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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Jan 29. 2023

JBL C35 Fairfield

2007년도 경험


2007년 초 그동안 서울과 해외에서만 근무를 하다가 오산 사업장으로 내려가기로 결정을 했다. 커리어 관리 차원에서 현장 근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지방 근무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원룸을 하나 임대해서 쓰게 해 주었다. 서울에서 오산까지 통근버스도 운행되고 있어서 출퇴근이 가능도 했으나 내 체력으로 견디어 낼 자신이 없어서 주중에는 오산 원룸에서 생활하고 주말에는 서울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하기로 했다.

오디오 동호인들이라면 모두 공감을 하시리라 생각하는데 이동이 결정되고 나서 맨 먼저 든 생각은 어떻게 오디오를 한 세트 더 만들어 내려갈까 하는 것이었다. 나름대로 원칙을 정했다. 서울로 되돌아올 경우를 생각해서 투자를 최소화하자고 정했다. 집에 가지고 있는 유닛(Unit)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스피커를 구성한다.
 그리고 앰프는 진공관 인티 앰프(Integrated Amplifier)로 하고 CDP는 집에 있는 포터블로 한다. 집에 여유로 가지고 있는 스피커 유닛은 375 드라이버와 진선 벌집혼 그리고 JBL 2395 혼이었다. 따라서 인클로저(Enclosure)와 우퍼(Woofer) 네트워크(Network)와 트위터(Tweeter)를 새로 구매해야만 했다.

우퍼는 안양에서 JBL 2215를 구할 수 있었다. 2215는 LE15A의 프로버전으로 강력한 마그넷을 바탕으로 깊고 중후한 저역을 내준다. 그리고 당진에서 7000Hz가 크로스오버인 JBL 3105 네트워크와 2402H 트위터를 구했다. 2402H는 075의 페라이트  프로용 버전이다.


중형차의 트렁크와 뒷 좌석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15인치 통을 구한다고 인터넷에 올렸더니 원당에서 연락이 왔다. JBL C35 통이었는데 국내 제일케이스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C35는 Fairfield라고도 불리는데 우퍼와 소형 드라이버의 조합에 의한 투웨이(Two Ways) 구성이 기본이다.


JBL에서는 C35에 몇 가지 조합을 추천하고 있는데

1) 001 시스템 = 130A + LE175 DLH

2) 002 시스템 = D123 + 075

3) 030 시스템 = D130 + 075


그 외에 1964년에는 S18이라고 명명된 3 웨이 시스템도 추천을 하는데 LE15A 우퍼, 375 드라이버, 075 조합이었다. 따라서 이 당시 내가 만들었던 스피커는 S18에 가까운 시스템이라고 봐야 한다. 많은 품이 들긴 했지만 어찌 되었건 아드레날린이 풍부하게 분비됨을 느끼면서 구성한 스피커가 아래 사진이다.


구성을 다시 정리하면,

우퍼는 JBL 2215B(LE15의 프로 버전)
통은 국내 제작 JBL C35
드라이버는 JBL 375
혼은 JBL 2395
트위터는 2402H
네트워크는 3110(800Hz), 3105(7000Hz)다.


또한 진선 벌집혼도 오산으로 가지고 내려가 바꾸어 가며 들어보았다.


투자를 최소화해야 하겠다는 스스로 세운 원칙도 있었지만 서울 집에 있는 시스템이 3 웨이 멀티 시스템인 관계로 여기에는 패시브 네트워크(Passive Network)를 사용하여 스피커를 만들고 이를 인티 앰프로 심플하게 울리고 싶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멀티 앰플리파이어 시스템을 운용해 왔던 관계로 인티 앰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하여 발굴한 제품이 광우 뮤즈 KI-40W였다. 당시 가격이 35만 원 내외였고 사용자들의 사용기가 호평일색이었다. 전원부가 독립되어 있고 출력관은 EL34로 PP로 구동하고 초단관에 12 AT7, 12 AU7이 사용된다.

12 AT7 관은 Telefunken으로, 12 AU7 관은 Mulllard로 교체하였지만 출력관은 구매 시 꼽혀있던 관을 그대로 사용하기로 했다. 고전관으로 바꾸려면 앰프 값보다 더 들었기도 했지만 소리가 그럭저럭 괜찮았기 때문이다. 저역은 풍성하게는 재생해 주었으나 약간 퍼지는 성향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애교로 받아들일만했다. 전체적으로 Value for Money의 전형적인 제품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내 시스템의 정점은 Panasonic Portable CDP라고 생각한다. 불균형에서 오는 일상의 통렬한 깨부수기가 그 당시의 내 생활환경과 비슷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앙증스러운 생김새가 투박하고 커다란 스피커와 대비되어 CD를 갈아 낄 때마다 웃음을 선사해 주었다. 과거에 자금의 제약으로 JBL 4344를 사서 Musical Fidelity A1-X Integrated Amplifier로 구동할까 생각했던 시절을 생각나게도 했다.


