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이가 친구와 지낸 이야기를 하며 내게 물었다.
“엄마!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잖아. 그러니깐 내가 싫어도 들어줘야 하는 거지.”
항상 친구랑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아이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양보하는 게 일상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후 나는 아이에게 상황에 따라 유연한 사고를 할 수 있게 조언했다.
이런 건 나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조금 불편해도 상대의 부탁이나 의견을 들어주는 편이었다. 그러고는 혼자 상처를 받았다. 여러 심리학책을 섭렵하며 숨어있는 나를 찾기 위해 한동안 관련된 책에 빠져있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면 단단히 먹은 마음도 어느새 흐트러졌다. 타인에게 불편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 거절이 어려운 사람. 그러면서도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모든 대화를 일일이 곱씹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미 끝난 이야기를 처음 전하는 소식처럼 다시 이야기하고 그 대상을 또 욕하는 경우는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이미 끝난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심리는 뭐지?’ 나는 내가 직접 겪거나 들은 이야기가 아니면 섣불리 단정 짓지 않는다. 그리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욕하는 건 더욱 싫어한다. 아니, 그냥 나랑 안 맞다. 그래서 일부로 자리를 피하거나 입을 다물기도 한다. 말끝마다 “그 사람도 사정이 있겠지”라고 하면 항상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되었다.
가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남편에게 상황을 이야기하면 적절히 넘어갈 일을 내 주관적인 기준으로 관계를 정리하니 주변에 사람이 없다고 했다. 남편은 영업직이니 자신과 말이 잘 통하든 그렇지 않든 관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자신이랑 30%라도 맞으면 곁에 두는 거라고. 이후에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정말 그럴까? 잘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에 유튜브를 검색하니 중년쯤 되면 관계를 정리하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혼자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사실 나는 이런 견해들이 공감됐다. 새로운 모임을 하면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다 잘 지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이 세상 살며 나랑 잘 맞는 몇 명만 있으면 그것도 괜찮은 거 아닌가?
어쩌면 나는 인간관계에 긴장을 가지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과거 사람들 간 여러 상황 속에서 이용도 많이 당하고 상처도 받았다. 20대부터 사회생활을 하며 속임도 당해보고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도 겪어보니 결국 나를 잘 챙기는 게 오히려 득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권위적인 부모 아래 장녀로 자라며 ‘착한 아이’를 강요받았으니 마음의 짐이 남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관계에 대해 상처받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새로운 집단에 소속되면 또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거절이 어려워 그런가 하는 생각도 했다. 거절하는 것을 연습하면서 적절히 거리를 두고 피해도 꼭 부탁하는 사람이 따랐다. 어떨 때는 이런 생각도 했다. ‘그냥 받아들이자. 덕이 쌓이면 나중에 복이 온다는데 그냥 도와주고 말자’라고. 그러면 또 주변에서 알려주는 이가 나타났다. “너를 이용하는 거야! 조심해. 바보니?”라고.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저울질하는 사람. 이렇게 실제 상황에서 적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았다. 참 어렵다. 내겐 평생 숙제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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