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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Mar 08. 2024

100-5 우리는 남매

남매는 서로를 건들지 않는다.

벽이라고 해야 할까? 한밤중이라 해야 할까?

오전 2시 30분쯤 갑자기 잠에서 깼다. 뒤척이며 다시 잠들고 싶었지만 그럴수록 정신이 맑아졌다. ‘그래, 그냥 일어나자!’ 예전에 이시형 박사님의 책을 있었을 때 잠이 오지 않으면 굳이 잠들려고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글귀를 읽은 적 있다. 그것 또한 본인의 시간이라는 것. 이후 나는 잠이 들고 깨는 시간에 집착하지 않았다. 책상 의자를 꺼내 앉으며 휴대폰을 들어 미확인된 메시지를 정리했다.


어젯밤 10시쯤 남편의 카톡 메시지가 와 있다. “잘 살아라 자갸~ 실어두” 아이를 재우는 시간. 내 카톡은 9시 이후로 무음이다. 아이와 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기에 아이가 어릴 적부터 방해금지가 설정되어 있었다. 순간 오만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남편 주변의 친구가 자살하기도 하고 우울증을 호소하는 친구들도 있어 괜히 신경 쓰였다. 그러나 남편의 처지를 생각하니 전혀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답장을 보내야 하나?, 당장 찾아 나서야 하나?’ 일단 카톡을 넣었다.

“남편아, 니 핸드폰으로 누가 장난치노?”

1시간 후 남편에게서 답장이 왔다.

“뜬금없이 뭔 장난?”

내게 보낸 메시지를 짚어주니 친구에게 넣는 걸 잘못 넣었다고 했다. 남편의 낯선 말투. 나한테는 항상 “야!”라고 불러서 아이 첫마디가 엄마가 아닌 “야!”라며 나를 불러 아이 첫 단어의 설렘과 기쁨은 경험해보지도 못했었다.

또한 평소 남편의 친구 관계는 오래된 친구라 그런지 서로를 흠잡거나 시비를 붙이며 즐기기에 아이에게는 민망한 아빠 모습이었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으니 섣불리 따지지도 못하겠다. 그리고 남편은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개인사업을 한 지 3년이 된다. 1인사업체라 홀로 거래처 접대와 영업, 물품 배달까지 하니 일정을 물어볼 곳도 없다. 대개 저녁 술약속이 있으면 '접대'라는 명목으로 마사지 샵, 주점을 다니기도 하고 만취해 사무실에서 잔다고 했다. 이제는 약속이 있는 날은 공고된 외박이기에 나 또한 관심을 끊은 지도 오래다. 물론 정상적인 부부관계는 존중과 예의를 지켜야 함을 안다. TV에서 방영하는 부부 소통프로그램도 많이 봤다. 그러나 나 혼자 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다. 그저 하숙생처럼 드나드는 남편이지만 내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누구 한 명은 굽히고 살아야 했다. 소싯적 대단한 성격이면 무엇하랴, 결혼하면 새로운 세상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것을.


이런 일도 있었다. 신혼 한 달째, 말없이 외박하고도 느긋하게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들어 온 남편. 출근하려는 내게 국밥이 맛이 없어 정말 짜증 났다며 아침을 차리라고 했다. 그날 우연히 시누와 통화하다 황당한 아침 사건을 이야기하자

“술이 너무 취해 모텔에서 잤겠지, 당당하니까 사실대로 말하지 않겠어? 길에서 자는 사람도 있다더라. 속이 많이 쓰리겠네. 그래, 지금은 괜찮아졌다니?”

‘가재는 게 편이고,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님을 그날 다시 한번 실감했었다.     


아침 6시쯤, 남편에게서 다시 카톡이 왔다.

“라면 물 올리라!!!!”

그 당당함이 이런 건가 보다. 집으로 들어온 남편이 나를 보며 갑자기 장황하게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증거도 없고 발뺌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어떻게 이길 수 있으랴? 그렇게 나는 남편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괜찮다. 남편아! 변명하려고 애쓰지 마라. 거짓말도 잘하는 니한테 내가 어떻게 이기겠노? 단지 나니깐 너랑 살아주는 거다. 그런 일로 몇 날 며칠을 곱씹는 여자도 있다는 걸 잊지만 마라”

그렇게 밉상 남편은 끓여진 라면을 챙겨 식탁에 앉으며 일상적인 대화로 분위를 전환시켰다.


#책과강연#백일백장#16기#우리#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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