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를 대하는 태도
요가는 삶이라는 게임을 위한 규칙을 담은 책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어느 누구도 질 필요가 없다. 게임이 거칠어서 여러분은 훈련을 열심히 해야만 한다. 이 게임에서 요구되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관찰해서 잘못을 바로잡으며, 대대로 찾아드는 좌절을 극복하려는 자발적인 의지이다. 또한 정직함과 한결같은 노력이 필요하며, 무엇보다 마음속의 사랑이 요구된다.
만일 여러분이 하늘과 땅 사이에 위치한 인간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데 흥미를 느낀다면, 또 여러분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 관심이 있으며 행복을 원하고 자유를 갈망한다면, 이미 여러분은 내면을 향한 여행에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 요가디피카(Light on life), B.K.S 아헹가
요가수업은 새벽 5시 반부터 저녁 7시까지 있었다. 일요일을 제외한 주 6일 수업이었다. 아침을 먹기 전에는 하타 요가와 프라나야마(호흡법)를, 오전시간에는 Alignment(몸 정렬) 요가, 아헹가 요가, 만트라 챈팅을, 오후에는 요가 철학과 아쉬탕가 요가를 배웠다. 하루에 하나 혹은 두 가지의 아사나(동작)를 완성해 나간다. 이 일과는 앞으로 한 달 동안 계속될 루틴이었다.
한국에서 배웠던 요가 학원들과 인도에서의 요가 TTC(요가지도자과정)와의 차이점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요가를 기본 동작부터 순차적으로 배운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몸의 움직임으로 하는 요가인 아사나만 배우지 않고 조금 더 큰 범위의 요가를 다룬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선 늘 잘하는 사람들 주위에서 요가를 했기 때문에 동작들을 하나하나 배운다기보단 선생님의 시퀀스를 쫓아가며 선생님과 옆 사람, 앞사람을 보며 동작을 따라 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여기서는 모두가 처음 시작하는 초보자임을 가정하고 첫 수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기초적인 동작들부터 차근차근 만들어 나갔다. 그래서 어떤 자세들이 요가의 기본자세들인지 알 수 있었던 점이 요린이였던 나로서는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하타 요가와 아쉬탕가 요가, 그리고 아헹가 요가는 한국에서도 몇 번 접해봤어서 익숙했다. 하지만 프라나야마와 만트라 챈팅, 요가 철학 수업은 처음 들어보는 만큼 신선했다. 특히 좋아하는 수업은 요가 철학 수업이었다. 철학 수업은 한국에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철학을, 그것도 인도 철학을 우리말이 아닌 영어로 배운다는 게 두려웠다. 첫 수업을 듣자마자 그 걱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딱딱한 이론을 이야기처럼 재밌게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수업 방식은 요가의 양대 성전인 바가바드기타와 요가수트라에 언급되는 개념들을 실생활에 접목해 나가며 배워나가는 식이었다. 요가가 단순히 몸을 이완시키는 운동인 줄만 알았지 이토록 오랜 역사를 통해 다져진, 이론과 실천이 결합된 수행법인지는 몰랐다.
요가(yoga)의 어원은 '말과 마차를 결합시키다'라는 의미의 어근 'yuj'에서 기원했다고 한다. 마부는 마차에 앉아 길을 달린다. 마부(의식)는 말(감각)에 의해 끊임없이 요동치는 마차(몸)가 항상 평정을 유지하도록 해야한다. 마차와 말 사이를 이어주는 매개체, 마차와 말을 합일시켜 올바르게 말을 조절하게 하는 마부의 채찍이 바로 요가이다.* 이렇듯 요가는 본래 삶을 위한 거대한 체계이며 자세 수련은 그 작은 일부에 불과했다.
요가철학 수업 중 관심 있게 들은 내용 중 하나는 몸을 수련하기 전 갖춰야 할 마음 가짐이었다. 불교에 계율이 있고, 기독교엔 십계명이 있다면, 우주와의 합일을 위한 요가에는 몸으로 하는 수련을 하기 앞서 토대가 되는 삶의 방식이 있다. 그것은 자세 수련(아사나)에 선행되는 두 단계인 야마(Yama)와 니야마(Niyama)이다. 그 내용은 고전 요가를 집대성한 요가의 성자, 파탄잘리의 저서 '요가수트라'에 언급된 아쉬탕가(Ashtanga)에 쓰여있다. 아쉬탕가는 Ashta(eight)와 anga(limbs)가 결합된 산스크리트어로, 요가 수련에서 궁극적인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여덟 단계의 수행법을 의미한다.
