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단 만들기
곤지암에는 화단을 가꿀 만한 공간이 제한적이었고, 남의 집에 세입자 마음대로 화단을 만들기도 어려웠다. 용인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화단을 가꾸기로 결정했다. 실행에 옮기면서 모든 일을 시작하려면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꽃의 종류, 개화 시기, 화단 조성 방법 등등. 문을 열고 들어가니 드넓은 미지의 신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화초 키우는 방법, 화단 조성법을 쓰고 싶지는 않다. 아는 것도 많지 않다. 화단을 조성한 곳은 마당 끝에 있는 후미진 곳이다. 1년 차에는 텃밭으로 채소를 길렀으나 장마가 시작되면서 방치하게 되었고 한 여름에는 풀밭으로 변해버렸다. 이웃들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민망한 장소가 되어 버렸다. 바로 옆 공간에는 조팝나무가 심어진 공간이 있었다. 잘라낸 나뭇가지나 뽑아낸 풀을 그 주변에 버렸다. 그러다 보니 나무 주위가 더 지저분해져 가는 현상이 심화되었다. 어느 날 엔트로피가 심화되고 있는 그 공간을 바라보다가 문득 발상을 전환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조팝나무를 베어내면 그 주위도 덩달아 깨끗해 지리라는 것을. 전봇대 밑에 쓰레기봉투를 하나 놓아두면 다른 사람들이 덩달아 쓰레기를 투척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벌금의 위협보다 전봇대 밑 작은 화단의 조성이 무단 쓰레기 투척 방지에 더 효과적이라는 심리 실험을 본 적이 있다.
버려진 공간을 화단으로
이듬해 반은 쓰레기 처리장으로 변해버린 공간을 천천히 바라보면서 리모델링을 고민했다. 제일 차 목표는 깔끔한 정리였고, 그러려면 조팝나무들을 모두 베어 내야만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결정 후 바로 실행에 옮겼다. 조팝나무들을 모두 베어냈다. 주변에 쌓여 있던 나뭇가지 들고 말끔하게 치웠다. 그늘을 만들고 있었던 편백나무들의 아래 가지들도 쳐냈다. 침침하고 어지러웠던 공간이 탁 트이고 깔끔한 장소로 탈바꿈했다. 덤으로 찜찜하던 내 마음도 같이 정리되었다. 조팝나무들이 있던 자리는 작은 둔덕처럼 흙이 봉긋하게 쌓여 있었고 바위가 한편에 놓여 있었다. 바위 주변에 꽃이나 난초를 적절히 배치해서 멋진 공간으로 환골탈태된 공간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텃밭으로 쓰던 곳도 화단으로 바꾸기로 했다.
마당 한편에 버려져 있던 돌들과 이웃에게 안 쓰는 돌들을 얻어 다가 화단 경계를 만들고자 했다. 가장 큰 돌을 중심에 배치하고 나머지 돌들을 좌우로 배치해 나가는 순서로 진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수십 킬로그램에 달하는 중심이 되는 돌의 위치를 잡는 일이었다. 상하 좌우를 바꾸어 가면서 이상적인 위치를 찾는 동안 작업할 힘을 다 소진하고 말았다. 좌우 돌 배치는 다음 날로 미루어야만 했다.
작은 화단을 가꾸는 일이었지만 공부를 틈틈이 했다. 화단 가꾸기 책을 사서 이론을 익혔다. 해외 출장 시에는 대한항공 기내지에서 연재되고 있는 ‘세계의 정원’ 시리즈를 스크랩했다. 창덕궁 후원, 흥선 대원군의 별장이었던 석파정, 옛 서울시장 관사 등 서울의 유서 깊은 장소들을 벤치마킹하였다. 인터넷에서 유명 정원들의 사진을 보면서 내 정원에 참고할 만한 사항들을 기록해 두기도 했다. 조악한 내 화단을 빠르게 꽃들로 풍성하게 들어찬 곳으로 탈바꿈시켜 보고 싶다는 조급증이 들기도 했다. 배움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천천히 해 나가기로 했다. 꽃이 핀 실제 모습의 감상 못지않게 각종 자료를 재료 삼아 머릿속에 이상적인 내 화단의 모습을 그려본 일 또한 즐거운 일이었다.
