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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Mar 16. 2024

100-13 아이와 엄마의 책

얼마 만일까? 출판사 편집자에게서 카톡이 왔다. 작년 초 출간된 책이 1년여 만에 전자책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전한 이후 다시 1년 만이었다. 카톡의 내용은 한 해 동안의 통계로 판매 저하된 책을 소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남은 잔량을 추가 구매할 건지 의사를 묻는 거였다. 나의 첫 책이자 ‘아버지’의 관한 내용이라 애정이 담긴 책이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어안이 벙벙해 떠오르는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선생님! 그냥 소각해요. 그거 집에 쌓아두고 어떡하려고요. 그냥 새로운 책 다시 써요!”

“아. 그런가? 그렇겠지. 이제 아빠에 대한 마음은 정리해야겠지?”     


순간 무의식적으로 아빠를 쥐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자꾸 내가 과거에만 머물려고 하는구나’ 이제는 일어서야 하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3년이 되었는데. 그 핑계로 주저앉으려고만 하는 또 다른 모습에 정신이 띄었다. 사실 남은 책을 모두 짊어질 수도 없는 상황이다. 첫 책이 나왔을 때 나는 비밀에 부쳐야 했다. 행복하지 않은 가족의 과거 이야기니 동생들 뿐만 아니라 엄마에게도 비밀이었다. 남편 또한 평판을 중시하는 사람이라 사적인 이야기 쓰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책이 나와 남편에게 처음 건넸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이거였다.

“야! 내가 책 읽는 거 봤나? 당장 환불해라! 그걸 돈 주고 사냐?”

일주일 전부터 내 책이 나올 거라 이야기했었고 그래도 남편에게만은 축하를 받고 싶었는데 책을 뿌리치며 한 말이었다. 그리고 덧붙인 몇 마디.

“야! 그래서 니 돈 얼마나 들었노? 니 돈으로 책 만든 거 아니가? 누가 니 책을 내주겠노?”

엎지른 물은 다시 채울 수 없고 말 한마디는 천 냥 빚을 갚는다는데 내 남편은 입을 다물어야 중간을 간다.

“남편아! 엄마 말 기억하지? 정서방은 입만 다물면 중간은 간다고. 니는 물에 빠지면 입은 둥둥 떠서 아마 살끼다!”

 그렇게 내 책은 고이 작은방 책장에 끼어져 있다. 그래도 결혼하고 잘한 건 있다. 아이를 낳았다는 것. 아이는 새벽마다 글 쓰는 엄마를 봐왔고 책이 나온 걸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표지 앞의 엄마 이름과 책 속의 자신의 이름을 발견하고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의 추억도 떠올렸다. 학교에서는 오전 시간에 엄마 책을 읽을 거라며 가져가기도 했었다.     


학원 수업을 끝내고 집에 들어온 아이에게 이제 엄마 책이 많이 팔리지 않아 정리가 될 거라고 이야기하자 아쉬워했다. 그리고 새 담임선생님께 엄마 책을 가져다 드릴 거라며 가방에 내 책을 넣고는 더 남았냐고 묻기도 했다. 이미 우리 엄마는 작가라고 친구들에게 자랑도 했다며 남은 책은 어디 있냐고 책장을 확인하기도 한다. ‘고마운 녀석!’ 하지만 이건 남편한테 또 비밀이다. 책 이야기만 꺼내면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욕하고 있는 줄 모르냐고 면박만 주었기에 이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설상 사실이 그렇다 쳐도 괜찮다. 어차피 살아온 내 과거이고 부끄럽게 생각했다면 책도 내지 않았을 거다.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고 그간 버텨온 힘이 있기에 앞으로도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럴 때면 꼭 되뇌는 말이 있다.

‘고맙다. 남편아!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줘서. 너 덕분에 난 보란 듯이 성공해야겠다!’라고.     


#책과강연#백일백장#16기#아이#엄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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