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선겸 Mar 25. 2024

100-22 "아빠! 나도 말하고 싶어요"

아이 책상 위 모래주머니인데 고무 재질인 고릴라 모형이 보였다. 한 번씩 아이는 주물럭거리며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가지고 놀았다. 팔은 길고 배는 불룩한. 꼭 남편과 닮은 고릴라다. 남편을 생각하며 얼굴을 꾹 누르니 어느새 분이 올라 퍽퍽퍽 쳐 버렸다. 찌그러진 얼굴이 속이 시원하다. 말 안 통하는 남편. 그렇다고 남편과 싸운 건 아니다. 말이 너무 안 통하는데 우기니 쥐어뜯고 싶을 뿐이다.      


저녁 식사 시간. 오늘은 아이 학교 상담을 다녀왔기에 나는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아이는 주말 동안 친구들과 파자마 파티를 한 이야기를 아빠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아빠는 집에 없었으니까. 먼저 아이가 파자마 파티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학교 이야기를 꺼냈다. 여자친구가 자신의 남자친구에 대해 고민 상담을 했다고 했다.

“오늘 지연이가 민승이가 자기를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헤어져야 할 것 같다고 했어.”

“야! 너는 여자친구 있어 없어? 아빠가 생기면 얘기하라고 했지? 맛있는 거 사줄게”

또 자기 하고 싶은 이야기 시작이다. 어쩜 매번 1차원적일까? 아이는 아빠의 표정을 보고 한숨지으며 대답했다.

“아빠, 먹는 거 말고 다른 거 해주면 안 돼? 영화를 보여준다던지 그런 거.”

“알겠어! 당연하지! 아빠만 믿어. 엄마는 그런 거 이해 못 해!”

여자친구 이야기만 나오면 자동적으로 나오는 아빠 반응이 아이는 익숙한 듯했다. 그리고 매번 말을 끊는 아빠의 태도에 아이의 실망한 모습을 보자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기다려 봐, 세이 이야기하잖아. 그래서 어떻게 됐어?”

“야! 니가 이야기에 집중해라. 니가 지금 다른 이야기 하잖아!”

아이는 엄마 아빠가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며 투닥거리자 다시 조용해졌다. 상대방의 말을 끊는 게 습관이니 잘못도 모른다. 그렇다고 싸울 수는 없다. 그러면 아이는 더욱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거다. 결국 내가 입을 닫았다. 남편과 내가 조용해지자 아이가 물었다.

“아빠 나 이야기해도 돼?”

아이는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 눈치보기를 해야 한다.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남편은 아이를 두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계속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나중에 얘기해 줄게”

나직이 읊조리자 눈치 빠른 남편은 이내 조용해졌다. 아이는 있었던 이야기를 풀었고 이후 상황을 재연하기도 했다. 상황을 파악해 보니 내 아이가 여자친구의 말을 그 남자친구에게 전달해 결국 헤어짐에 종지부를 찍은 것 같았다.

“세이야, 그런데 둘 사이에 일어난 일은 그 친구들이 직접 이야기해야지 너가 대신 말해주는 건 아닌 것 같아. 다음엔 그냥 들어주기만 해. 친구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 더 속상할 때가 있어. 오해가 될 수도 있고”     

내가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 상황에서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도와주려고 하는 목적이 크다. 하지만 성격이 급하고 자기 말만 하기 좋아하는 남편은 처음부터 듣는 태도가 부족했다. 그래도 신혼 때 싸운 거에 비하면 지금은 많이 좋아지긴 했다. 나와 아이의 대화가 마무리되자 남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세이야, 다음 파자마 파티는 캠핑장에서 하자! 아빠가 텐트 큰 거 빌려서 두 개 칠 테니 이번에 초대 못한 친구 다 불러! 여자친구도 부르고 알겠지?”

그렇게 남편은 자신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만족한 듯 식후 담배를 태우러 나갔다.     


#책과강연#백일백장#16기#아이#아빠#대화

작가의 이전글 100-21 아이의 파자마 파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