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에 대한 인식
풀과의 전쟁
진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나 풀이나 같은 원리 속에서 현재에 이르렀다. 자연선택에 의한 적자생존이라는 법칙은 모든 생물에 예외 없이 적용된다. 나는 풀의 생존 방식을 틈새 전략이라고 부른다. 시간과 공간을 촘촘하게 나누어서 한치의 빈틈도 없이 효율적으로 쓴다. 생존과 번식함에 있어 낭비하는 생물은 시간이라는 검증 그물을 통과할 수 없다. 허투루 에너지를 쓰는 종은 경쟁자에게 밀려 멸종에 이른다. 사활을 걸고 빈 시간과 공간을 찾아서 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른 봄에 일찍 싹을 틔우고 신속하게 씨앗을 맺어 태어난 목적을 조기에 달성하는 풀이 있다. 어떤 종은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기인 한 여름에 몸집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자손을 남긴다. 공간적으로 보면 양지보다는 음지를 선호하는 식물이 있다. 저지대보다 고지대에 적응한 식물 종도 있다. 온도라는 척도에서 보면 온대 식물, 한대 식물 등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주택 마당은 이러한 다양한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풀과의 전쟁터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완패
곤지암 집 동쪽 마당은 잔디가 식재되어 있긴 했지만 산에 가로막혀 있어 오전에는 해가 들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잡초가 무성하게 자랐다. 동남쪽 마당에는 느티나무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 밑은 질경이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남쪽 마당에는 자갈이 깔려 있었지만 틈을 비집고 잡 풀들이 올라왔다. 동네에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전동 잔디 깎기가 있었지만 동쪽 마당에만 쓸 수 있었다. 기계로 깎고 나서는 호미로 잡초의 뿌리를 뽑아내는 작업을 해주어야만 했다. 느티나무 아래 질경이들은 쇠스랑으로 하나하나 뽑아냈다. 돌 틈을 뚫고 올라온 잡초는 제거하기가 더욱 어렵다.
용인 미르마을로 이사하고 나서는 풀과의 전쟁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 마당 면적이 150평으로 넓어졌기 때문이다. 마을 관리실에서 연 3회 잔디를 깎아 주었으나 풀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기 잔디 깎기를 별도로 구매해서 중간중간 깎아 주어야 했다. 여기에 더해서 민들레, 토끼풀과 같이 생명력이 질긴 잡초들은 일일이 손으로 뽑아냈다. 민들레는 보이는 즉시 제거했다. 한 송이 민들레 홀씨만 날려 보내도 한 해 수고가 민들레 홀씨처럼 바람에 흩뿌려진다. 마당 어디론 가 사라져 버린 홀씨는 이듬해 어김없이 싹을 띄운다. 토끼풀은 무성한 잔디 속에 수많은 뿌리들을 숨기고 있다. 분산화 전략을 구사하는 토끼풀을 호미로 완전히 제거하기란 매우 어렵다. 주변을 삽으로 완전히 떠 낸 후 새로운 잔디를 이식하는 편이 나았다. 쑥은 뿌리를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잘라내면 가을까지 줄 곳 싹을 다시 올린다. 생명력이 왕성한 식물이다. 이끼는 잔디를 죽이는 주범이며 퇴치가 가장 어려운 종이 었다.
소어 핸슨의 '씨앗의 승리'라는 책을 읽고 나서 풀과의 전쟁이 힘든 이유를 알았다. 1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식물은 다양한 형태로 전 지구를 덮고 있다. 이 승리의 공식은 씨앗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씨앗은 기본적으로 6가지 역할을 수행하도록 진화했다. 첫째로 씨앗은 영양분을 공급한다. 씨앗은 어린 식물체가 섭취할 최초의 식량을 그 안에 미리 갖고 있다. 여기에는 발생 초기의 뿌리와 순, 잎이 나는 데 필요한 모든 영양분이 들어 있다. 그리고 씨앗은 맺어 준다. 어미 식물에 있는 두 부모 유전자를 한데 결합한 뒤 이동하기 쉬운 형태로 된 자손 안에 유전자를 넣어 싹을 틔울 준비를 갖춘다. 씨앗은 견딘다. 씨앗은 추위를 견디고 심지어 불이나 동물의 내장을 통과하기도 한다. 씨앗은 방어한다. 단단한 껍질이나 뾰쪽한 침 같은 외형적 방어 기제와 더불어 화합물을 동원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씨앗은 이동한다. 바람을 타고 날아가거나 빙글빙글 돌면서 부모 곁을 떠난다. 물이나 동물을 이용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이동한다.
