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찌개의 온도
일요일 늦은 오후.
저녁 찬 거리를 걱정하는 아내는 으레 김치찌개를 말한다.
묵은지가 남아 있고 돼지고기만 조금 있다면
반찬 없이도 그날의 밥상은 손색이 없다고 한다.
그 말엔 틀린 데가 없다.
시골 어머님이 보내주신 묵은지와
투박하게 썬 돼지고기를 넣고
바글바글 끓여낸 김치찌개는
기운 빠진 하루 끝에 이상할 만큼 에너지를 준다.
매운 국물 한 숟갈이면 속이 시원해지고,
밥 한 공기쯤은 금세 비워진다.
자취방 시절에도 김치찌개는 단골 메뉴였다.
별다른 레시피도 없었다.
김치, 참치캔, 조미료.
맛이 부족하면 라면 스프와 라면 사리를 넣어
허기를 채우고, 그저 마음을 나눴다.
삼삼오오 친구들과 숟가락을 부딪치며
허름한 밥상 위에서 우리는
함께함을 배웠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된장찌개 쪽에 더 마음이 머문다.
하얀 쌀밥에 된장찌개의 두부와 감자를 퍼내
숟가락 바닥으로 슬쩍 짓이기듯 으깨 쓱쓱 비벼 먹는
그 구수한 맛엔 오래된 익숙함이있다.
자극은 덜하지만, 속은 편안하다.
마치,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어머니 같다.
시골집 소반 위, 양은냄비에 담긴 된장찌개.
상추쌈 몇 장과 함께
밥 한 공기를 높게 담아 내어주시던 어머님의 손.
그 잔잔한 저녁의 풍경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자극적이지 않고, 언제 먹어도 마음이 놓인다.
집으로 돌아온 듯한 안도감이 있고,
쓸쓸한 날이면 그 그릇 하나로도 채워지는 저녁이 있다.
김치찌개는 애인 같다.
첫입부터 화끈하고, 입안에 오래 남는다.
속을 들썩이게 만들고, 쉽게 잊히지 않는다.
위로보다는 활력, 정적보다는 동적이다.
가끔은 그런 밥상이 필요하다.
삶도 그러하다.
어느 날은 익숙한 품이 그립고,
어느 날은 그 익숙함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잔잔한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고,
조금은 매운 자극이 그리운 날도 있다.
그래서 나는, 두 찌개 사이에서 오늘의 마음을 고른다.
속을 달래고 싶은 날엔 된장찌개를,
숨을 깨우고 싶은 날엔 김치찌개를.
그리고 그 둘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살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