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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경심전 Jan 30. 2023

목공, 실패와 몰입

전원생활의 버킷 리스트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오디오에 이어 가장 해보고 싶었던 일이 목공이었다. 음이 나를 끌어당기는 것만큼이나 나무의 속살은 원초적으로 나를 흥분하게 만든다. 시각적으로는 사춘기에 본 이성의 누드 사진 같고, 촉각적으로는 키스할 때 느껴지는 속 입술의 느낌과 같다고나 할까? 전원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가벼운 소품을 만들어 볼 수 있는 환경을 갖게 되었다. 또한 배움의 측면에서는 집사람의 친구가 목공을 배우며 각종 가구를 만든 것을 보았는데 여자가 할 수 있다면 나도 무난히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섬세한 손 감각은 어느 정도 타고났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


목공 기초를 배우다
 
목공을 배우라고 아내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내는 목공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었던 친구가 목공방에 다니면서 식탁, 탁자, 침대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심심하면 친구를 쫓아가서 시간을 같이 보냈다. 어느 날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당신 오디오 장식장 만들어 줄까?” 뭔 소리하는가 하고 무언으로 반문하고 있던 나에게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친구가 다니는 목공방에서는 가구 디자인만 있으면 나무를 재단해서 판매한다고 했다. 원래는 회원을 가입하고 가구 제작을 해야만 하기만 사장님의 배려로 나무만 사서 진행하기로 했다고 한다. 심플하게 박스형 상자 2개를 만들어 왔다. 칠은 내가 프랑스 출장 중에 사 온 친환경 페인트로 마감을 했다. 바퀴를 달아서 이동이 수월하게 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잘 쓰고 있다. 이를 계기로 나와 아내는 목공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때는 곤지암에서 생활하고 있을 때라서 목공을 시작해 볼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남의 집에 목공 기계나 작업대를 들여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2년이 지나고 용인으로 주택을 사서 이사를 하고 나서 목공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내가 목공 학교에 다녀 보라고 권했다. 인터넷에서 도시 집 근처 공방을 찾아 주었다. 주말반 3개월 코스를 등록했다. 첫 번째 강의는 각종 공구를 체험해 보는 시간이었다. 전기톱, 각도톱, 대패, 드릴, 샌더 등을 다루어 보았다. 그다음부터는 서랍과 의자를 직접 만들어 보는 과정을 거쳤다. 


테이블 상판을 사다
 
미르 마을에 이사하고 나서 근처 목공방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잼아트라는 공방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언제 한번 놀러 가도 되냐고 물었다. 가능한 요일과 시간대를 확인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해 11월 아내가 친구들을 초대하면서 토요일 오후에 시간이 생겼다. 전화를 걸어 약속을 잡고 방문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공방 주인이 맞아 주었다. 서양화가 전공이고 목공을 배워서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고 한다. 가장 궁금한 목공 교육 과정을 알아보니 화요일 오후에 한번 한다고 한다. 은퇴 전에는 참가할 수 없으니 아쉬웠다. 주인이 공방을 구경시켜 주었다. 각종 목재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끄는 판자가 있어 수종을 물어보니 아프로모시아라고 했다. 아프리카가 산지인 하드우드인데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고 무엇보다도 나뭇결이 촘촘하고 아름다웠다. 전문가들은 우드 슬랩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이때 알았다. 나무를 판매도 한다고 해서 구매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더 듬직했다 두께가 7~8Cm는 되어 보였고 가로는 80Cm 이상 세로는 70Cm 이상이었다. 무게도 40~50킬로그램 정도가 되는 듯했다. 혼자 들기가 버거웠다. 공방 사장이 집까지 운반해 주었다. 애초에는 집에서 PC용 책상 상판으로 쓰려했으나, 아내가 너무 두껍다고 거실 탁자로 용도를 바꾸는 바람에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탁자로 쓰려면 다리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바퀴를 달아서 이동이 용이하게 해 달라는 주문도 같이 들어왔다. 다리를 대용할 만한 못 쓰는 가구가 하나 있었다. 안락의자에 딸린 스툴이었다. 자작나무 합판을 이용해 제작된 이 스툴은 원형 지지대를 기반으로 두 개의 다리를 올려서 이 다리 위에 발걸이가 얹어져 있는 구조였다. 발걸이 상판을 뜯어내고 이 위에 아프로 모시아 상판을 얹기로 했다. 바퀴도 원형 지지대 밑에 다섯 개 정도 부착하면 균형을 잡는데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실패의 연속이었던 오일칠
 
