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조건과 평가
풍수 사상을 기복을 위한 미신으로 치부하기에는 풍수가 현실 생활과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전원생활 10년을 하면서 깨달았다. 조상의 묘 자리를 명당자리에 써서 후손이 잘되기를 비는 풍수 사상은 과학적으로 그 근거가 희박하다. 하지만 살아생전 몸 담을 집터에 명당자리가 있다는 주장은 과학이나 상식, 법적인 측면에서 타당성을 따져 볼 수 있다.
과학적인 관점에서 명당의 본질은 인간이 소비하는 에너지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생물은 몇십 억년 전에 활동을 시작하게 됨으로써 에너지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다른 유기물을 섭취하여 에너지를 얻던지, 아니면 태양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사용 가능한 다른 형태의 에너지로 전환하건 간에. 이 에너지 획득 메커니즘은 현대의 모든 생물들에게 그대로 유전되었고 인간은 그중 한 종일뿐이다. 인간 생활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의식주는 모두 에너지를 취득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적게 소비하기 위한 방법들과 연관되어 있다. 인간의 삶의 터전 또한 마찬가지다. 따라서 에너지를 수월하게 많이 얻고, 적게 쓸 수 있는 장소가 명당이다. 햇빛이 낮 시간 내내 들고 겨울에 북풍을 막아주어 최소한의 난방이 필요한 장소가 살기 좋은 곳이다.
상식적으로는 명당은 교통이 편리한 장소여야 하고, 집 주변에 생활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어야 한다. 법적으로는 맹지가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5도 2촌의 생활을 위한 명당의 조건을 전통적인 명당의 요건에 현대적인 조건을 가미하여 정리해 보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땅 자체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 좋아야 한다.
햇빛 에너지를 긴 시간 동안 받을 수 있는 동남향, 남향, 서남향이 좋다. 지반이 단단하고 암반이나 습지가 아니어야 한다. 가파른 언덕이 아니고 나지막한 구릉이나 평지이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주변환경이 양호해야 한다.
북풍을 막아 줄 수 있는 뒷산이 있으면 좋고, 전경이 아름다우면 바라보는 재미를 준다. 배산에 비해 임수는 큰 의미는 없다고 본다. 습기가 많아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 혐오시설이 없어야 한다. 축사가 있으면 1km가 떨어져 있어도 냄새에 시달려야 한다. 공장이나 고압선이 지나는 곳도 피하는 게 좋다. 이웃은 있는 것이 좋다. 독립된 집은 외롭고 무섭고 도둑이 들 위험도 크다. 토착민들의 배타주의에 대해서는 뭐라고 탓하지 말자. 이질적인 요소가 짧은 기간에 스며들기는 쉽지 않다. 내가 먼저 다가가고 정성을 쏟을 일이다.
마지막으로, 주변 인프라가 좋아야 한다.
주말에만 와서 생활하는 곳이니 이동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서는 곤란하다. 고속도로나 국도를 이용하여 한 시간 반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고, 주변에 조그마한 읍이라도 있어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거나, 관심 있는 오락을 할 수 있어야 한다.
5도 2촌의 생활을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들을 위하여 땅 자체, 주변 환경, 주변 인프라 별로 세부 체크 리스트를 표 1과 같이 정리해 보았다. 방문했던 땅에 대하여 각 항목별로 점수를 매기고 비교를 해 보면 선택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표 1 명당을 고르기 위한 체크 리스트
땅을 사서 직접 집을 짓는 경우가 아니라면, 순서상 살기 좋은 마을을 찾아보는 게 먼저다. 마을을 정하고 나서 집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좀 더 나은 조건의 땅을 고르면 된다. 곤지암읍 연곡리, 포곡읍 미르마을은 명당터라고 할 만하다. 내가 살아 본 곳이라서 명당터라고 주장하고 싶지 않다. 내가 명당터라고 평가하고 심시숙 고해서 골라서 산 곳이다. 표 1을 내가 살아 본 두 마을의 집터를 평가해 보았다. 집이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체크 리스트를 약간 수정하였다. 땅의 방향, 땅 가격을 추가하고 맹지 여부는 삭제하였다.
곤지암읍 연곡리
마을 뒤에 제법 높은 산이 위치하고 있고, 산의 양 날개가 마을을 감싸 안고 있어 마을에 들어서면 아늑한 느낌이 든다. 마을 입구에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마을 중간에 축사가 한 동 있다. 연곡리 생활을 시작할 때 마을에 처음 들어간 순간 그동안 방문했던 마을들과는 격이 다르다고 느꼈다. 아직도 집을 지을 수 있는 터가 많이 남아 있고, 땅 값도 아직 서울 근교에 비하여 비싸지 않은 편이다.
표 2 곤지암읍 연곡리 집터 평가표
포곡읍 미르마을
서울에서 가깝다는 장점이 있지만 이로 인해 집 가격이 만만치 않다. 강남 기준 40분, 목동 기준 한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 3면이 야산으로 둘러 쌓여 마을이 안정감이 있고 아늑한 느낌이 강하다. 입구에 경비실이 있고 곳곳에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방범이 뛰어나다.
표 3 포곡읍 미르마을 집터 평가표
본 평가표의 맹점은 각 개개인의 경제상황이나 주거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각 항목 간 점수를 동일하게 부여한 점이다. 자기의 상황에 맞추어 특정 항목에 가중치를 부여하여 평가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예를 들면 큰돈 들이지 않겠다는 기준을 가지고 있으면 땅 가격에 다른 항목보다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여 평가하면 된다.
평가표의 장점은 고려해야 할 사항들을 빼놓지 않고 평가하여 신중한 평가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점이다. 감각적으로 선택하지 말고 객관적인 기준을 활용하면 실패해서 후회할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전원주택 고르는 기준에 대하여 알아보겠다. 땅 평가표와 집 평가를 종합하여 결정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