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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Oct 13. 2023

사색 공원

수원 광교산 여우 길에는 사색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명칭은 사색 공원이지만 공원에는 무언가를 사색할 수 있도록 조성해 놓거나 무언가를 장식해 놓은 것도 없다.


사무실 출퇴근길에 그 공원을 지나가지만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무엇 하나라도 곰곰이 생각하고 돌아보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살아가는 신세다.


사색은 조용한 곳에서 깊은 생각에 잠겨 이루어지는 행위다. 그런데 산자락 꼭대기에 사색 공원이란 간판을 달아 놓고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색을 하라는 것인지 그냥 지나가라는 것인지 판단을 못하겠다.


요즈음 주변에 조용하게 사색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사색은 아침에 산책하면서 하는 것이 좋다. 아침은 밤새 잠을 자고 난 상태라 마음이 개운하고 머리가 맑아 사색하기에 좋은 시간이다.


시험에 대한 공부도 저녁에 하는 것보다 이른 아침에 하는 것이 머리가 맑은 생태라 속도감이 붙는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도 저녁보다 아침에 일어나 두 시간 정도 읽으면 이해는 물론이고 읽는 양도 많아진다.


사색이 아닌 생각은 현재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에 대한 천착이다. 그것을 통해 하나의 주제를 정해 깊은 생각의 바다로 들어서는 것이 사색이다.


사색은 어떤 것에 대하여 깊게 헤아려보는 것이다. 사실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려면 주변의 사소한 것에서 벗어나야 온전하게 집중할 수 있다. 차나 사람 소리 그리고 공사장에서 들려오는 소음 등 잡다한 소리가 들려오면 사색은 방해를 받는다.


내가 사색하는 대상은 삶의 문제나 아이들 교육이나 직장 동료와 갈등 그리고 삶에 대한 성찰 등 다양하다. 물론 사색은 사색으로 끝나기도 하고, 사색을 정리해서 글로 나타내기도 한다.


사색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사색한 자의 몫이다. 따지고 보면 사색은 머릿속을 맑게 정리하는 여행의 한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생각은 막연하게 대상을 그리면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는 것이지만 사색은 생각보다 좀 더 깊게 들어가 철학적인 사유를 바탕으로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내는 모태의 근원이다.


사색도 일종의 마음을 수련하는 과정이다. 우리나라 보다 일본에는 명상수련원도 많고 명상을 하러 수련원을 찾아가는 사람도 많다. 사색과 명상이 등장하는 것은 먹고사는 문제를 벗어나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행위다.  


내가 광교산 자락의 사색 공원을 지나가면서 사색하는 것은 주로 글쓰기와 관련한 고민이다. 글을 마음 가는 대로 편하게 쓰고 싶은데 잘 되지 않아 생각만 깊어간다.


전철을 타고 출퇴근길에 책을 읽으면 다양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생각을 모아 출근해서 잭상에 앉아 컴퓨터 자판기를 두드리면 감정이 무뎌지고 생각이 사라진다.


사람의 감정은 나이를 따라 점점 무뎌지고 더뎌만 가는 것 같다. 그리고 세월 따라 기억력이 감퇴하면서 생각보다 마음만 앞서고 사색을 통한 변변한 성과물을 내놓지도 못한다.


누가 나를 채근하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빚지고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찬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차면 마음만 바빠지고 감정은 메말라가면서 글이 가는 길을 찾아가지 못한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무언가를 써야만 하는 압박감도 없다. 그저 무언가를 써보려고 노력하는 마음뿐이다. 글을 쓰는 행위를 지속하는 것도 사색의 일종이자 결과물이다.


하루에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해서 매일 사색도 하고 글도 쓰며 살아가고 싶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하나의 주제를 정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글쓰기에 몰입해보고 싶다.


어쩌다 광교산 사색 공원을 들먹이다 사색을 통한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에 다다랐다. 글의 시작이 사색이듯 생각이 머릿속에서 갈래를 타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길로 들어서고 가고 싶지 않은 여울목으로 빠져든다.


가끔 맑고 향기로운 산문을 만나 읽으면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 좋은 감정과 생각을 모아, 사색을 거쳐 옮기는 것이 글쓰기다. 


매일 사색 공원을 지나가지만 어떤 날은 사색 공원이란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사색 공원이란 간판을 또렷이 인식하며 가는 날도 있다.


사색은 장소가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영적인 행위다. 사색 공원에 가면 사색이 잘된다는 소문이라도 나면 아마도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사색할 수 없는 장소로 변할 것이다.


무릇 사색은 고요함이 전제될 때 시작된다. 더불어 아침이나 저녁에 홀로 산책하는 시간에 진정한 사색이 이루어진다. 사색은 삶에서 해결하지 못한 실타래를 제공하거나 굴곡으로 엮인 삶을 풀어내는 근원이자 바탕이다.


사람은 고독한 존재다. 그 고독을 깊게 해 주고 이겨내는 것도 사색을 통해서다. 고독은 유한한 존재에게 부여한 고통의 상징이다. 그 고통을 극복하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색을 해야만 한다.


사람은 생각이 많으면 혼란만 불러일으키지만 사색은 많이 할수록 혼란이 아닌 마음을 명징하게 정리해 준다. 오늘은 모처럼 퇴근길에 사색 공원을 지나가면서 사색을 통해 계절의 바다를 건너가는 여행이나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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