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Five Vibes

안녕, 2025 어서 와, 2026

by 몽중몽

올해의 마지막 주제 : 25and26 / 25or26



올해는 계절의 발걸음이 유난히 가벼웠다.

길고 숨 막히던 여름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 가을은 인사할 틈도 없이 짧게 스쳐 지나갔고 아침 공기에는 벌써 겨울 내음이 배어 있었다.

계절만 빨랐던 게 아니다.

‘이제 막 새해가 시작됐구나’라고 느낀 게 며칠 전 같은데, 이렇게 또 연말의 문턱에 서 있다.



생각해 보면, 2025년이 막 열렸을 때, 나는 여러 계획을 품고 있었다. 종이에 적어본 적도 있다. 이루고 싶은 일, 바꾸고 싶은 습관, 더 잘해보고 싶은 것들. 새해의 시간이라는 새하얀 바탕 위에, 무언가를 채워 넣을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간 날들을 차분히 들여다보니, 그중에서 온전히 이뤄낸 것은 많지 않았다.

가령, 작심삼일의 단골손님처럼 나를 떠나지 않은 다이어트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잠시 줄었던 체중은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새로 도전했던 컴퓨터 조립은 더 우울했다.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다가 두 대나 고장 내고서야 손을 들었다. 결국 내 손으로 만든 ‘슈퍼 컴퓨터’ 대신, 남이 쓰던 중고 데스크톱이 책상 위에 놓였다. 나의 모험은 그렇게 조용히 끝났다

실패라고 말하면 마음이 아프고, 그렇다고 실패가 아니었다고 하기엔 너무 분명한 결과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그냥 ‘올해의 작은 해프닝’ 정도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렇지만 한 해를 돌아보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 단편들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변수를 던져주는 법이다. 계획한 것들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 빈틈 사이로 뜻밖의 새 길들이 조용히 열렸다.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었던 창작 강좌가 그랬고, 그 수업을 통해 플랫폼에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도 그런 길 중 하나였다.

글을 쓰면서 스스로 놀랐던 것은, 세상에 그려 넣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사실이었다. 상상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자, 그 인물들에게 더 완성도 있는 세계를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 욕심은 곧 공부로 이어졌다. 가상 역사 배경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선 실제 시대의 결을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내가 모델로 삼은 시대를 파고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고증을 맞춰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자료를 찾고 문헌을 읽는 일이 즐겁게 느껴졌다. 마치 오래된 문장 속에서 내가 쓰려는 세계를 위한 작은 씨앗들을 하나씩 발굴해내는 듯한 기분이었다.

역사를 파고들다 보니, 그 시대를 지탱하던 사람들의 믿음, 즉 '신화'의 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신화(神話)를 소재로 한 판타지를 쓰고 싶다는 또 다른 꿈은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신화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자, 내가 알고 있던 것은 생각보다 단편적이고 얕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관련 지식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겸손히 주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는 신화를 다루는 글은 잠시 접어두고,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부터 완주해보기로 마음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 신화를 비롯한 여러 신화에 관한 공부를 조금씩 이어가고 있다. 언젠가 다시 그 세계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돌아보면, 나는 올해 무엇을 이루었나.

좌초된 목표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의외의 자리에서 작은 싹들이 돋아났다.

글을 쓰기 시작한 일, 그리고 그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공부를 시작한 일.

처음에는 계획에도 없던 길들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올해를 가장 의미 있게 만든 순간들이었다. 내가 어느 쪽으로 가고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 걷고 있는 이 방향이 나쁘지 않다는 감각만큼은 확실히 있다.

내년에는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그리고 조금 더 깊고 넓은 공부를 해나가고 싶다. 신화를, 이야기의 뿌리를 이루는 거대한 상징들의 세계를 하나씩 탐험해보려 한다. 그 공부를 토대로 또 다른 이야기를 써낼 수도 있을 것이다.

소설일지, 에세이일지, 아직은 모른다. 다만, 올해보다 더 견고해진 마음으로 다음 발걸음을 뗄 준비는 되어 있다.



2025년은 조용히 흘러가지만, 그 안에는 여러 번의 실패와 몇 번의 시작, 그리고 느리지만 분명한 성장의 흔적이 스며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올해를 실패의 해라고 부르지 않으려 한다. 오히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새로운 방향을 발견한 해라고,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이제 곧 2026년이 온다. 나는 그 앞에서 조금 들뜬 마음으로 인사를 준비한다.

안녕, 2025. 어서 와, 2026.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또 나만의 속도로 걸어가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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