꽃을 심어 보다
화단에 큰돈과 많은 시간을 쏟아부을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하기로 했다. 일단 집안에 식재되어 있는 몇몇 식물들을 옮겨 심어 보기로 했다. 작은 둔덕에는 비비추들을 옮겨 심었다. 여러 해 살이 풀로 관엽, 관화 식물이다. 밀식해 심어 주면 주변에 풀이 자라지 못해 관리에도 용이한 측면이 있다. 바위 주변에는 호롱꽃을 심었다. 이 또한 여러 해 살이 풀이고 꽃 모양이 초롱같이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음지에서도 잘 자라기 때문에 바위가 햇빛을 가리는 쪽에 심어 두었다. 옮겨 심은 첫 해는 새 땅을 낯설어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새 땅에 적응하면서 번지기도 하고 몸집도 키워 다음 해를 기대케 했다. 아내는 인터넷으로 10여 종의 꽃씨를 사서 뿌렸으나 채송화, 금잔화, 백일홍 만이 싹을 틔우고 꽃을 맺었다. 이 중에서 백일홍은 가지를 계속 벌여 나가면서 3개월 동안 쉼 없이 꽃을 피워 주었다. 이름에 걸맞은 강인함을 보여 주면서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비웃는 듯했다.
꽃에 대한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무관심하게 지나쳤던 이웃들의 화단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 은퇴 후 미르 마을에 정착해서 사시는 이웃집 60대 부부는 우리 마을에서 화단을 가장 지극 정성으로 가꾸시는 분들이다. 어느 날 바깥에서 기웃거리며 화단을 구경하고 있었더니 마침 집에서 나오신 어르신께서 나를 보더니 집으로 들어와서 편하게 보라고 하셨다. 이런저런 예기를 들어 보았더니 화단을 가꾸기 시작하신 지 10년이 넘으셨고 매년 양재동 화회센터에 가셔서 이삼십만 원어치의 화단 작물을 사서 심으신다 하셨다. 봄과 여름에는 매일 두세 시간은 화단 가꾸기에 공을 들이신다고 했다. 역시나 돈과 시간과 땀이 필요한 영역이었다. 화단에는 나리, 작약, 각종 난과 같은 다년생 식물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 분을 통하여 한 가지 씁쓸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종묘회사에서 꽃씨나 알뿌리 식물을 팔 때 방사선 처리를 하여 1년만 키울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즉 씨앗인 경우 가을에 갈무리한 씨앗은 다음 해 싹을 틔울 수 없고 구근인 경우 다음 해 죽어 버린다고 했다. 종자 회사들이 매출을 늘리기 위하여 번식을 막았다고 한다. 실제로 아내가 사서 뿌려 그 해 꽃을 피운 채송화 금잔화, 백일홍은 씨앗을 간수하여 다음 해 봄에 뿌려 보았지만 싹을 틔우지 못했다. 백일홍 한 그루만 유일하게 싹을 틔워 주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방사선 처리 과정을 비껴간 일종의 불량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웃 어른께서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몇 가지 식물을 분양해 주셨다. 화단의 디자인은 생각하지 않고 일단 가져다 심어 두었다. 자란 후의 꽃의 크기, 모양 등 여러 가지를 살펴본 후 다음 해에 적당한 장소로 이식하기로 했다. 7월 말에는 접시꽃씨를 색깔별로 가져다주셔서 8월에 심었더니 9월부터 싹을 틔워서 성장을 시작했다. 알고 보니 가을에 성장을 하고 겨울을 푸른 잎 형태로 나고 나서 봄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었다.
화단을 조성한 3년 차에는 화원에서 몇 가지 꽃들을 사서 빈 공간을 채웠다. 흰색, 보라, 연분홍 색의 꽃잔디는 화단 경계의 돌들 틈에 심었다. 세 가지 색의 튤립 구근과 작약 뿌리도 몇 개 같이 샀다. 4년 차 봄에는 화단이 제법 짜임새를 갖추게 되었다. 영산홍과 꽃잔디가 같은 시기에 흐드러지게 피었다. 여러 꽃들이 다채롭게 어울려서 핀 모습을 바라보며 노동의 고단함을 잠시 잊었다.
