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이는 내게 “엄마도 군대를 가야 해!”라고 한다. 2년 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아이는 군인과 군대, 북한과 우리나라의 관계 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빠도 전쟁을 나가냐는 질문에 이어 군인은 남자들만 가는 곳이냐고 묻다가 엄마는 왜 안 가냐고 물었다. 남자는 의무지만 여자는 선택사항이라는 말에 아이는 불공평하다고 했다. 남자의 역할과 여자의 역할이 있음을 아이의 이해력에 맞게 설명했다. 하지만 아이는 내게 말했다. “엄마도 힘이 세니까 군대 가야 해!”, “이것 봐 엄마도 완전 남자잖아!”. 이럴 때면 떠오르는 아이 말이 있다. 유아 시절 “엄마도 하느님한테 기도해 남자가 되게 해 달라고” 내가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남자로 태어나야 해’라는 혼잣말을 들은 아이가 이런 말을 했었다. 유아 시기, 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니 귀엽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금. 이제는 엄마를 남자처럼 대하는 아이를 보면 섭섭하기도 하다.
집안일을 하고 잠깐 틈이나 미용실 예약을 했다. 주말에 만났던 지인이 흰머리 염색을 미루고 있는 나를 보고 아이에게 한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세이야 예전에 엄마가 머리 스타일도 얼마나 자주 바꿨는지 알아? 미용실도 자주 다녔어?” 결혼 후 꾸미는 것과는 단절한 나를 보고 지인들은 가끔 만나면 현재의 내 모습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강아지 산책을 다녀오고 아이 하교 후 간식을 챙기고 학원을 간 사이, 미용실로 갔다. 1시간 후 휴대폰 전화가 울렸다.
“엄마, 어디야? 왜 집에 없어?”
“응, 학원 다녀왔어? 엄마는 미용실이야”
“어? 단발머리 하는 건 아니지?”
엄마에게 남자 같다고 할 때는 언제고 머리카락은 꼭 길러야 한다며 신신당부다. 사실 임신을 하면 짧아지는 머리카락 길이는 엄마가 되려면 거쳐야 할 단계 중 하나였다. 빨리 말려야 하고 거추장스럽게 내려오면 육아나 집안일을 할 때 방해가 되니까. 이후 단발을 유지하다 아이가 초등학교 갈 무렵 머리카락을 길렀다. 못난 엄마는 싫어한다는 요즘 아이들의 성향을 듣고 나이 든 엄마보다 예쁜 엄마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오래 유지해야 할 줄은 몰랐다.
미용실을 다녀오고 아이도 남편도 각자 하루일과를 끝내고 저녁 식사자리에 모였다.
“세이야! 엄마 어때? 예뻐?”
“몰라!”
아이가 간단하게 대답하니 옆에 있던 남편이 답해준다.
“야! 머리 희한하네! 그것도 돈 주고 하나? 어디서 하노? 내가 불 질러줄게”
그러면서 남편은 또 비아냥거리고 히죽거렸다. 내가 뭘 기대하겠냐 이런 부자지간들.
“아, 그래.”
굵은 목소리를 내며 체념한 듯 별 반응 없이 대답하자 대뜸 남편이 다시 얘기했다.
“야, 그렇다고 그렇게 얘기하지 말고 니도 여자처럼 예쁘게 좀 말해봐라. 그러니까 남자 같다고 하지”
‘헐, 누가 나를 남자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무심한 말투에도 익숙해진 나를 보고 남편이 대뜸 귀띔해 줬다. ‘그래도 남편이 나를 좋아하긴 하는구나.’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나만의 착각으로 이런 상황을 적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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