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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 구름 Sep 14. 2024

Tadasana

바르게 서기. 여행의 계기와 준비

타다(Tada)는 산을 뜻한다. 산은 든든하고 곧게 서있다. 이 자세는 산처럼 고요하고 올바르게 서있을 수 있도록 한다.

- 요가, 존재의 휴식 _ 류현민




왜 하필 인도로 요가를 배우러 가게 되었을까? 해외에서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길은 많다. 얼만큼의 기간 동안 요가를 배울지에 따라서도 나뉜다. 요가를 배우기 위해 대학을 다닐 수도 있고,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 달 내지 두 달간 단기로 배울 수도 있고, 여행지에서 Drop-in으로 한 시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그중 나는 시간이 여름으로 한정되어 있으므로 한 달간 요가를 배우는 방법을 택했다. 초보자가 요가를 기초부터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은 TTC(Teacher Training Center)라고도 불리는 요가지도자격증을 딸 수 있는 기관에 등록하는 것이다. 요가지도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요가원은 국내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있다. 인도와 더불어 한국인이 많이 가는 나라는 발리이다. 마음만 먹으면 이탈리아에서 지중해를 바라보며 요가를 배울 수도 있다. 가격은 지역에 따라, 시설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인도는 가격이 저렴한 만큼 위생이나 시설이 좋지 않은 평이 많았고, 발리는 보다 깔끔한 공간에서 요가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인도가 아니면 안 되었다. 요가를 시작한 지는 고작 2년이 안되었지만 이상하게 인도에서 요가를 배우고 오신 선생님들의 수업이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인도에서 공부를 하고 오신 선생님들이 건네는 한 마디의 말에서도 그 특유의 깊이와 에너지가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내게 인도란 요가를 배우는 곳이란 인식이 고요히 자리 잡았다. 여러 나라를 검색해 보다가 우연히 인도로 가는 비행기 편이 생각보다 저렴한 것을 발견하고 본격적으로 인도에 요가를 배우러 가는 것을 고려해 보았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요가를 배울 도시와 아쉬람을 고르는 일이었다. 인도에서 요가를 배울 수 있는 곳은 한국의 태권도장만큼 많다. 요가로 유명한 도시들은 다음과 같다.


1. 리시케시 (Rishikesh)  

요가의 세계 수도라고 불리며, 히말라야 기슭에 자리한 힌두교의 성지이다. 수많은 요가 아쉬람과 요가 학교가 있으며, 요가 수련자들이 명상과 영적 성장을 위해 찾는 곳이다.

2. 바라나시 (Varanasi)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스러운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요가뿐만 아니라 영적, 철학적 수련의 중심지이다.

3. 푸네 (Pune)  

푸네는 아헹가 요가(Iyengar Yoga)로 유명하다. 전 세계 요가 수련자들이 아헹가 요가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다.

4. 다람살라 (Dharamshala)  

히말라야 산자락에 위치한 다람살라는 달라이 라마가 살고 있는 곳이자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이다. 고요한 환경에서 요가와 명상을 수련할 수 있다.

5. 마이소르 (Mysore)  

아쉬탕가 요가(Ashtanga Yoga)의 발상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요가를 배우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수련자들이 마이소르를 방문하며, 전통적인 아쉬탕가 요가 수련법을 제공하는 K. Pattabhi Jois 아쉬탕가 요가 연구소가 있다.

6. 고아 (Goa)  

고아는 인도의 아름다운 해변 도시로, 요가 워크숍이 많이 열린다. 고요한 해변 환경에서 요가와 명상을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7. 첸나이 (Chennai)  

요가 철학과 학문적 접근에 중점을 둔 곳으로, 크리슈나마차리아 요가 만디람이 유명하다. 이곳은 요가의 치유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다양한 요가 치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이 중 큰 고민 없이 리시케시로 정했다. 요가의 수도는 어떤 곳일지 궁금했고, 무엇보다 도시의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리시케시는 술과 고기를 파는 곳을 찾아볼 수 없는 비건 마을이기도 하다. 인터넷상에 무수한 아쉬람이 있었지만 실제로 리시케시에 가보니 정말로 건물마다 요가원이 있는 게 신기했다. 아쉬람을 찾느라 며칠을 씨름한 끝에 한 곳을 골랐고 왕복 티켓을 끊으니 여행 준비가 다 끝난 기분이었다. 비행기 티켓은 왕복 56만 원, 한 달간의 아쉬람 등록비는 1050불, 약 140만 원이었다. 물론 다른 자잘한 비용들이 추가되어야 하겠지만 2백만 원으로 요가를 하루종일 하며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솔깃했다. 등록비는 숙식과 모든 교육이 포함된 비용이다. 일인실을 쓸지 다인실을 쓸지, 에어컨이 있는 방인지 없는 방인지에 따라 가격도 달랐다. 나는 에어컨이 없는 일인실을 예약했다. 에어컨이 없는 방을 선택한 건 그 후에 한 달간 더위로 인한 온갖 부정성과 싸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당시엔 7월의 인도가 얼마나 습하고 더운지 미처 생각하지 못했나 보다.

