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예찬

BITTERSWEET, 인생의 맛

by Mr Godot


나는 아직도 모교 도서관 3층 자판기 앞에서 뽑아 마시던 커피의 맛을 기억한다.
적당한 양의 커피, 프림, 설탕이 섞여
그 주변 어느 자판기보다 균형 잡힌 맛을 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자판기 커피였지만,
그 시절의 나에겐 가장 따뜻한 위로였고,
도서관의 긴 시간을 버티게 해 준 작은 연료였다.

학교 다닐 때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주머니에 동전을 넣고 다녔다.
동전이 없는 친구들에게 몇 개를 건네며
은근히 선심을 쓰기도 했다.
그 시절의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동전 몇 닢으로 나누던 우정의 맛이었다.

요즘은 자판기 커피가 사라지다시피 했지만,
가끔 사무실의 믹스커피가 그 자리를 대신해 준다.
고단한 오후,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바디감의 그 한 잔은
잠시라도 어깨를 펴고 다시 힘을

내게 하는 조용한 동반자다.

그리고 아침이면 원두커피를 마신다.
여름엔 차갑게, 겨울엔 뜨겁게.
계절은 달라도 하루의 시작은 늘 커피와 함께 열린다.
누군가는 그것을 ‘생명수’라 부른다.
나 역시 동의한다.
그 검은 물 한 잔이 내 정신을 깨우고,
다시 오늘을 살아낼 힘을 준다.

커피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
머그잔에 따뜻한 김이 오르는 동안
삶의 속도는 잠시 늦춰지고
생각은 잔잔히 가라앉는다.
짧은 순간의 멈춤이지만,
그 몇 분이 하루의 무게를 조율해 준다.

커피는 쓴맛을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쓴맛 끝에는

은근한 단맛과 깊은 여운이 따라온다.
삶도 그러하다.
견디고 삼킨 시간 끝에
비로소 고요한 단맛이 찾아온다.

커피는 고독의 음료이기도 하다.
혼자 앉아한 모금씩 음미할 때
잔 속의 검은 물은 묵묵히 나와 함께한다.
대화가 사라진 순간에도
커피는 침묵을 채우는 작은 동반자다.

수단에 머물던 시절,

길거리 노점상에서 팔던 커피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은 그것을 ‘에티오피아 여인’이라 불렀다.
모닥불 위 작은 프라이팬에

콩을 볶아 돌절구에 찧어 내주던 즉석의 커피,
그 한 잔은 고단한 타국 생활의 위로였다.
나무 그늘 아래 현지인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나누던 그 진한 커피는
삶을 잠시나마 즐겁게 만드는 축복이었다.

사람을 만날 때도 우리는 자연스레 커피를 마신다.
“커피 한 잔 하자”라는 말은

곧 “이야기를 나누자”는 초대가 된다.
커피는 대화의 문을 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혀 주는 매개다.
고독 속에서도, 관계 속에서도
커피는 언제나 자리를 지킨다.

"커피"
그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추억을 잇고, 오늘을 버티게 하며,
고독을 품고, 대화를 열어 주고,
쓴맛 끝에 단맛을 가르쳐 주고,
세계를 잇고, 예술을 불러오는,
BITTERSWEET, 인생의 맛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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