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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Mar 15. 2024

100-12 남편과 대화하기

집 앞 공원. 강아지 산책을 위해 나와 벤치에 앉았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니 제법 봄이 온 것 같다. 어젯밤 남편과 잠깐 나눈 대화를 떠올렸다. 지난 시절, 남편과 많이도 싸우며 서로에 대해 파악했기에 되도록 차근한 설명과 대화로 풀려고 나는 노력한다. 또한 성격이 급한 남편은 결론만 말하라고 재촉하고 욱하는 성격을 알기에 최소한의 단어를 사용해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다.      


이번에 남편과 남편의 친구, 나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 3명이 각자의 생각으로 얽히니 상황이 복잡해졌다. 결국 내가 남편 친구에게 부탁한 상황으로 얽혔으니 당장 전화를 걸어 오해를 풀었다.

“오빠! 미안. 내가 이해가 안 돼서 물어본 거였는데 괜히 오해가 된 것 같아. 오해 풀어 미안해.” 

“아니, 나도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돼서 답답했었어. 그래 너가 다시 설명해 봐. 그런데 진석이는 이해했어? 너한테 미안하다고 사과하라 해”

몇 달 전, 남편 친구 회사에 부탁할 일이 있었다. 남편이 알아서 한다기에 기다렸다. 하지만 그의 간단한 처리 방법과 해석으로 일이 얽혀서 마음이 불편하게 된 상황. 결국 내가 해결하는 게 빠를 것 같아 남편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차피 남편은 오늘도 거래처 약속이라 전화 연결도 안 되고 외박할 거다. 어찌하랴, 답답한 사람이 움직여야지. 

그리고 남은 것 하나. 남편과 친구의 관계를 풀어줘야 했다. 남편 친구도 직접 표현하지는 않지만 대화 중 섭섭함이 묻어 있었다. 그런데 남편 비위에 맞게 이야기해야 한다. 별거 아닌 일에 워낙 자존심을 드러내는 사람이라 자칫하면 친구 간 크게 다툴 수도 있다.      


저녁이 되자 남편이 들어왔다. 아이와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저녁을 먹었다. 마무리되는 시점. 나는 남편에게 넌지시 어제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 어제 상황은 이해가 좀 됐어? 괜히 친구가 오해받아서 기분이 안 좋을 수 있으니 전화 한 통 한번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야! 어제 일은 이해했다고 치고! 그게 오해할 상황이가! 내가 다 알아서 하는데 니가 뭐 안다고 나서노? 니보다 내가 더 인간관계가 좋다. 그리고 친군데 그것도 못해주나!”

갑자기 버럭 화를 내고는 식후 담배를 태우러 나가버렸다. 일을 미루다 결국 나보고 해결하라고 그 친구 전화번호를 가르쳐줄 때는 언제고 순간 황당했다. ‘내가 저럴 줄 알았다!’ 남편 친구가 이 일로 화가 난 걸 알았다면 당장 달려가 따질 기세였다. 혼자 똑똑한 척, 대단한 척 다하고. 막상 일 처리는 지저분하고. 그렇게 나는 오늘도 남은 말을 마음속으로 삭였다.      


잠시 후 남편은 집으로 들어와 아무 일 없는 척 다시 말을 걸었다.

“초코는? 오늘 산책 갔다 왔나? 간식은 많이 먹었나? 한 개 줘도 되나?”

퇴근 후 저녁 먹고 5분간 강아지와 놀아주는 유일한 시간. 설거지하는 내 뒤로 남편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강아지에게 공을 던졌다. 예전엔 남편은 싸우거나 화가 나면 한동안 삐져서 말도 안 할 뿐 아니라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덕분에 나는 저녁을 안 차려도 돼 꽤 편했는데 이제는 담배 한 대 피우고는 바로 말을 걸었다.

밉상! 저럴 때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완전 밉상이다.


#책과강연#백일백장#16기#남편#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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