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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Dec 23. 2023

영혼의 무게

내 영혼은 어떤 모습이고 또 무게는 얼마나 될까. 그저 영혼이란 사람의 그림자를 따라 떠도는 바람 같은 존재일까 아니면 현존하는 모습 그대로 태양의 그림자가 되어 나를 따라다니는 형상일까.


사람으로 태어나서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삶의 의무이자 빚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순서 없이 다가오는 시간이란 기나긴 여정이 아닐까.


지금의 내 영혼이 가벼워지려면 몸에 지닌 것을 하나하나 내려놓는 것이 정답일까. 가슴에 품은 욕심도 욕망도 내려놓고 본래의 자신 모습 그대로 돌아가는 것이 진실한 삶일까.


세상살이가 점점 여유와 낭만이 사라지고 각박해져만 간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것은 사회적인 행위다. 그런 사회적 행위를 TV나 라디오를 통해 마주하거나 소식을 듣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귀는 세상 밖으로 열려 있지만 들을 만한 소리가 별로 없고, 마음은 안을 향해 닫혀만 간다. 세상살이가 하도 뒤숭숭해서 가슴에 품고 있던 감정을 조금이라도 분출하면 차마 듣기 어려운 말을 듣게 된다.


이웃이나 다른 사람과 말을 나누거나 전화로 상대방과 이야기를 할 때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을 내보이면 곧바로 눈을 부라리며 대든다.


상대방에게 도움이나 칭찬을 하는 소리를 들려주면 웃음을 내보이지만, 반대로 비판을 하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들려주면 입에 담지 못할 험담이나 욕설을 듣게 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생존경쟁의 법칙이 철저히 작용하면서 흘러간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고집을 내세우면 남들보다 뒤처지고 버려야 할 유산이 되어 버린다.


문명의 이기인 과학과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면 미개인 신세로 전락한다. 사람의 몸에 익숙한 것을 버리려면 몸이 저항하고, 낯선 현재의 것을 좇자니 몸이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나마 문명화된 이기를 근근이 찾아 누리려면 주변인에 머물지 말고 진화라는 바람에 맞서 살아가야 한다. 몸은 언제나 익숙한 삶의 방식을 원하는데, 몸에 익숙하지 않은 낯선 것을 만나면 왠지 서글퍼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나 생명이 누리는 시간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채무다. 사람은 시간에 의해 태어났듯이 언젠가는 시간에 의해 영원히 사라져야 할 운명이다.


지금 내 영혼의 무게만큼 현재라는 시간을 제대로 누리며 살아가고는 있는 것일까. 먼 훗날 언젠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영혼이라지만 과연 지금의 영혼은 어떠한 모습일까.


그저 추하지 않은 모습과 세상 물정에 밝지 않은 그런 영혼으로 남게 되기를 바라고 더 맑고 밝은 모습으로 다가오는 순간과 시간을 맞이하며 삶을 사랑하는 고독한 영혼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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