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상역 Mar 10. 2024

머리 염색

요즈음 한 달에 한 번은 쑥쑥 자라는 흰머리를 염색하러 이발소를 찾아간다. 사십 대 중반부터 머리 가르마 부분을 시작으로 흰머리가 하나둘씩 생겨나더니 어느새 머리 대부분이 허연 눈 밭으로 변해버렸다.


내가 굳이 흰머리를 까맣게 물들이는 것은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서다. 물론 직장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염색하는 것을 고려해 보겠지만 아직은 나이도 있고 해서 매월 행사처럼 염색하러 간다.


어머니에게는 두 분의 자매가 계신다. 한 분은 충북 진천 백곡 갈월리에 다른 한 분은 부산 동래구 철산동에 살고 계신다. 언젠가 부산에 업무차 출장을 갈 일이 있어 업무를 보고 나서 부산 이모 집에서 하루를 묵고 온 적이 있다.


그날 저녁에 이모부와 이모와 함께 셋이서 식사하면서 이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모의 머리카락이 나이에 비해 유난히 검게 보여 “이모도 염색하세요?”라고 묻자 이모는 “말도 마라. 염색한 지 오래됐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니! 이모는 나이도 드시고 직장생활도 하지 않는데 왜 염색을 하세요?”라고 묻자 이모는 “사람이 추해 보여서…”라고 웃으시면서 말씀하셨다.


가족 간의 관계에서 친밀도를 따져보면 아버지의 형제인 삼촌 쪽보다 어머니의 자매인 이모 쪽과 더 가깝게 지내게 되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도 먹을거리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삼촌은 먹을거리를 챙겨주는 것과 관계가 좀 멀고, 이모는 먹을거리를 직접 챙겨줄 수 있어 친밀도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날 부산 이모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염색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모가 “나는 머리를 염색하면 일주일 동안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아니 왜 주사까지 맞아가며 염색을 해요?”라고 묻자 이모는 “말도 마라. 머리를 염색하면 온몸에 옻이 벌겋게 오른다.”라고 하시면서 “너는 염색을 해도 괜찮나?”하고 물으셨다. 내가 “저는 염색해도 옻은 타지 않아요.”라고 말씀드리자 이모는 “그럼 다행이네.”라고 말씀하셨다.


직장에 다니면서 염색할 때는 사무실 내 이발소에 가서 염색을 한다. 이발소에 가서 염색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직장 동료들은 젊게 보인다거나 얼굴색이 달라져 보인다고 칭찬을 해준다.


사람은 옷이나 머리 염색 등에 의해 나이와 얼굴이 달라져 보인다는 것이 그저 신비스럽다. 옷이나 염색이 사람에게 마술을 부리는 것처럼 작용한다. 


그런데 머리 염색을 한 젊은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못한다. 머리를 염색하고 나서 매일 아침이면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과가 되어간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흰 머리카락이 얼마나 자랐는가를 점검하고 확인하기 위해서다. 머리를 염색하고 나서 일주일쯤 지나면 뿌리부터 흰 머리카락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렇게 한 삼 주 정도 지나면 흰머리가 좀 올라오고 한 달쯤이면 흰머리가 많이 올라와 반백의 머리로 변한다. 그때쯤이면 염색할 날짜를 잡는 것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언제쯤 이발소를 찾아갈까. 다음 주에 내부나 외부에서 회의나 행사가 없는지, 또 누군가를 만나서 해야 할 일은 없는지 등 이것저것을 헤아려가며 날짜를 잡아 이발소를 찾아간다.


내가 머리 염색을 하는 이유는 나이를 젊게 보이고 싶지도 몸을 꾸미고 싶어서도 아니다. 물론 나이가 젊어 보이면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에 좋기는 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를 만나 회의도 하고 이야기도 나누어야 한다.


조직 내에 있는 사람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보다 조직 외의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눌 때는 조심스럽다. 내가 하는 업무는 대부분이 조직 외의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서 외부 사람과 회의를 하거나 만날 때는 미리 머리에 염색을 하고 나간다.


그렇다고 조직이나 집 안에서 내게 머리를 염색하라거나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염색을 하는 것이다.


물론 염색을 한다고 일이 잘되거나 풀리는 것도 아니다. 종종 이발소에 가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기분이 좋지만 염색하는 것은 그리 썩 좋지만은 않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다듬고 염색약을 머리카락에 묻히기 시작하면 이상야릇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그 냄새는 마치 수면제를 먹은 것처럼 졸음을 유도한다. 좀처럼 낮잠을 자는 성격이 아닌데도 이발소 의자에 앉아 염색이 시작되면 고개가 저절로 꾸벅거린다. 그리고 염색약이 머리 피부에 묻으면 두피가 가렵거나 근질거린다. 


과천에 근무하던 시절 한 달에 한 번은 청사 내 이발소로 염색을 하러 갔다. 그 이발소에 들어서면 아저씨와 아줌마들이 반겨준다. 이발소에 웬 아줌마들이냐고 의심하겠지만 이곳은 철저히 분업화된 이발소다.


이발소에 들어서면 넥타이를 풀고 겉옷과 셔츠를 벗고 의자에 앉으면 수건으로 목을 둘러 감싸주고는 검은 보자기를 몸에 휘두른다. 이어서 머리카락을 자르고 간단한 면도를 하고 나서 염색을 하고, 머리카락에 염색약이 스며들기를 기다렸다가 머리를 감기고 말려서 빗어주고 얼굴에 로션을 발라주면 끝이 난다.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얼굴 주위에서 칼과 가위를 든 사람이다. 머리카락을 자를 때 가위 소리와 면도하는 소리가 귓전에서 들려올 때면 몸에는 소름이 바짝바짝 돋는다. 그리고 몸의 살결을 따라 면도날이 움직일 때면 소름 돋은 살마저 베어버릴 정도의 긴장감에 심장은 마구 뛴다.


청사 이발소에서 이발과 염색을 마치고 사무실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동료들에게 푸념한다. “아! 언제까지 머리를 염색해야 하나, 염색 안 하고 살 수는 없을까?”하고 노래를 부르면 다른 동료가 한마디 거든다.


“이 선생은 염색할 머리라도 있는 것에 행복한 줄 알아라.”하고 대꾸한다. 그 동료는 앞머리에 머리숱이 없어 염색할 머리카락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가면 사무실은 한바탕 웃음소리로 가득하고 시끌벅적해진다.


그나마 지금처럼 머리카락 염색하는 것에 만족해야 할까. 부산 이모처럼 염색한 후에 옻을 타지 않아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되고, 직장 동료처럼 앞머리가 없는 것이 아니라 염색할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있다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야 하나.


머리 염색할 때마다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던 이모님은 이제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난 시절 부산에 갈 때마다 이모님을 만나서 머리 염색과 관련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추억은 이발소에 가서 염색을 할 때마다 하나하나 떠오른다.   

작가의 이전글 인생은 구름 같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