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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선겸 Sep 06. 2022

5. 여자가 할  수 있는 일, 셋

천직을 찾다.

 20대 중반 시절, 백화점 판매직을 하며 꽤 높은 연봉을 받던 나는 별안간 ‘중간관리’라는 운영 체계로 바뀌면서 일에 대한 회의감이 왔었다. 그동안 고생하며 쌓은 경력을 나이에 대한 제한으로 ‘매니저’ 승진에 제재가 있었고 억지로라도 성사하려면 상사에게 술 접대 등 온갖 추태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관례가 있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다시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안정된 직장을 뒤로하고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열심히 했기에 미련도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며 내린 결론은 ‘공부’였다.   

  

 ‘공부는 나를 속이지 않으리, 내 노력을 모른 채 하지 않으리!’  

    

 며칠을 고민하며 나는 생각지도 못한 대학에 가보기로 결심했었다.

막상 결론은 내렸지만 어떤 과를 가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유일하게 좋아했던 건 그림 그리기였는데, 한때는 미대가 꿈이었는데. IMF 금융위기로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한 시절을 다시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그 학과는 당장 선택할 수 없는 과. 그래서 선택한 게 ‘유아교육학과’였다.

 대학 생활을 먼저 한 막냇동생이 조언하길, 졸업하며 취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니 늦은 대학생이기에 그것만으로도 충분조건이 되었다.


 5년 동안 다녔던 직장에 사직서를 내며 인사를 하고 나오려는데 과장님과 대리님이 섭섭한지 본사와 맞지 않으면 다른 회사를 소개해 줄 테니 매니저를 해보라고 했다. 이제 와? 미안함과 당황스러움이 한꺼번에 몰렸지만 이미 정했기에 담담히 답변했었다.    

 

 “죄송해서 어떡해요! 저 이미 대학에 합격했어요. 새로운 길 가보고 아니면 다시 돌아올게요. 그때 잘 봐주세요!”라고.     


 ‘유아교육과라. 과연 내게 어울릴까?’ 문득 의문이 들기도 했었다. 하지만 취업을 생각해야 하니 결정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진 않았었다.     


 다음 해, 27살 대학교 1학년을 시작하며 오랜만에 느끼는 학생이란 신분이 신기하고 설레기도 했다. 새로운 길은 생각보다 두렵지 않았다. 일을 관뒀던 목적을 떠올리며 성적장학금이란 목표도 달성했고 틈틈이 백화점 아르바이트와 자원봉사도 하며 졸업할 땐 우수상 패도 받았다.      


 그렇게 우연히 찾아온 유아교육의 기회는 행복하지 않았던 내 과거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고 부모의 입장과 아이의 입장을 이해, 수용하며 내 자존감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20대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세상의 경험을 했던 나는 드디어 마지막 일에 정착할 수 있었다.

 ‘유아교육 정교사!’ 그건 생활 속의 잔잔한 보람과 사랑, 행복이 지친 나를 언제든 이끌어 주는 힘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잊었던 미소와 웃음도 되찾고 나는 여전히 현장에서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도 가져본다. 내 아이가 분가하고 가정에서 엄마라는 역할이 줄어들 때, 양육원에 입소해 사랑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과 함께 나누며 해맑은 미소로 마지막까지 지내고 싶은 소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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