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연수 중에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지인은 유치원 원감으로 일하고 있어서 보통 오전은 바쁜 시간대였다. 연수가 끝나고 지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지연아 전화했었네? 무슨 일 있어?”
“언니야, 시아버지가 오늘 오전에 신장 투석하시다 갑자기 돌아가셨어. 나는 아이들 먼저 챙겨 나오라고 해서 지금 집에 잠깐 들어왔어. 아주버님이 어머니 모시고 온다고 했는데, 내가 어머니께 먼저 전화드려야 하나?”
“아니, 좋은 일도 아닌데. 빨리 가서 직접 뵙는 게 낫지 않을까? 나도 준비해서 갈게, 저녁에 봐.”
지연의 시아버님은 지병이 있었는데 몇 년 전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신장 투석까지 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지연의 남편과 아이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목욕탕을 간다고 했다. 지연의 남편은 3남 1녀 중 막내다. 친손자가 없어 제사를 중시하는 집안에 아들 손자가 귀했다. 첫딸을 낳고 지연이는 아들을 낳기 위해 소문난 점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들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그렇게 부부의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신기하게 둘째는 아들을 낳았다.
저녁 무렵, 가까이 사는 지인부부와 함께 장례식장을 찾았다. 빈소 앞에는 화환이 길게 줄지었고 조문객들도 제법 있었다.
“오늘 첫날인데 사람 많네! 화환도 많이 와 있네!”
“지연이 오빠가 모임이 많잖아.”
남편의 말에 나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빈소에 들어서니 지연이가 우리 일행을 맞았고 조문 후 우리도 자리를 잡아 앉았다. 이어 지연이 오빠도 곁에 앉았다.
“아이고, 형님! 고생이 많네요.”
“고생은.... 내가 고생이겠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남편의 위로에 지연이 오빠는 살짝 당황한 듯했다. 아닐까? 어쩌면 내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순간 나는 남편 팔을 툭 치며 말했다.
“그래!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고생은. 마음이 안 좋은데”
남편이 멈칫하더니 분위기를 전환하며 지연 오빠의 술잔에 술을 채웠다.
지연이는 테이블을 오가며 조문객을 맞았다. 그런데 표정이 밝다. 이것도 내 생각일까? 마치 유치원 학부모 상담할 때의 표정처럼 자연스럽게 밝았다. 직업적으로 미소가 습관이라 그런 걸까? 괜히 걱정되었다. 지연이가 내 곁에 다가오자 살짝 귀띔했다.
“너 표정이 너무 웃고 있는 것 같다. 며느리인데 그래도 조심해.”
“아 그래? 많이 안 웃었는데 알겠어.”
눈치 없는 남편이 옆에 있는 지연을 발견하고는 맥주를 권했다.
“지연 씨! 한잔해요. 며느리는 술 마시면 안 되나? 요즘 그런 게 어딨노?”
남편과 같이 온 지인이 합세해 술잔을 만들어 채워주니 지연이가 웃으며 얼굴을 살짝 돌리고 마셨다. 그리고 지연이는 다시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이동했다. 내가 남편에게 술을 더 이상 권하지 말라고 얘기하자 꼰대냐며 핀잔을 줬다.
‘나도 옛날 사람일까?’ 평소 지연에게서 들었던 시댁의 분위기를 알고 아직은 유교 사상이 공존하고 있으니 괜히 조심스러웠다. 더구나 바로 옆 테이블에 지연의 큰 아주버니네 식구와 시어머님이 계시니 더욱 불편했다. ‘내가 만약 시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나는 어떤 표정으로 조문객을 대해야 할까?’ 한동안 결혼식과 돌잔치만 다니다 이젠 문상을 다녀야 할 시기가 되니 문득 어떤 태도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눈치 없이 큰소리로 떠들며 옆자리에 술병을 줄 세우는 남편을 보고 나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철없는 남편아! 이제 그만 나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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