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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Sep 22. 2022

6. 명절이란?

- 친정이라고 모두가 편한 건 아니다.

  명절을 앞두고 여느 때와 같은 토요일 아침.

아이를 깨운 후 부랴부랴 아침을 먹이고 레고 코딩 학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6살이었을 때부터 다녔던 학원, 그 시간은 유일한 나의 힐링 타임이기도 했다. 지금은 아이가 9살이 되었고 코딩 단계가 올라갈 때마다 어려워져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엄마의 재촉을 아이는 곧잘 따랐다. 아이를 학원으로 밀어 넣고 임무가 끝난 듯 나는 근처 커피숍을 찾았다.  

    

 오전 9시 40분. 학원 맞은편에 있는 대형마트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대로변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이전엔 학부모 대기 공간이 있었지만, 건물을 이전하며 그곳은 없어졌다. 사실 이것도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어디든 좋다.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바람에 날리는 초록 나무들과 제법 선선해진 바람에 고요한 여유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건너편 버스정류장 앞을 지나는 남자분이 눈에 띄었다. 걸어가는 뒷모습이 문득 어머니와 함께 살고 계신 울산 할아버지와 흡사했다.      


 어머니는 우리가 어릴 적 아버지와 이혼하고 다른 분과 재혼했다. 그분과 지낸 지 20년 정도 되었기에 우리는 명절이나 가족 행사가 있을 때면 어머니와 함께 챙겨 드렸다. 그리고 나와 동생들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산에 홀로 계신 아버지를 부산 할아버지라 소개했고 울산에 어머니와 살고 계신 분을 울산 할아버지라 했다.      


 나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엄마! 할아버지 어디 계셔? 밖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보니 할아버지랑 비슷한 분 같아 생각나서 전화했어!”     

 

 작년에 현대자동차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울산 할아버지는 지금은 1차 하도급 업체에서 1년간 계약직으로 다시 일을 시작하셨다. 요즘 퇴임 후 노인 우울증이 많다는 이야기가 있어 사실 걱정도 되었다. 마침 어머니는 장을 보는 중이었고 점심을 먹으러 오라고 해 아이 학원을 마치면 곧장 가겠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식사하며 어머니와 울산 할아버지는 예고 없는 방문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오늘따라 아이도 할머니 집에 가면 심심하다고 가기를 꺼렸지만,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어릴 적 자주 보여드렸던 춤추는 끼를 발휘하며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이도 기분이 좋았을까? 평소 목청이 높은 할머니에 긴장이 풀렸는지 질문을 했다.     


 “할머니! 궁금한 거 있어요! 할머니는 왜 부산 할아버지랑 싸웠어요?”    

 

 가끔 아이는 그 질문을 내게 했었다. 언젠가는 그런 유형의 질문을 받을 거라 예상했었고 나는 준비한 대로 말해주었다. ‘친구와 사이좋게 지내다가도 싸우게 되듯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게 되었는데 결국 서로가 양보하지 못해 따로 사는 거’라고. 그러나 아이는 할머니께 직접 듣고 싶었나 보다. 작년 1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이의 마음속에는 할아버지에 대해 애처로움이 있었던 걸까. 순간 어머니가 어떻게 이야기할지 걱정이 되었지만, 대화에 끼어들지 않기로 했다.      


 “어! 그건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너무 속상하게 해서 그렇지!”

 “그럼, 할머니는 할아버지랑 화해 안 하고 계속 싸운 거예요?”

 “응! 할아버지가 혼자만 생각하고 집에도 안 들어오고 애들을 돌보지도 않으니 그렇지! 그래서 너희 엄마랑 이모들도 할아버지랑 안 살고 할머니 곁에 살려고 모두 울산에 있는 거잖아!”     


 또다시 어머니는 아이를 붙들고 넋두리를 시작했다. 어머니는 습관적으로 틈틈이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고 우리 때문에 자신이 고생하며 살았다고 책임을 물었다. 이렇게 되면 나는 혼란한 아이를 위해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세이야! 원래 싸우는 건 둘 다 잘못한 거야. 서로 이해하고 해결한다면 풀릴 수 있는 거지, 둘 다 양보하지 않아서 결국 헤어지게 되는 거란다”     


 그냥 그렇게 끝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갑자기 폭발했다. 어차피 돌아가신 아버지를 또다시 책망해야 했을까? 아버지는 죽음을 앞두고 어머니와 화해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가 계신 요양병원에 방문했었지만, 어머니는 원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어느 정도로 암이 재발해 쇠약해졌는지 그것만 궁금했던 거였다. 나는 아직도 두 분의 서로 다른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어머니는 또다시 거친 욕설을 내뱉기 시작했다. 할머니와 싸울까 늘 노심초사하는 아이의 걱정이 결국 현실이 돼버렸다. 그럼 그렇지, 가족 행사 때나 가끔 만나야 했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지난주 나의 쌍둥이 여동생과 다퉜다길래 마음도 쓰여 왔건만 아이의 불안만 가중하는 꼴이 돼버렸다. 어미의 성질머리를 닮은 나도 “이제 그만하라며!” 똑같이 소리치고 나와버렸다. 주차한 차에 오르며 나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고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자신 때문에 할머니와 엄마가 싸운 게 된 거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에게 이런 모습은 보이지 말자고 그렇게 노력했는데 현실은 실천하기가 참 어려웠다.     


 우리 가족관계의 마지막은 어떻게 이뤄질까? 그냥 이렇게 풀리지 않을 영원한 숙제로 남는 걸까? 같은 상황을 반복할 때마다 그저 긴 한숨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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