지지대 제작은 무난히 마쳤지만 상판 작업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페인트 칠도 아닌 단순한 오일 마감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초보자는 수업료를 지불해야만 했다. 마감 칠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아우로나 텅오일을 가장 많이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유동 기름이라고 하는 텅오일은 중국에서 난다고 한다. 고대로부터 중국의 고급 가구 마감재로 쓰였다. 유동 기름이 마감재로 쓰이는 이유는 공기 중에서 마르면서 굳어져서 막을 형성하고 광택을 내고 방수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참기름은 굳기보다는 썩을 가능성이 더 높아 마감재로 쓰이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적당한 가격의 텅오일을 시켰다.
 아내는 친구가 목공을 배울 때 공방에 놀러 다니면서 오일 마감을 보고 배운 적이 있었다. 나는 경험이 전혀 없어서 기름칠을 아내에게 해 보라고 했다. 아내는 오일을 헝겊에 살짝 묻혀서 아주 엷게 여러 번 문질러 주었다. 별로 힘 들이지 않고. 아프로 모시아는 오일을 바르자 무늬가 극적으로 변했다. 밋밋하고 엷은 갈색이 텅오일을 만나자 색이 진해지고 윤이 났다. 처음 경험해 보는 나뭇결의 변신이 신기하고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칠을 다 하고 나서 자세히 살펴보니 군데군데 얼룩이 져 있었다. 오일이 많이 발라진 곳에는 진하게 칠해져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으로 보였다. 하루가 지난 다음 진하게 칠해진 부분을 사포로 갈아내고 연한 부분은 기름칠을 추가적으로 해 보았으나 균일하게 맞출 수가 없었다. 첫 번째 실패였다.


 오일을 바르기 전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사포로 갈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오일칠 갈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오일기가 사포에 달라붙어 사포가 금세 못쓰게 되어버렸다. 그리고 탁자 상판의 면적이 넓어 손으로 다 갈아내기는 무리였다. 전동 샌더기를 사기로 했다. 어차피 향후 목공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공구였다. 보쉬 원형 샌더기와 원형 사포를 같이 구매했다. 그 주에 용인으로 내려오자마자 바로 전동 샌더기로 상판을 밀어 보았다. 손으로 사포 질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기름기가 전동 샌더의 사포에 달라붙기는 했으나 전기의 강력한 힘으로 서서히 칠을 벗겨낼 수 있었다. 처음 상판을 살 때와 비슷한 상태로 칠을 벗겨낸 다음 텅오일을 충분히 발라주었다. 기름막이 형성되기 전이므로 나무가 기름을 다 흡수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기대는 빗나갔다. 기름이 마르면서 군데군데 너무 기름칠이 많이 된 곳에 기름이 엉겨 붙어 있어서 흉하게 보였다. 두 번째 실패였다.


 가지고 있던 목공 서적을 읽어 보며 실패의 원인을 찾아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오일을 충분하게 발라준 다음에 30여분 정도를 오일이 나무에 흡수될 수 있도록 기다린다. 이후에 마른 천으로 나무가 흡수하지 못한 오일을 닦아내야 한다고 했다. 다시 전동 샌더로 오일칠을 다 밀어냈다.  오일을 적당히 바른 다음 몇 번 마른 천으로 닦아냈다. 이 과정을 세 번 정도 반복한 후에야 겨우 거실 탁자를 완성해 낼 수 있었다. 이 탁자를 만들면서 초보는 실패를 통해서 목공의 많은 부분을 배웠다. 칠하는 방법, 칠 재료의 특성, 사포질, 전동 샌더 사용법 등. 이후 목공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한 소중한 밑바탕이 되어 주었다. 내 앞에는 텅오일로 제대로 마감이 된 탁자가 놓여 있다. 단순히 돈 주고 사온 탁자가 아니라 나의 땀과 노력과 추억이 같이 칠해진 친구 같은 탁자가 되었다. 


몰입의 경험
쓸모가 정해지지 않은 나무로부터 사용자의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서 용도가 명확한 물건으로 탈 바꿈 시키는 과정을 통하여 색다른 심리적인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목공 작업을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긴장하고 이완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나무를 자르거나 도구를 쓸 때는 바짝 긴장해야 하지만 구상을 한다든지, 사포질을 하거나, 기름칠을 할 때는 무념무상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된다.  목공 작업에 푹 빠져 몰두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고 주변 사물이 사라져 버린다. 심지어 작업의 주체인 나 자신조차 잊어버린다. 완벽한 몰입의 경험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이라는 책에서 삶을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고 있는 경험을 질을 향상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즐거움을 느끼는데 여기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다고 한다. 우선 과제는 너무 어렵지 않아서 내가 완성시킬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제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과제에 대한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이러한 과제 수행 중에는 자아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고, 시간의 개념이 왜곡된다. 목공 작업은 이 책에서 보았던 조건들을 직접 몸과 마음으로 경험하고 느껴 보았던 몇 안 되는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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