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육청 연수가 있는 날이다. 학부모 나눔 지기 연수로 하브루타 독서 수업을 받는 날. 이제 남은 교육은 두 번이 더 있다. 연수가 끝나면 독서 수업을 신청한 학교에 파견될 것이다. 사실 이제껏 들었던 하브루타 교육을 돌이켜 보면 이번에 듣는 교육이 훨씬 좋았다. 막연한 이론 수업보다 아이들과 할 수 있는 실제적인 수업 방법을 알려줘 현장에서 당장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이었다. 처음엔 기대에 부풀어 어디든 불러주면 나갈 기세였지만 시간이 흘러가니 ‘과연 잘할 수 있을까?’부터 ‘이것 말고 다른 일은 없을까?’ 등 마음이 동요되기 시작했다. 왜일까? 절실함이 떨어졌을까? 게을러진 걸까? 도착 후 강당 테이블에 앉아 매주 만나는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며 오늘 아침은 어떤 전쟁을 치르고 왔고 기분이 어떤지 이야기 나눴다. 반응은 비슷했다. 단기간 바짝 하는 연수가 아니라 늘어지는 느낌에 다들 처음보다 시들해진 기분. 익숙해지니 간절함도 떨어진 걸까?
잠시 후 강사님의 수업이 시작되고 주제는 그림으로 하는 하브루타였다. 명화와 그림책으로 각자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 소개된 그림책은 「떨어질 수 없어」 마르 파봉의 작품이다. 먼저 표지를 보고 다양한 느낌과 질문을 나눈 후 이야기를 듣고 단계별 질문을 만들었다. 여러 질문 중 한 가지를 정해 조별끼리 의견을 나눠보는 시간. 우리 조는 ‘세상에 쓰임새가 없는 것이 있을까?’였다. 선출된 질문을 중심으로 ‘세상에 쓰임새가 없는 것은 없다.’라는 문장으로 바꿔 각자의 의견과 조별 발표를 끝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 집에 도착해 대충 허기를 채우고 강아지와 산책을 했다. 내가 아니면 종일 집에 갇혀 지내야 하니 귀찮거나 피곤해도 모른 채 할 수가 없다. 하루의 패턴이 일정하게 흘러가는 시간. 의무감으로 공원을 산책하다 오늘의 단어 ‘쓰임새’가 떠올랐다.
“그래! 남편이 집에서 하는 게 뭐 있냐고 핀잔을 주지만 나도 쓰임새가 있구나”
문득 혼잣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 이유가 뭘까?
그동안 나는 바쁘게 살 궁리만 했다. 결혼 전에도 휴일이면 평생교육원에 등록했고 시간이 나면 일부러 약속을 잡아 외출했다. 약속이 없으면 직장에 출근해 월요일 업무 준비를 했다. 유치원에서 일하니 잔잔한 일거리는 늘 있었다. 방학에도 집에 있으면 낙오자가 되는 것 같아 무조건 외출했고 낮잠을 자면 혼자 꿀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서 피곤하더라도 몸을 바지런히 이끌며 밤을 기다렸다. 물론 강박증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 칭찬이 메마른 엄격한 부모 아래 자라면서 나는 실수를 하면 자책부터 하는 게 먼저였다. 어쩌면 남편의 잔소리가 어릴 적 숨기고 싶은 나를 위축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타인의 규제에 자유로울 권리.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권리. 그건 내 안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무의식적으로 통제를 당하며 살았기에 자유로워짐도 연습이 필요했다.
‘나태함이라. 그래, 지금의 나태함도 새로운 도약을 위한 쉼의 한 방법일지도 모르지. 괜찮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이런 나태함과 게으름에도 이젠 당당해지자!’
그렇게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짐해 본다. 그러고는 내일 일정을 다시 확인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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