꽃과의 대화
화단 가꾸기는 텃밭에 비하여 긴 호흡이 필요하다. 일 년생 꽃을 심어 그 해 결과물을 볼 수도 있으나 다년생 식물의 경우 다음 해가 되어야 만 내가 한 일에 대한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이 응답에 내가 다시 반응하면 또 한 해를 기다려야 만 꽃의 반응을 만나볼 수 있다. 이러다 보니 꽃의 응답은 신중하게 해석해서 반응해야 한다. 꽃은 땅의 상태, 거름의 충분한 정도, 심어진 위치의 적절성에 대하여 아주 솔직한 얘기를 한다. 그 얘기를 얼마나 잘 알아듣고 조치를 잘 취하는지가 주인의 정원 가꾸기 실력이 된다. 이웃 주민으로부터 접시꽃씨를 받았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새로 조성한 화단의 한편에 고르게 심었다. 9월 초에 싹을 띄우고 다음 해 봄에 꽃 대를 올리기 시작했다. 꽃이 피었을 때 꽃 대의 크기는 이웃집의 접시꽃 대비 절반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양지바른 곳 기름진 땅에 뿌려진 한 송이의 생육은 다른 형제들과 유별나게 구별됐다. 땅의 문제였다. 생육이 부진한 접시꽃들을 이식해 주었다. 다른 꽃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바위 주변에 심은 초롱꽃은 2년 차에 성장을 멈추어 버린 듯했다. 거름을 듬뿍 섞은 흙으로 교체를 해준 3년 차에 정상적인 성장 패턴으로 돌아왔다.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꽃과 주고받은 대화는 끊어지지 않고 이어진다. 꽃과 주인의 정반합적인 대화가 쌓이는 만큼 정원사의 내공도 깊어진다.
화단 가꾸기의 카타르시스
뙤약볕이 내리쬐는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일하고 나면 기력이 다 소진된다. 육체는 녹초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신은 육체와 정반대의 상황이다. 무언가 맑아지고 정화된 느낌이 든다. 흘린 땀을 통해 마음의 노폐물들이 배출되었다고나 할까? 아니면 지금은 잊혀진 어린 자식을 돌볼 때의 부모 마음이 꽃들을 심으면서 소환되었는지도 모른다. 반대로 꽃에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자기 몸과 마음을 돌본 듯한 느낌을 받고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화단 가꾸기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주는 활동이다.
5도2촌의 화단 가꾸기 팁
텃밭과 화단은 가꾸는 대상 식물만 다를 뿐 지속적인 인간의 노동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는 이란성쌍둥이와 같다. 로망으로 시작하지만 과하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동일하다. 휴식과 충전을 위하여 주말을 전원에서 보낸다는 애초의 취지에 맞추려면 화단 가꾸기에 과한 노동이 들어가서는 안된다. 잡초 성장을 최대한 억제하고 새로운 꽃 심기에 들이는 노력을 최소화하면 된다. 우선 공간적으로는 마당 한편에 작은 공간을 운영하기를 추천하고 싶다. 공간에 비례하여 잡초 제거에 들어가는 노력과 시간이 증가하고, 돈도 많이 들어간다. 노동의 강도를 줄이려면 다년생 식물 위주로 운영하면 좋다. 때가 되면 저절로 싹을 띄우고 꽃을 피우니 일 년생 꽃보다 손이 훨씬 덜 간다. 다만 일부 빈 공간은 일 년생 꽃으로 채워 넣어줘야만 한다. 정원의 짜임새가 좋아지고 풀을 뽑을 일이 적어진다. 1년생 식물은 씨로 뿌리기보다는 화원에서 싹을 틔운 모종으로 한다. 품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면 뽑아내고 재 배치해야 하는 등 추가적인 노동이 필요하다. 분양받아서 심은 식물 중 하나는 번식력이 대단해서 2년 차에는 한 평 정도 되는 정원 한 구석을 다 차지하게 되었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지쳐버린 나는 이 식물의 공간 독점을 기꺼이 허용해 주었다. 잡초도 이 식물이 자라는 곳에서는 기를 쓰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