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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와 구름 Sep 15. 2024

Urdhva Hastasana

부정성과 마주하기

알아차림과 생각은 무슨 관계인가? 알아차림은 공간이며, 그 공간이 스스로를 의식할 때 그 공간 안에 생각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
 
-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아쉬람에서 내 방에 붙은 이름은 SPACE였다. 공간이 지닌 의미는 많지만 이곳, 인도에서 바라보는 공간은 알아차림의 공간이다. 어떤 감정을 느낄 때 그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알아차리는 행위는 마음속에 새로운 공간을 두는 것과 같다. 과연 나는 인도라는 거친 땅 위에서 알아차림의 공간에 들어가 충분히 뒹굴 수 있을까.



한국의 일정 탓에 아쉬람에 입소일로 예정되었던 날짜보다 하루 늦게 갔다. 아쉬람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였다. 동기들은 아쉬람의 맨 위층인 4층 수련실에서 선생님의 몸 정렬(Alignment) 수업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요가 선생님께 늦게 와서 죄송하다 말하니 선생님께선 맑고 인자한 눈으로 '어제부로 우리는 모두 형제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 고맙다고도, 미안하다고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여름의 리시케시는 소란스러웠다. 골목마다 빵빵거리며 오가는 오토바이들은 고요와 평화를 찾기 위해 이곳에 온 사람들의 미간을 찡그리게 했다. 리시케시에 먼저 와서 적응한 동기 중 한 명이 말했다. 인도 사람들이 쉴 새 없이 경적을 울리는 건 자기들을 알아봐 달라고 손짓하는 행위라고.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도로 위의 경적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다.


인도의 아쉬람을 한국의 한옥마을처럼 작고 한적하며 인도 특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 건 오산이었다.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 나오는 아쉬람을 보며 로망을 품은 것도 기대를 꺾는 데에 한몫했다. 요가원들로 둘러싸인 작은 동네 타포반(Tapovan)은 어느 쪽을 바라봐도 공사로 분주했다. 수련실에서 요가를 할 때에도 해가 뜸과 동시에 철근콘크리트를 수작업으로 쌓아 올리는 뚝딱거리는 소리들 때문에 집중에 방해가 되었다.


나무, 흙, 철로 지어지는 건물들


아쉬람의 꼭대기층 수련실 창문엔 방충망이 없었다. 그래서 요가를 하다 보면 얼굴에 쉴 새 없이 파리가 달라붙었다. 파리가 얼마나 많은 소똥 위에 앉았을까 생각하니 손이 절로 올라갔다. 그러다 하루는 거리에 즐비한 소똥에 대한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파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파리는 마치 내가 리시케시의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며 두 발로 지형을 익히듯이 나의 눈과 입, 콧구멍과 귀를 번갈아가며 나를 탐색했다. 파리도 내게 호기심을 가지고 나를 알려고 끊임없이 두 날개와 발로 탐험 중이구나 생각하니 더러운 파리에서 호기심 가득한 파리로 관점이 바뀔 수 있었다.


행복한 상황 속에서 마음을 평화롭게 유지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불행한 상황 속에서 마음의 정화는 어렵다. 에어컨 없이 하루만 지내보자 한 게 벌써 일주일이 넘었을 때였다. 매번 방에 들어올 때 느껴지는 습하고 쾌쾌한 공기는 내 방을 판단하고 반응하게 만들었다. 형상을 넘어 있는 존재를 보려 할 때 사람의 모습이 장애물이 되는 것처럼 나의 방도 그러했다. 그러다가 책 '호오포노포노의 비밀'에서 소개되는 휴렌박사의 일화가 떠올랐다. 휴렌박사가 호텔 방에 들어가기 전에 묵어도 괜찮냐고 방에게 물으면 방이 대답한다고 했다. 그러면 그 방에게 감사를 구하고 용서와 사랑의 마음으로 방을 정화한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그 음식에게 말을 건넨다. 한 번은 햄버거를 먹을 일이 있었는데 휴렌박사는 한 입을 베어 물기 전에 햄버거에게 '너 때문에 혹여 배탈이 난다 해도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을 한 후 음식을 먹었다고 한다.


모든 부정적인 마음이 내 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나를 씻겨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는 내 공간을 숭배해보기로 했다. 인도에 머무르면서 이런 평화로운 공간이 없었다면 과연 오롯이 요가 수행에 임할 수 있었을까 싶었다. 싱잉볼을 들여와 방 앞에 두고는 방에 들어올 때마다 싱잉볼이 만들어내는 맑은 소리에 마음을 정렬했다. 매일 쏟아지는 비로부터 나를 지켜주며 시원하게도 따뜻하게도 해주는 이 방에 감사했다. 적어도 이곳에서 나의 방은 있는 그대로 있을 수 있게 해주는 하나뿐인 작은 우주였다.  이러한 존재 앞에서 청결을 유지하며 아껴주자 마음먹었다. 습기가 가득 차면 습기가 달아날 수 있게 환기를 시켜주고, 침대가 지저분해지면 물건들을 제자리로 옮기고 용서를 구했다. 그리고 외부에서와 같이 내면으로도 청결함을 유지하기로 했다.



Upper Tapov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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