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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Nov 29. 2023

출근길 소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가면 안개를 허리에 걸치고 잠에서 막 깨어난 모락산이 시야로 들어온다. 마치 모락산은 마을을 지키는 장승처럼 해가 떠오르는 동쪽과 남쪽 사이에 턱 하니 버티고 서 있다.


모락산을 바라보며 간단한 운동을 하고 있으면 아내가 부스스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아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운동을 끝내고 지난밤에 일어난 바깥세상 소식을 접하고자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집어 든다.


그리고는 거실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으면 부엌에서 쌀을 씻고 반찬을 만드는 정겨운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 준비가 끝나가면 학교 가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아이들 방문을 열고 들어선다.


큰 아이는 제 엄마보다 키가 커졌고 침대의 이불은 전쟁터를 방불하듯 이리저리 흩어져 있다. 잠자리가 불편한 것인지, 자다가 좋지 않은 꿈을 꾸었는지 잠자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나는 잠자는 아이들을 깨우기 위해 몸에 손을 가볍게 대고 흔들거나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귓속말로 “일어나서 학교 가야지.”라는 말을 건네며 아이들을 깨운다. 


그렇게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 식탁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면서 어제와 오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내가 출근하는 시간과 아이들 등교시간이 같은 날에는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간다.


그런 날은 아이들에게 “학교 선생님이 잘해주니?”, “학교 친구와 잘 지내지?”, “학원 다니는 거 힘들지 않니?” 등 그간 알고 싶었던 궁금증에 대하여 소나기 질문을 한다. 


그러면 두 아이는 웃으면서 말이 없다. 나는 속으로 아이들에게 내가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나 아니면 엄마와 이미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기 때문에 질문이 겹쳐져 대답이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초등학교 교문이 나온다. 학교 교문 앞에서 아이들에게 “친구들과 잘 지내라.”하고 손을 흔들며 헤어진다. 아이들과 헤어진 후 나는 전철을 타기 위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다.


전철을 타러 가는 길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공원을 지나가야 한다. 그 공원에 들어서면 나를 반기는 곳이 있다. 바로 공원사이로 난 작은 오솔길이다. 나는 오솔길을 참 좋아한다. 오솔길이란 말만으로도 정감이 느껴지지만 그곳에서는 왠지 모를 만남과 기다림이 서려 있어서다. 


고향의 오솔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혹여 모르는 사람을 만나도 어느 동네에 사는지, 무슨 일로 어디에 가는지 등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다음에 다시 만나면 반갑다고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지금은 오솔길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면 서로 얼굴을 피하고 자기 갈 길만 찾아간다. 서로 알고 지내는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몰라도 낯선 사람과 인사나 대화를 나누는 것도 힘든 세상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마음의 벽을 쌓고 지내는 것을 좋아하나 보다. 직장에서도 과가 다르면 서로 인사를 나누지 않는다. 사람은 직장이나 종교, 동호인, 학연과 지연 등을 너무 가리고 따진다. 그래서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인사를 나누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 아닐까.


지난 시절 고향에서는 이웃 마을에 살던 사람들까지 알고 지냈다. 요즈음은 아파트의 같은 동에 사는 이웃도, 같은 직장에 근무하는 사람도 알고 지내기 힘든 세상이다. 물질은 풍요로워졌지만 마음은 궁핍해지고 삭막한 세상으로 변했다.


공원의 오솔길을 지나가자 전철역이다. 전철역에 도착해서 전철을 타고 두 정거장 가면 내려야 할 역이다. 그곳에서 내려 계단을 힘들게 올라가면 가로수가 늘어선 길이 기다린다.


사무실로 가는 가로수 길에는 은행나무가 양쪽에 서서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관악산에서 내려오는 대기의 시원함을 느끼며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은행나무 가로수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루의 일과를 마음속으로 정리한다. 오전에 할 일, 오후에 할 일, 오늘 만날 사람 등을 생각하다 보면 벌써 사무실을 둘러싼 울타리가 나온다.


사무실 울타리에 들어서기 전에 매일같이 듣는 젊은이의 반가운 목소리를 듣게 된다. 아침 인사대신 “출입증을 패용하여 주십시오!”라며 젊은이가 사무적인 목소리를 건넨다.


젊은이의 무뚝뚝한 아침 인사를 받으며 나는 울타리에 들어선다. 청사 울타리에 들어설 때마다 옷깃을 여미고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짐한다. 오늘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않고 참고 웃으면서 지내자. 


오늘이란 하루의 역사를 짊어지고 출근하는 이 길이 설산을 걷는 고행의 길이 되었든 스트레스를 받는 고통의 길이 되었든 새로운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비록 조선시대에 가마를 타고 등청하는 선비의 길만은 못하지만 아침에 출근하는 길은 내 마음을 가마에 태우고 가는 길이다. 두 어깨에 가문의 영광을 둘러메고 등청했던 선비의 기상만은 못하지만 나는 가족과 국민과 국가를 위한 기상을 품고 출근하는 길이다.


오늘 아침에 걸어온 출근길은 어제도 걸었고 내일도 걸어가야 할 길이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가고 걸어오지만 순간순간 만나는 사람의 얼굴과 숨결만 달라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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