깨달음에 이르는 여덟 단계*
마음이 고요하다면 자신의 아름다움은 그 안에서 투영되어 보여질 수 있다. 요기는 꾸준한 정진으로 욕망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그 마음을 안정시킨다. 요가의 8단계는 그 방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 여덟 개의 수행법들은 나무의 가지들처럼 몸통에 연결되어 있어서 의식적으로 야마와 니야마를 수련하게 되면 나머지 수행들을 자연스럽게 계발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야마는 바른 세상의 법칙으로 대외적인 대상을 다루며, 니야마는 바른 삶의 법칙으로 내면적인 대상들을 다루는 데 있어 필요한 지혜이다.*
자제. 하지 말아야 할 것
Ahimsa (아힘사): 비폭력, 모든 존재에 대해 해치지 않는 태도
Satya (사띠야): 거짓말하지 않음, 진실을 말하고 행동하는 것
Asteya (아스떼야): 도둑질하지 않음, 남의 것을 탐내지 않음
Brahmacharya (브라마짜르야): 절제, 삶에서의 절도와 자제, 에너지의 보존
Aparigraha (아파리그라하): 무소유, 집착하지 않는 태도
준수. 해야 할 것
Shaucha (샤우짜): 청결, 내적 및 외적 순수함
Santosha (산토샤): 만족, 현재 상태에 대한 감사
Tapas (따빠스): 자기 수련, 인내와 열정
Svadhyaya (스와디야야): 자기 탐구, 성찰과 학습
Ishvara Pranidhana (이슈와라 쁘라니다나): 신성에 대한 헌신, 신에게 모든 것을 내맡기는 태도
요가의 본질적인 목적은 몸과 마음에 누적된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않은 요소들을 정화하는 데 있다. 이러한 불순물들은 인간의 고통과 괴로움의 근원이 되는 정신적, 감정적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무지로 인해 자아와 물질세계에 집착하게 되며,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려는 욕망이 커질수록 더 큰 고통과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규칙적인 요가 수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내면의 평화에 가까워질 수 있다.
요가수트라 제2.28절
요가의 여러 지분들을 실행함으로써 마음의 불순물이 소멸할 때, 식별지에 이르는 지혜의 광휘가 있다.
For by the sustained practice of the accessories (steps) of yoga, the impurities are destroyed, and enlightenment of wisdom reaches discriminative knowledge.
요가를 하는데 갖춰야 할 이 태도들은 애써 지켜야 하는 딱딱한 규율이기보다는 마음을 알아차림으로써 따라오는 씨실과 날실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가와 명상을 하다 보면 평소엔 보이지 않던 욕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 욕구들을 알아차림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폭력과 거짓, 탐함과 욕망, 집착을 인식하는 도구가 되었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상황을 떠올려보자. 나는 한 번씩 재미를 위해 사실을 과장하는 습관이 있었다. 말을 하고 있는 나를 매 순간 알아차릴 수 있다면 거짓말을 할 때 일어나는 마음의 동요를 느낄 수 있고, 그 느낌이 발달할수록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 않게 해주었다.
수업시간에 가장 많이 올라오는 욕구는 기록에 대한 집착이었다. 배우는 내용이 값질수록 글로든 음성으로든 사진으로든 남기고 싶었다. 여행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신기한 광경을 바라볼 때면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이러한 행동은 그 순간 눈앞에 놓인 행복을 핸드폰 화면 속에 가둬놓곤 했다. 사진을 남기려 하는 욕구를 관찰해 보면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깔려있었다. 보여주고픈 욕구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근원이 된다. 이러한 욕구가 생길 때면 욕구로 인해 일어나는 몸의 감각을 알아차리고, 그 욕구를 내려놓으며 더욱 현재에 집중하려 했다.
* 참고도서
1. 요가수트라 _ 파탄잘리
2. 요가디피카 _ B.K.S. 아헹가
3. 요가, 존재의 휴식 _ 류현민
4. 야마니야마, 평화로운 삶을 위한 요가의 길 _ 데보라 아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