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경심전 Jan 31. 2023

목공의 의미

소품만들기

목공이란 나무라는 재료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을 인간의 쓸모 중 하나로 실현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나무는 썩어서 자연으로 되돌아가기부터 인간에 의하여 무엇으로 가공되기까지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다. 만드는 사람의 상상력과 만들기 실력에 의하여 가능성 중에 하나가 실현된다. 하나의 나무토막으로 커피 그라인더 바디를 만든다고 생각해 보자. 보유한 지식과 상상력과 타인의 작품을 참조하여 디자인을 해보게 된다. 디자인은 몇 가지 제약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우선 나무가 가진 고유의 형태다. 주물로 형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 이상은 내가 확보한 재료의 형태가 제약이며 이 제약이 디자인의 출발이 된다. 두 번째는 만들고자 하는 물건이 요구하는 기능이 디자인을 제약한다. 그라인더를 만들고자 한다면 커피 콩이 갈리는 메커니즘, 이 메커니즘을 통과한 커피가 통과하는 길, 분쇄된 커피가 모아지는 통 등 필수적인 기능이 작동하도록 해야만 한다. 마지막으로는 작업자가 보유한 목공 실력과 공구의 양과 질이 디자인을 결정한다. 만들 수 있을 정도로만 구상하기 마련이다.

 

소품 만들기

미르 마을에는 정원에서 잘라 낸 나무들을 버리는 장소가 지정되어 있다.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버려져 있어 톱을 들고 보물 찾기에 나섰다. 이것저것 베어 보면 개중에 속살이 예쁘거나 특이한 나무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말이다. 무작정 이 나무 저 나무 잘라 보기 전에 잘린 부분들을 관찰하면서 나이테가 조밀하면서 색을 가지고 있는 나무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그중에 눈길을 잡아 끄는 나무가 하나 있었다. 향나무인지 주목인지 불분명했다. 잘린 부분이 약간 썩어 있어 속이 잘 보이지는 않았으나 무언가 느껴지는 바가 있었다. 어릴 적 제사를 지낼 때 본 향나무 속은 붉었던 기억이 있다. 언뜻 이 기억이 스치고 지나갔다. 썩은 부위 위 부분을 잘라 보았다. 속을 보는 순간 감탄이 절로 흘러나왔다. 가운데 조그마한 붉은 심이 박혀 있고 나이테 중간중간에도 붉은 줄이 박혀 있어서 독특한 나이테를 형성하고 있었다. 옆에 다른 향나무가 있어서 잘라 보았다. 선명한 진자주색의 나이테가 나타났다. 내 생전 처음 보는 강렬한 색을 간직한 나무였다. 집으로 가져와 한 부분만 잘라내고 나머지는 음지의 창고에 넣어 두었다. 자연 건조되기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이후에도 지나다니면서 벚나무, 뽕나무와 같은 버려진 나무들을 보면 주어다 집에 모아 두었다.
 남이섬의 호텔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독특한 작품을 보았다. 나무를 세로로 자른 후 조각들을 붙여서 만든 액자였다. 서로 다른 나무들의 나이테가 어울려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자아냈다. 사진에 담았다. 언젠가 나도 나이테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는 소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미르마을 나무 쓰레기장에서 주워 온 나무들을 건조시키면서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연필꽂이
 서울과 용인에 커피 그라인더가 한 개씩 있었지만 원목을 활용하여 그라인더를 하나 더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본 참나무 원목 그라인더가 방아쇠를 당기는 역할을 했다 그라인더 주물은 미국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부탁하여 택배로 받았다. 바디는 쓰레기장에서 주어와 보관하고 있었던 향나무를 활용하기로 했다. 그라인더 바디에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자주색의 부정형 나이테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변재를 일정 부분 파냈다 향나무의 변재는 연한 색이고 심재는 붉은색이다. 심재의 무늬가 다양하고 화려하기 때문에 심재를 드러나게 하기 위해서였다. 변재를 깎아 내는 단계까지는 막힘없이 진행되었다. 사포질을 말끔히 하고 오일을 발라 주었더니 향나무 특유의 붉은 무늬가 생생하게 살아나며 아름다운 몸매를 드러내 주었다. 그러나 다음 단계가 문제였다. 마땅한 도구가 없어 속을 파내고 갈아진 커피를 담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기가 곤란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방 한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리고 일 년 정도가 흘렀다. 이리저리 굴러 다니고 있는 만년필, 볼펜, 연필 등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 무언가 적당한 것이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구석에 처박혀 있던 향나무 덩어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일 년 전 커피 그라인더를 만들기 위해 다듬어 두었던 나무 조각이었다. 천천히 살펴보니 연필꽂이를 만들기에 적당한 굵기와 높이를 가지고 있었다. 인터넷을 검색하여 참고할 디자인을 찾아냈다. 필기도구를 여러 개 꽂을 수 있는 큰 구멍과 그 주변에 한 자루씩 꽂을 수 있는 작은 직경의 구멍을 세 개 뚫기로 결정했다. 큰 구멍은 싱크대 설치용 장부를 구매해서 뚫었고 작은 크기의 구멍은 가지고 있던 드릴로 쉽게 해결했다.
 완성해서 써보니 기능적인 측면보다는 모양새가 자연스러운 화려함이 있어 보기에 좋았다. 그리고 나무 탁자에 올려놓을 때 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편안함을 주는 울림이었다. 쇠로 된 필통이 내는 경질의 딱딱한 소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아내도 다른 소품 들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 필통은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 주었다. 그러면서 다른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으니 하나 더 만들어 달라고 했다. 지금 이 필통에는 2000년 프랑스 근무를 끝내고 들어오면서 동료들로부터 선물 받은 몽블랑 만년필, 2010년 캐나다 거래선으로부터 내 이름을 새겨서 선물 받은 볼펜 등 추억이 가득한 필기구들이 담겨 있다. 남은 생을 같이 할 소중한 친구 하나가 추가되었다.