세팅을 하고 나서 들어보니 기대를 뛰어넘어 내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었다. 그러나 한 가지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성 Vocal은 문제가 많았는데, 맑고 청명해야 할 소리가 네트워크의 개입으로 인하여 투명도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멀티 시스템이라면 어찌해볼 도리가 많겠지만 현재 이 스피커를 구동할 때는 일정 부분 타협을 하자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바다. 시스템을 다스리기보다는 내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인터넷에 간단한 사용기를 올리고 내가 주중에 혼자 있으니 주변에 계시는 분들 놀러 오시라고 했다. 늦은 방문도 환영한다고 했다. 내가 오산이 있었던 10개월 동안 세 분이 놀려 오셨었고 많은 분들과 편안하게 전화 통화를 했다. 서울에서 한 분이 방문을 하셔서 오디오를 주제로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집 바로 옆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시는 분도 오디오 동호인이어서 몇 번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지막 한 분은 광주직할시에 사기는 모 화백님이셨다. 이 화백님과는 처음에 멀티 앰플리파이어시스템에 대한 문의에 답하는 것으로 연이 맺어졌다. 이후 친분 관계가 쌓였을 때 이분이 서울서 매물로 나온 진선 벌집혼을 구매해 달라는 요청을 하셨다. 당시에 시간이 맞지 않으니 구매해서 오산 집에 보관하고 있으면 시간 날 때 찾으러 오시겠다고 하셨다. 이런 우연한 사건으로 인하여 사진 상의 더블 드라이버(Double Drivers), 더블 혼(Double Horns)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시작 전에 어떤 구체적인 음의 이미지를 그린 것은 아니고 궁금해서 해 본 것이다. 나는 완성된 음을 즐기기보다는 완성을 향해 가는 과정을 중시하고 이 과정이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더블드라이버 시스템이라 하더라도 같은 혼에 JBL 2329와 같은 더블 어댑터를 달아 구현하면 좀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당시에 가능했던 상황인 두 개의 벌집혼에 구현해 보기로 했다. 375 드라이버를 벌집혼에 달아서 병렬로 연결해서 2402H 트위터와 2215B 우퍼는 과거와 동일했다. 시각적으로는 무언가 확연히 다른 소리가 뛰어나올 것만 같은 기대감을 받았지만 귀는 냉정했다. 좀 더 고역이 부드러워진 느낌은 받았지만 기대감만큼은 아니었다.


하기야 JBL도 넓은 공간을 커버하기 위하여 더블 드라이버를 사용했지 음질을 개선하기 위하여 이런 시도를 한 역사는 없다. 이 화백님은 얼마 후 오산을 방문하셔서 멀티 앰플리파이어 시스템을 직접 내 시스템에 구현해 보시고 나서 벌집혼을 가지고 떠나셨다. 광주 화백님은 성의(?)로 그림 한 점을 주고 가셨는데 이 그림은 현재도 내 거실에서 그 당시의 추억을 일으키는 촉매제 역할을 충실히 해주고 있다.


남자는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은 것을 얻게 되지만 반대급부로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한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오디오를 취미로 갖게 되면 부부는 수많은 갈등을 겪게 되는데 나는 이를 ‘자원 전쟁’이라고 부른다. 아내는 남편의 취미로 인하여 자기 자신의 희귀한 자원을 남편이 함부로 쓰거나 자기와 공유하지 않는데 따른 불만이 높아진다. 돈이 낭비되고, 시간을 같이 갖지 않고 혼자만의 세계로 침잠해 버리고, 공간을 좁게 만들거나 어지럽히고, 애정을 사람이 아닌 물건에 쏟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은 아내와 취미 생활을 같이 하지 않는 한 극복하기 어렵다. 나 자신도 이런 갈등을 인생의 한 부분이려니 여기며 사는 평범한 인간이다. 나는 오산에서 주중 독신 생활을 10개월여 했는데 이 시기가 결혼 후 가장 자유롭고 여유로웠던 시기였다. 퇴근 후 오디오를 사러 눈치 보지 않고 돌아다녔고, 늦은 시간에 오디오 동호인의 방문을 즐겼다. 회식 후 음악 들으며 맥주 마시기 위하여 직원들을 초청해도 사전 양해를 구할 사람이 없었다. 자원전쟁이 없었던 평화의 나날이었다. 


다시 평범한 가정생활로 복귀한 2012년 10월, 애 입시 때문에 오디오 전원도 켜지 못했다. 하지만 2012년 말에는 자원전쟁이 종식은 되지는 않았만 평화협정 정도는 맺어서 그동안 미루었던 취미 생활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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