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일을 끝내놓고 에너지가 바닥나 재충전을 위해 TV를 켰다. 평소에는 무선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 들으며 움직이기에 TV를 볼 일은 거의 없다. 가끔 세상이 어떤 것들을 즐거워하고 재미있어하는지, 요즘 트렌드가 궁금할 때 TV를 켠다. 사실 오락프로나 드라마도 끝까지 보지 못한다. 공감이 되지 않으니 재미도 없다. 결국 다큐나 시사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소모한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매번 이상한 사람 취급한다. TV 취향도 다르니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상극인가 보다. 그래도 괜찮다. 감정이 메마른 여자라 비아냥거려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아닌 건 아니니깐.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는데 건강프로그램이 눈에 띄었다. 고지혈증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은 이전부터, 나는 작년부터 고지혈증 약을 복용 중이다. 그리고 나는 관절염과 하지정맥류 약도 추가로 먹고 있다. 자연스럽게 혈관 건강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방송 내용 결론은 치매가 유전이기도 하지만 고지혈증, 관절염, 만성 염증이 후천성 치매 확률을 높이기도 한다고 했다. 만성 염증은 20대부터 있던 것. 누구나 가지고 있다기에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순간 머리가 멍했다. 일반적 통계로 ‘뇌혈관, 뇌졸중’이라는 걸릴 확률이 낮은 질병만 생각하고 확률이 높은 '치매'는 생각지도 못했다. 단지 우리 집안에는 치매가 없다는 이유로. 고령화 시대 식습관도 변화한 세상에 살면서 현실을 간과하고 있었던 거다.
문득 저녁마다 반주로 마시는 술이 늘고 있는 남편이 떠올랐다. 알코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유독 기억력이 떨어지는 남편. 요즘은 당뇨병을 진단받아 약을 먹으며 유독 술 양이 늘었다. 과거 시아버님은 남편이 30대 초반쯤 당뇨합병증으로 온 파킨슨 병으로 왼쪽 근육이 갑자기 마비돼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3년을 병상에 누워계시다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런 남편에게 건강관리에 대해 몇 번을 당부했지만 돌아오는 말은 한결같았다.
“야! 요즘 약이 얼마나 잘 나오는데. 조그만 약 한 알이면 다 잡힌다.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일하는 건 맛있는 것도 먹고 즐기려고 사는 건데, 뭐 하러 먹고 싶은 걸 참으면서 사냐? 니나 건강하게 오래 살아라!”
과음, 폭식, 기름진 음식, 짠지를 좋아하는 남편에게 걱정해 주는 말도 매번 이렇게 받아치니 더 이상 해줄 말도 없다. 잔소리라 무시하고 오히려 화를 내니 말도 통하지 않는다. ‘아픈 우리가 걱정스럽겠냐? 홀로 남을 자식에게 짐이 될까 걱정이지!’ 그렇게 혼잣말만 되뇔 뿐이다.
TV를 보며 남편의 건강만 신경 썼는데 나 또한 치매 확률을 높일 조건들을 가지고 있으니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젠 운동이 단순한 건강관리나 다이어트 목적이 아닌 살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이 선물 받고 거실 한편에 방치해 놓은 실내 자전거에 자동적으로 올라탔다.
"그래, 나라도 당장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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