 
차 데우는 거치대
 
미르마을 정원 한 구석에서 죽어서 잘라진 매실나무 둥치가 눈에 띄었다. 위 부분은 베어서 난로 피울 때 불쏘시개로 썼었다. 지난번에 잘라낸 부위를 살펴보니 가장자리는 썩었지만 안쪽은 온전했다. 심재 부위는 비에 젖어 붉은색을 발하고 있었다. 밑동 바로 위에는 가지가 분기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을 종으로 잘라 내기로 했다. 이 부분은 다양한 무늬를 연출한다. 어렸을 적 장작을 패면서 알았다. 잘라내서 세심히 살펴보니 색과 결이 기대 이상이었다. 가지가 분기된 지점이라 심이 두 군데 있었고, 자라면서 주변의 나이테가 하나로 합쳐진 형상이었다. 무늬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형상 같기도 하고, 온도계의 밑 부분 같기도 하다.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하여 마음에 들었다. 자른 부분을 사포로 밀어 보았다. 대패질이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매끈하게 다듬어지지는 않았다. 사포질을 하면 나이테의 결이 좀 더 선명해지리라 기대했으나 그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문득 목공 하시는 분들이 천연 오일을 바르는 것이 생각나서 식용으로 쓰는 포도 씨 기름을 발라 보기로 했다. 헝겊에 기름을 몇 방울 떨어트린 다음에 나이테에 대고 문질러 보았다. 탈피에 가까운 효과는 극적이었다. 밋밋하고 흐릿한 무늬에서 검은 자주색에 가까운 붉은색이 시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화려한 나비가 되었다. 나이테에 나 있는 실핏줄 같은 가는 선들을 선명하게 들어내면서 극적인 변신을 했다. 

