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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Mar 05. 2024

100-2 실직

잠시 쉬어가기

 봄이 오는 걸까? 따스한 햇살을 바라보며 옛 직장동료와 커피를 마셨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커피숍 옆 하천에 있는 산책로를 잠시 걷기로 했다. 산책로 입구. 돌계단 앞에서 순간 주저했다. '한 번에 확 내려가버릴까? 아님 무릎 상태에 맞게 천천히 내려갈까?' 잠시 주춤거리니 그녀가 손을 잡아 부축해 준다.

“선생님! 이것도 못 내려오면 어떻게요?”

넓적하게 쌓아 올린 5칸의 돌계단이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20대 중반이 지났을 때, 나는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유아교사로 전향했다. 유치원, 어린이집, 육아를 할 땐 학습지 교사까지. 아이가 좋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들과 함께 있으면 행복한 에너지를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소비하기도 한다.

 그리고 작년 10월을 끝으로 나는 좋아했던 일을 그만두었다. 많은 아이들과 매일 함께 할 수는 없지만 일을 하느라 제대로 살피지 못한 내 아이가 남았다.

“엄마! 왜 일하러 안 가?”

가끔 아이가 묻는다. 그 말이 섭섭하게 들리기도 하지만 이제는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다. 그렇게 3년 전에 비해 무력해진 내 모습을 분석해 본다. 뭐가 문제일까? 체력적 한계를 느낀다고 이렇게 의욕이 없어지는 걸까? 이 나이에 이젠 어디서 일을 해야 할까? 문득 ‘중년의 우울감이 이런 건가’하는 생각도 든다.

 시어머니는 해마다 지인분들과 해외여행을 다니고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다녀야 한다!”며 국내 여행도 자주 즐기신다.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새벽 독서를 하고 새로운 도전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주변에서 “선생님은 뭐가 그리 불안해요?”, “너는 연락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는 모습이 정말 부러워, 요즘은 어떤 계획이 있니?” 등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그리고 실직한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서관 문화센터를 뒤지며 작은 무언가라도 잡고 늘어지고 싶기도 하다.      

 일을 하며 피곤할 때, 퇴근 후 아무것도 못하고 잠시 소파에 누워있으면 퇴근해 들어오는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야! 그냥 관둬라! 하는 거 보면 니 병원비 벌려고 다니는 것 같다.”

그렇게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남편의 비아냥에 편히 쉬지 못하고 집에서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러다 우연히 집안일을 하며 손가락이 다쳐 직장생활을 접었다. 실직한 지 두 달이 지날 때쯤 남편은 다시 이런 말을 했다.

“어차피 굽어진 손가락은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한다. 나도 야구하며 손가락 다쳐서 지금도 굽혀져 있다. 이제는 뭐 할 건데? 니는 항상 뭐라도 준비하잖아”

밉상. 밉상. 완전 밉상. 남편은 늘 말을 저렇게 밉살스럽게 했다. 평생 일 안 할까 봐 걱정되는 걸까? 그럴 때면 내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관심 꺼라! 나한테 웬 관심이야? 나 좋아해?”라고.

 애정 표현이 낯간지럽다고 정말 싫어하는 남편은 기겁하고 도망간다. 하지만 그것이 유일하게 남편의 잔소리에서 해방될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지금은 너무 좋다.


#책강대학#백일백장#16기#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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