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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Nov 24. 2023

공로연수

지난해 연말에 교통사고를 겪고 얼마 동안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교통사고 후 한 달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러는 과정에서 공로연수를 언제쯤 갈까 고민하다 교통사고를 계기로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어쩔 수 없이 연말에 고민하지 않고 내년 연초부터 공수연수를 가기로 직장에 신청했다.


직장에서 공로연수 명령을 받고 올해 초부터 공로연수 중이다. 앞으로 일 년간은 직장에 제출한 공로연수 계획에 따라 집에서 쉬면서 귀촌이나 귀농 교육을 받는 등 미래를 위한 교육과 일을 설계하려고 한다.


공로연수가 좋은 것은 아침에 시간적 여유를 두고 넉넉하게 일어나도 된다는 해방감이다. 그간 직장에 다닐 때는 아침 6시가 되면 눈이 번쩍 떠졌다. 그리고 곧바로 일어나서 직장에 출근해야 했다.


직장에 출근이란 목적이 사라지자 아침 6시에 눈은 떠지지만 그대로 누워있으면 다시 잠이 들면서 늦게 일어나도 된다는 마음에 아침의 시간이 여유로워졌다.


직장에 적을 두고 등지에서 삼십여 동안 밥벌이를 하기 위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열심히 다녔지만 잘 다닌 것인지는 모르겠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에서 서울로 올라와 직장을 다닌 기간은 이제 추억으로 사라졌다.


그에 대한 보상을 마치 공로연수를 통해 받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로연수는 공무원 신분은 유지하면서 일 년 동안 급여는 시간 외 수당을 제외하고 모두 받는다.


공로연수는 사회에 파견을 보내는 것으로, 공무원 신분이지만 맡은 업무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난다. 그 대신 공무원으로서 사회적인 품위유지는 지켜야 한다.


직장에서 맡은 업무는 없지만, 사회인과 똑같이 생활하면서 미래를 위한 계획이나 교육 등을 받으며 일 년을 보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공로연수는 가도 그만 가지 않아도 그만인데 급여가 나오는데 굳이 직장에 다닐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 기간에 사회로 나가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교육을 받으면서 사회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요즈음 생활이 아주 단순해졌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 가볍게 식사를 한 후 한 시간 정도 산책을 나갔다 온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교통사고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고 오면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이후 점심을 먹고 집 청소를 하고 나면 오후 두 시나 세 시쯤 된다. 직장에서 근무할 때는 시간이 그리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지 않았는데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시간은 왜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소소하게 무언가를 하다 보면 점심이고 오후에 출근한 아내가 돌아와 둘이서 무엇을 하다 보면 저녁 시간이다. 직장에서 느끼는 시간과 집에서 느끼는 시간에는 많은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물론 공로연수 초기여서 시간이 빨리 흘러간다는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앞으로도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런 시간을 보내면서 집 옆 도서관을 찾아가서 그동안 써온 글쓰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직장에 다닐 동안에는 사무실에서 글쓰기 하다 보면 직원에게 눈치가 보이고 누군가가 찾아와 차 한잔 마시자고 하면 외면할 수 없어 글을 쓰다가도 멈추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 글쓰기는 누구의 간섭도 간섭하는 사람도 없다. 가족 외에는 나를 간섭하는 사람이 없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있다. 따라서 공로연수 기간에 책도 읽고 글을 쓰는 습관을 들여 일 년을 보내려고 한다.


내가 쓴 글에 문학작품 수준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읽거나 세상을 바라보고 느낀 것을 쓰면서 글에 집중하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갈 것이다.


물론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텅 빈 가슴에 무엇인가 하나의 대상을 놓고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글쓰기에 집중하면 좋은 결과물도 생기지 않을까.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보다는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는 것이 생산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무엇에 대한 수입이 따라오면 좋겠지만 수입이 없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직장에 다니는 기간에는 무엇을 좋아하고 있는지도 무엇이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고 그저 맡겨진 업무를 위해 아니면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공로연수는 직장 상사도 없고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어 자신에 대하여 철저하게 돌아볼 계획이다. 뒤늦은 나이에 적성을 찾아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따르지만 백세 시대를 맞아 앞으로 무구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 이제라도 괜찮은 적성 하나 찾아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공로연수가 시작된 지 일주일이 되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시작을 잘해야 나머지 기간을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 지난해 연말부터 2주 동안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잠만 잤다.


직장이라는 적이 없어지면서 마음의 부담감을 내려놓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낮에도 졸리면 자고 밤에도 졸리면 그냥 잤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침에 산책하고 나서 책상에 앉아 있으면 잠이 쏟아졌다.


그간 직장 생활하면서 잠을 자지 못한 것을 보충한다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2주 동안 정신없이 잠을 자고 났더니 머리가 맑아지고 이제부터 무언가 계획을 세워서 실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부터 노트북을 열고 글쓰기를 시도하려고 한다. 마침 아내가 어제 이마트에서 연초 할인행사가 있다며 노트북이 필요하다고 했더니 하나를 사 주었다.


글쓰기에 필요한 노트북이 준비되었으니 글쓰기 준비는 마친 것이다. 앞으로 글쓰기를 통해 다시 교통사고 이전의 몸과 마음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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