한 동안은 특별한 용도 없이 무늬 감상용 소품으로만 보관하고 있었다. 어느 겨울 아내가 차를 식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유리로 만든 거치대 위에 차 주전자를 올려놓는 모습을 본 순간 영감이 떠올랐다. 매실나무토막 가운데에 장부로 구멍을 냈다. 초를 놓아두는 부분이다. 주변은 다듬어서 주전자를 안정되게 올려놓을 수 있도록 했다. 초에 산소를 제공하기 위하여 토막 옆으로는 드릴로 구멍을 두 개 내었다. 따뜻함이 그리운 계절이 시작되면, 차의 온기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용하게 쓰고 있다가 현재는 무드 등의 받침대로 쓰고 있다.   


휴대폰 거치대
 회사에서 만드는 새로운 휴대폰에 음악 기능이 대폭 강화되어 출시되었다. 그 당시 회사 블로거로 활동 중이었고 글 감을 찾고 있었던 중이어서 마침 잘 되었다 싶었다. 내 하이파이 오디오 시스템에 연결하여 폰의 오디오 기능을 테스트 한 기사를 써 보기로 했다. 블로그 기사를 회사 사이트에 올리기 위해서는 사진도 같이 찍어야 했는데 폰을 돋보이게 찍기 위해서는 거치대가 필요했다. 디자인을 대충 해보니 두께 3cm 크기 15Cm의 밑판과, 두께 1Cm 크기 15Cm 판 두 개만 있으면 제작이 가능해 보였다. 당시 목공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쓰고 남은 자투리 중에 적당한 것이 있어 공방 사장님에게 부탁해서 들고 왔다. 제작은 간단했다. 밑판으로 쓸 나무를 전기톱의 각도 자르기 기능을 활용하여 45도로 잘랐다. 그 자른 면에 1Cm 두께의 판을 45도로 기대어 본드로 붙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오일을 살짝 발라주었더니 기능성이 뛰어난 제품으로 태어났다. 블로그 글을 파워포인트로 발표할 기회가 있어 청중에게 이 거치대 사진을 보여 주었더니 약간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퇴근 후에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이 거치대에 폰을 보관한다.


목공의 쓸모
 
가공된 목재를 사용하는 경우 그 나무의 색과 결, 건종 정도와 같은 장단점을 파악한 상태에서 작업을 할 수 있다. 반면에 자연 그대로의 가공되지 않은 목재를 사용하다 보면 뜻밖의 만남에 감탄과 즐거움을 느끼게 된다. 원목은 바깥에서 안으로 파고 들어가다 보면 고유의 아름다운 색과 결을 드러내 준다. 그것도 한순간이 아니라 시시각각 작업이 진행되면서 아름다움을 구현해 내는 재미가 만만치 않다. 

무엇을 만든다는 의미는 무한대에 가까운 질료의 잠재 형상 중 하나를 현실화시키는 행위라고 했다. 이 물건을 자신이 직접 사용한다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제품을 사용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기성품들을 배제하고 자기 자신의 땀과 노력과 시간과 상상력이 스며 있는 물건을 만드는 행위는 금전적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나름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휴식을 통하여 삶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목공이라는 취미는 여타 취미와 마찬가지로 작업하는 동안 몰입이라는 심리적인 기재를 통하여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해 준다. 내가 직접 만들었다는 심리적인 만족감도 크다. 더불어 나무라는 재료가 제공하는 특유의 친근함과 편안함으로 정서적인 안정감도 얻을 수 있다.

생활에 필요한 소품을 스스로 만들어 쓰는 재미는 쏠쏠하다. 간단하게 만들 수 있어 힘이 들지 않아 좋다.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디자인을 구상하기 위한 뇌의 방황을 즐길 수 있다. 매끈하게 사포질 된 물건에서 느껴지는 감각의 미묘함은 중독성이 있다. 오일 한 방울에 마법처럼 변신하는 무늬결의 아름다움은 언제 봐도 새롭다. 완성된 물건을 곁에 두고 쓰다가 눈길이 가면 만들었던 과정이 생생하게 되살아 난다. 내가 만든 물건에서만 담겨있는 고유한 가치다.

매거진의 이전글 목공, 실패와 몰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