이렇게 잡초들은 십억 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획득한 다양한 생존 전략을 바탕으로 정원을 침략해 온다. 호미 하나로 막강한 적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사실을 알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더군다나 잡초는 막강한 지원군을 보유하고 있다. 여름에는 따가운 햇빛이 날카로운 창처럼 피부를 파고들고, 모기라는 강력한 호위대가 상시 대기한다. 여름에는 집안이 감옥이 된다. 장마 기간 동안 갇혀 있다가 출소해 보면 더 이상 투쟁할 마음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박완서 작가는 잔디 속에서 자라나는 풀들을 잡초라 부르지 않고 '나도 잔디'라는 익살스러운 이름으로 부르며 제초 작업의 고단함을 희석하고자 했다. 작가가 뽑아낸 잡초와 같은 운명으로 들어가기 전 몇 해 전에 쓴 글이었다. 노구를 이끌고 잡초와 전쟁을 치러 내기에는 버거우셨던 모양이다.
대응 전략 수정
주말에 쉬러 왔다가 풀만 뽑고 가다보니 5도 2촌의 삶이 고달파지고 재미가 반감되기 시작했다. 잡초와의 전쟁에서 완패하고 난 후 대응 전략을 수정했다. 상대의 강점과 나의 약점을 알았으니 적절한 대응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 나의 약점은 7일 중에 2일밖에 전쟁에 참여할 수 있으며, 호미라는 무기밖에 없으며, 우방도 없다는 점이다. 나의 유일한 강점은 다른 무기를 살 수 있는 돈이 있다는 점이다. 사람을 사서 잡초를 제거하게 하거나 현대적인 대량 살상무기를 쓸 수도 있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보자고 5도 2촌의 삶을 시작했는데, 취지에 걸맞지 않게 제초제를 쓰려고 하니 영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마당을 마냥 방치해 놓을 수만은 없었다. 잡초에게 완전히 점령당하기 전에 손을 써야만 했다.
집 근처 농약상에 들러 주인장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새로 나온 제초제를 추천해 주었다. 나무와 사람에게 거의 해가 없다고 한다. 그 대신 값은 좀 비쌌다. 농약 살포에 대한 거부감을 어느 정도 누그러트려 주니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농약 살포용 분무기도 같이 사고 집에 와서 바로 살포를 했다. 효과는 아주 천천히 나타났다. 일주일 후에는 전혀 반응이 없는 듯하다가 한 달이 지나자 풀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누런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이 제초제의 효과를 보니 토끼풀, 쑥 등 적의 주력군에는 확실한 효과를 내주는 반면, 쇠뜨기, 민들레처럼 뿌리가 깊은 튼튼한 식물에는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나무에게는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았다. 이렇게 해서 그해 여름을 편하게 날 수 있었다. 그러나 제초제 효과는 반년 동안만 지속되었다. 장마가 끝나고 가을이 오자 새로운 잡초들이 자라났다. 1년에 두 번은 제초제를 살포해야만 했다. 이듬해 봄에는 주변에서 날아온 새로운 씨앗들이 발아하면서 제초제 살포 전 상태와 동일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아무리 부작용이 적은 제초제라지만 앞마당에 지속적으로 살포하기가 망설여졌다. 제초제 살포를 중단했다.
풀과의 전쟁은 다양한 결과물을 생성해 냈다. 집을 구하러 다니면서 집이 왜 전세나 매물로 나왔는지 물어보 곤 했다. 대답들 중 하나가 전원생활을 접고 도시로 복귀한 경우다. 시골 생활에 지쳤기 때문이다. 이 경우 많은 부분은 풀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고 한다. 주말에 쉬러 왔다가 마당에서 풀 뽑다 기력을 다 써버렸으니 얼마나 아이러니 한가? 곤지암에서 살 때 한 집은 아예 마당의 잔디를 들어내고 자갈로 마당을 채워버렸다. 다른 집은 잔디를 포기하고 정기적으로 잔디 깎기로 잡초만 깎아 내기도 했다. 위 집은 야외 주차장을 콘크리트로 발라 버렸고 다른 집은 데크로 마당의 상당 부분을 채우기도 했다. 잔디가 곱게 자란 넓은 정원에 대한 로망은 막상 살아보면 잡초로 인해 절망으로 바뀌기 십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