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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Nov 03. 2023

승화된 만남

인생은 어머니와 만남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성장 과정에서 다양한 만남을 통해 삶이 풍부해지고 성숙해진다. 어떤 만남이든 희로애락을 동반한다.


피천득의 ‘인연’처럼 아니 만남만 못한 만남도 있고, 일평생 만남을 그리워만 하고 만나지 못하는 불행한 만남도 있다. 생의 만남에 대하여 법정 스님은 철학적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만으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동물적 나이만 있을 뿐 인간으로서 정신 연령은 부재다. 반드시 어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이 성장하고 또 형성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혹은 사상이든 간에 만남에 의해서 거듭거듭 형성해 나간다.


만난다는 것은 곧 개안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세계가 새롭게 열리고 생명의 줄기가 파랗게 용솟음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비로소 인식하는 것이다. 만나는 데는 구도적인 엄숙한 자세가 있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이러한 문제를 지니고 찾아 헤맬 때에만 만남은 이루어진다. 나 하나를 어쩌지 못해 몇 밤이고 뜬 눈으로 밝히는 그러한 사람만이 만날 수 있다.


만난 사람은 그때부터 혼자가 아니다. 그는 단수의 고독에서 벗어나 복수의 환희에 설레면서 맑게 맑게 그리고 깊게 깊게 승화된다.


사람은 혼자의 힘으로 인간이 될 수 없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 봄에 우리는 무엇인가 만나야겠다. 새로운 눈을 떠야 한다.(법정 스님, ‘만남’)

     

인생의 만남에 대한 법정 스님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찰나와 같은 삶 속에서도 순간순간 만남의 의미를 부여하고 깨달으며 살아가라는 메시지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만남을 통해 인간이 되고 사회인으로 성장하라는 철학적인 뜻이 들어 있다.


초록이 눈부신 유월 초하룻날 햇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노조사무실로 새로 부임한 장관이 웃음을 머금고 부임 인사차 찾아왔다. 정 스님의 말씀처럼 장관을 만나자마자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장관은 사무실에 들어서면서 조합원들과 앞으로 잘 지내보자며 악수를 청했다. 장관과의 첫 만남에 커다란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앞으로 거듭된 만남을 통해 개안이 되고 지금까지 가능하지 않던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조직과 노조의 입장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그려보았다. 만남이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방의 생각과 사상을 읽는 기회를 제공한다. 아무리 만나기 싫은 사람도 일단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고, 진정성도 알게 된다.


만남은 만남 자체에 의미도 있지만 서로 다른 생각과 견해를 좁힐 수 있는 동기이자 기회다. 장관이 노조사무실에 들어와 동료들과 무슨 말을 나누었는지 함께 있는 사람들 모두가 웃고 있다. 사무실에서 웃는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누군가를 웃기며 즐거움을 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공무원은 공직생활을 하면서 웃음을 나눌 기회가 별로 없다. 가정보다 직장에서의 생활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파안대소를 하며 웃는 것은 직장이 아닌 퇴근 후 식당이나 술자리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오랜만에 동료들이 웃는 모습을 바라보자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아니면 그리워하던 연인을 만난 것과 같이 분위기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공직생활에도 만남은 소중하다. 사람은 언젠가 다른 사무실이나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난다. 인연의 會者定離가 철저하게 작용되는 곳이 공직사회다.


공직생활에서 만남은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모두를 걸고 만나야만 한다. 마르셀은 만남의 철학에서 ‘나’와 ‘너’의 만남을 ‘우리’라는 공동체로 발전시켰다.


법정 스님도 만남은 단수의 고독에서 벗어나 복수의 환희로 설렘을 안고 살아가는 삶의 질적 변화로 승화시켰다. 장관과 노동조합과의 만남도 ‘나’와 ‘너’라는 단독자를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의 승화된 만남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리고 ‘우리’라는 공동체의 배가 안전하고 무사하게 항구에 평화롭게 정착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인생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송두리째 바뀌는 경우가 있다. 유월 초하루의 만남도 그런 만남으로 연결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앞으로 만남을 통해 조직이 화합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것이 나만의 욕심일까. 만남은 누군가에게 기대지 말고 자신이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만 열매를 맺는 과실이다. 아울러 만남의 바탕에는 언제나 믿음과 신뢰라는 씨줄과 날줄이 서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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