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맛은 항상 옳다
나는 흰 쌀밥에 편견이 없다.
갓 지은 밥 한 공기만으로도 이미 완전한 한 끼가 되고,
빈 그릇 같은 마음으로 어떤 맛이든 기꺼이 품어낸다.
생일상에도, 차례상에도, 그리고 나의 밥상에도
흰 쌀밥은 언제나 한자리를 차지한다.
겉보기에는 소박하지만, 그 위세만큼은 결코 작지 않다.
어머니는 언제나 밥공기보다 더 높게,
꾹꾹 눌러 담아 주셨다.
그 덕에 나는 지금도 남들보다 밥을 더 많이 먹는다.
그 흰 쌀밥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담백한 단맛이 반찬과 어울려
조용히 입 안에 조화를 이룬다.
밥맛이 가장 좋은 때는,
황금빛 들녘에서 무르익은 나락을 바로 도정한 햅쌀밥일 것이다.
그 한술에는 계절의 꽃, 바람, 햇볕이
차곡차곡 스며 있어
천하일미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요즘 들어 의사는 나에게 밥을 줄이라고 한다.
콜레스테롤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밥은 내 식탁의 중심이자,
계절의 노고가 고스란히 담긴 은혜다.
그래서 나는 ‘밥맛이 없다’는 말을
가급적 쓰지 않으려 한다.
그건 계절과 땅의 수고를 외면하는,
감사함을 잊은 말이기 때문이다.
나는 즉석밥도, 압력솥 밥도,
가끔 설익은 냄비밥도 나름의 맛으로 즐긴다.
햅쌀밥과 김 한 장,
된장찌개에 비벼 먹는 밥,
라면 국물에 말아 먹는 식은 밥,
김장 날 무쳐낸 김치와 함께한 밥,
그리고 빈한한 시절,
마가린과 간장 몇 방울로 비벼 먹던 밥까지.
모두 내 삶을 채워준 맛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온 힘이었다.
홀홀히 비워낸 그릇 속에는
배부름만이 아니라,
살아온 계절과 기억이 고요히 쌓여 있다.
사람은 결국 홀홀단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외로운 길을 묵묵히 지켜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밥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