나아지지는 않았다. 애쓴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 마음이 침잠했다.
그러던 중 류마티스 병원에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의 오랜 알레르기 증상에 대해, 대형병원에서 면역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대형병원에서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만만치 않은 진료비 앞에서 다시 한 번 마음이 무거워졌다. 게다가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낙담했다. ‘몇 십 년간 낫지 않았던 병이 정말 나을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하지만 문득 깨달았다. 예기치 못한 증상으로 고통받는 과정에서, 평생 나를 괴롭히던 지병을 해결할 새로운 실마리를 찾았다는 사실을.
그 순간은 마치 가을 끝자락의 인디언 서머 같았다. 추운 겨울이 닥쳤다고 믿었던 시간 속에, 불현듯 따뜻한 햇살이 비치는 것 같은 경험이었다. 새로운 고통 속에서 오래된 문제의 답을 찾았다는 것, 그것이 내 인생의 예상치 못한 선물이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부정적인 생각을 먼저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번 일을 통해 배웠다. 절망의 한가운데에도,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희망의 씨앗이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때로는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 자체가 더 큰 해결책으로 가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인디언 서머는 길어야 며칠, 때론 하루도 채 머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온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가올 겨울을 다르게 맞이한다. 나 역시 이 작은 희망의 경험을 품고, 앞으로 닥칠 어려움들을 조금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