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먹는 것에 진심이다. 먹는 것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는 결혼 전 남편이 끼니를 세심하게 챙길 때 어쩌면 감동받았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면에 상대방에게 이끌렸다가 후엔 그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기도 한다.
나에게 끼니란? 그저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 바쁠 땐 김밥 한 줄 사서 운전을 하며 먹기도 하고 집안일을 할 땐 밥이랑 반찬 하나 꺼내놓고 한 숟갈씩 입에 넣으면서 움직이기도 했다. 하지만 남편은 먹는 즐거움을 충족하기 위해 일을 하므로 끼니를 대충 넘기려 하면 엄청 화를 냈다. 한편으로는 경상도 여자와 전라도 부모 아래 자란 남자라 맞지 않는 건가 생각도 했다. 또는 삼 남매 막내로 자란 남편이 맞벌이 부모로 인해 할머니 손에 길러져 애정이 결핍돼 욕구불만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입에 맞는 음식이 있으면 조그만 먹으라며 아이와 투는 남편은 식탐도 있다. 이렇게 먹는 것으로 인해 나는 매일 남편과 다투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했다.
보통은 오후 3시가 지날 때,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야! 오늘은 저녁 뭐고?”
10년 넘게 음식 맛이 늘지 않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며 타박하면서도 매일 꿋꿋하게 메뉴를 묻는 남편이다. 그리고 자신이 퇴근할 시간을 알린다. 음식도 뜨거운 것을 좋아해 남편이 도착하기 전, 밥을 먹는 중 꼭 네다섯은 데워야 한다. 식은 음식은 먹는 게 아니라며 조그만 미니 소시지도 3번을 나눠 구우면서 먹는다. 늘 반주를 하니 1시간 30분 동안 데우는 행동은 반복이다.
“야! 나는 전생에 양반이라서 그렇다! 찬밥 좋아하는 니는 내하고 다르다!”
뜨거운 음식 차림에 질려 아이가 남긴 밥을 대충 먹는 나를 두고 남편을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좋아해서 먹겠냐? 니 음식 데우다 지쳐서 대충 먹는 거지!’ 속으로 삭이는 말은 이제 습관이 돼버렸다.
그렇게 남편은 현모양처를 바랐다. 이왕이면 직장생활을 하는 능력 있는 여자도 바란다. 가끔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들은 게으르다고 핀잔을 줄 때도 있다. 본인은 집안일에 손가락 까딱하지 않으면서 슈퍼우먼을 바라는 남편, 참 양심도 없다. 다른 이들은 신혼 때부터 남편을 잘못 길들여서 그렇다고 하지만 지긋지긋하게 싸워봤기에 더 이상 운운하기도 싫다.
가끔 남편이 먹는 것에 진심인 만큼 좋은 점도 있다. 한 번씩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당장은 본인이 먹고 싶은 것을 먹어도 기억했다가 사 오기도 한다. 며칠 전 저녁 모임을 끝내고 11시에 귀가한 남편. 남편의 손에는 양장피가 들려 있었다.
“야! 일어나 봐라. 양장피 사 왔다. 먹어봐라.”
“밤에 뭘 먹어? 내일 아침에 먹을게”
“야! 니는 사 온 사람 성의를 생각해서 바로 먹어야지! 참 눈치 없제.”
눈치는 누가 없는 건지. 예전에 남편은 시아버지가 술을 드시고 귀가할 때면 후라이드 통닭을 사 와 남매들끼리 맛있게 먹었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가끔 늦은 귀가를 하면 다이어트해야 하는 아이에게 치킨을 사 와 오늘만 먹으라고 꼬시기도 한다. 각자가 느끼는 행복이 다르니 무시할 수도 없다. 내 아이도 성인이 되면 이런 아빠를 자상하게 기억할 거다. 예전의 우리 아버지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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