갠지스강과 리시케시




모든 눈송이는 떨어져야 할 그 자리에 떨어진다.
No snowflake ever falls in the wrong place.


올해 들어 좋아하게 된 문장이다. 작년 가을에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몇 년간 애써 간직해 온 꿈이 무너져 내렸다. 2024년의 하루를 버티게 해 준 건 새벽 요가와 두 권의 책이었다.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와 데이비드 호킨스의 '놓아버림'이다. 톨레가 현재에 온전히 존재하는 법을 알려주었다면, 호킨스는 현재에 머무르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들을 집착 없이 놓아버리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위의 책이 일상을 서있게 하는 커다란 두 기둥이었다면 마이클 싱어의 '될 일은 된다'는 잘게 부서진 에고 위에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서재에서 찾은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이라는 책을 통해 정화라는 단어에 꽂혔다. 세상의 부정성은 모두 내 안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나를 정화시키면 세상도 정화된다. 신성에 용서를 구하고, 감사함과 사랑을 표현하면 부정성이 없어진다. 그것이 곧 정화의 과정이었다. 이런 정화의 개념은 인도에 있는 내내 화두가 되어 여행지를 따라다녔다.


인도에 가기 전까지는 매일 아침 새벽이 밝으면 요가를 하러 나섰다. 해의 온기가 아침을 적시는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단단한 정체성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역에서 내려 걸어가는 지하통로는 에고를 내려놓는 길이었다. 갖은 욕구와 욕망과 편향을 놓아버리고 세상에 대한 나의 반응의 끈을 녹이는 연습을 했다.


요가의 한 동작 안에는 우주가 담겨있다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새벽 요가를 하며 완성된 무언가로부터 나오는 완결성은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느꼈다. 요가원에서 한 동작을 수행하기 위해 한 시간 동안 근력을 다졌다. 견갑골을 회전하는 법부터 하체에 힘을 주고 뻗는 법을 한 달간 연습한 끝에 하나의 자세가 몸에 받아들여졌다. 다리를 올리는 동작이 잘 안 될 때면 미래의 힘을 빌렸다. 죽기 전까지 요가를 할 작정이었으므로, 요가 자세들은 언젠가 내가 완성시켜야 하는 것들이다. 인생이 나무와 같다면 현재의 나는 웅크린 씨앗이었다. 그 동시에 꽃과 열매의 잠재력을 지닌 완전한 존재이다. 그런 잠재성을 인식하니 다리가 들어 올려졌다. 어떤 동작을 완성할지에 따라 요가의 시퀀스가 짜이듯이, 삶에서 무엇을 지향하고 있냐에 따라 하루는 다르게 흘러간다. 나의 지향점은 매 순간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었다. 강력한 현존의 감각을 유지할 수 있다면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한 그루 나무의 흔들림에서 오는 무한한 평화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요가를 하며 알게 되었다.





7월 첫날 뉴델리행 비행기를 탔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구름의 고장이었다. 육지에서 멀어지자 하늘의 언어에 가까워졌다. 부드럽고 청량한 하늘은 고요하고 맑은 또 하나의 세계였다. 가장 높은 구름 위에 오르니 땅 위로 올려다보이는 하늘인지 우주의 밑에 놓인 깊은 바다인지 분간할 수 없는 신비로운 푸른빛이 있었다. 한 치의 어둠을 허용하지 않는 하얀 구름은 모든 부정성이 정화된 순수한 영혼 같았다. 나는 그 맑은 하늘과 구름의 세계에 발을 들일 참이었다. 이번 생에 부여된 짧은 시간을 더 이상 때 묻히지 않고 묵은 때를 투명한 물과 높은 공기로 정화시키고 싶었다. 기억이 아닌 영감의 언어로, 머릿속 판단이 아닌 하늘의 흐름대로, 내게 주어진 운명에 맞서지 않고  바르게 서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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