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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03. 2024

너는 어느 별에서 왔니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우연히 만났다. 남자는 화성에서 잘생긴 용모로 소문이 나 있었고, 여자는 금성에서 가장 미인으로 알려졌다. 어느 날 둘은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다.


지구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들은 화목하고 금슬이 좋은 부부였다. 그러다 아이가 어나면서 가끔 언쟁이 오고 갔다. 우리가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것인데 그 둘 사이에는 꽤 심각해 보였다.


부부간에 언쟁의 원인은 아이를 낳고 보니 아이가 누구를 더 닮았는지 유전자를 두고 옥신각신하며 서로 자기의 별을 닮았다고 주장하면서 골은 깊어졌다.


화성에서 온 남자의 유전자가 우성이든 금성에서 온 여자의 유전자가 우성이든 사람의 유전자는 참으로 오묘하고 신비스럽다. 아이는 부부의 좋은 점만 닮았고 행동거지도 어릴 적 모습과 비슷했다.


주말마다 그들이 사는 보금자리로 손주를 보러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손주의 얼굴을 바라볼 때마다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손주를 바라볼 때마다 손주의 얼굴에서 화성에서 온 사위와 금성에서 온 딸의 모습이 수시로 바뀌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부 앞에서는 "어느 별을 닮아서 더 귀엽고 사랑스럽다."라는 비교의 말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을 하면 화성에서 온 사위가 눈을 찡그릴 것 같고, 금성에서 온 딸이 화를 낼 것 겉 같아서다.


게다가 양가 집안이 모였을 때는 손주에게 할 말도 가려서 해야 했다. 그렇잖아도 자기 별의 집안 인물이 좋고 우수한 유전자를 물려주었다고 주장하는 형국인데 불경스럽게 유전자와 관련한 말을 잘못 꺼냈다가는 두 별의 집안끼리 언쟁이 오고 갈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사람의 몸과 형태와 유전자는 인위적으로 빚어낼 수 없는 의 영역이다. 화성에서 온 잘생긴 남자도 금성에서 온 미인의 여자도 자기들이 손수 빚어낼 수 없는 영역이 사람의 탄생과 관련한 일이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인위적으로 빚어낼 수 있는 존재라면 세상에는 제일 잘 생기거나 예쁜 아이로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영역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자신의 영역이라며 손을 대지 못하도록 금지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어느 부모나 자기가 낳은 아이는 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고슴도치도 함함한다고 자기가 낳은 아이를 보고 예뻐하지 않을 부모는 없다.


화성에서 온 사위와 금성에서 온 딸이 낳은 손주가 분유를 먹다가 이유식을 먹으면서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분유를 먹으며 얼굴을 맞대면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거실을 이리저리 기어 다닌다.


손주가 온몸으로 기어가다 잠시 정지해서 얼굴을 돌아볼 때면 그 얼굴에서 사위와 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때마다 너는 금성에서 온 엄마를 쏙 빼닮았다거나 화성에서 온 아빠의 판박이라는 말들이 튀어나온다.


아이가 배밀이를 하며 엉금엉금 거실을 기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보면 영혼의 넋이 나갈 정도다. 눈썰미가 없는 내 눈에도 손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자 하늘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별처럼 다가온다.


손주도 분유를 먹는 얼굴 이유식을 먹는 얼굴과 가만히 누워 바라보는 얼굴이 각기 달라 보인다. 어떤 모습이나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기어 다니다 얼굴을 돌려 마주할 때면 숨이 멈추고 곧바로 달려가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솟구친다.


그렇게 세상에 태어난 아이가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삶의 기쁨은 배가 된다. 아이의 발달 과정은 어느 날 갑자기 벚꽃이 화려하게 피는 것처럼 갑자기 단계를 훌쩍 뛰어넘는다.


분유를 먹으며 누워있던 아이가 어느 날 뒤집기를 하고 또 갑자기 어느 날 되집기를 한다. 그러다 뒤집기와 되집기를 끝내고 배밀이를 하며 기어 다니는 모습을 바라볼 때면 놀라움과 기쁨의 연속이다.


그런 손주의 모습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내 아이가 자랄 때 저런 과정을 거쳐 자랐는지에 대한 생각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내 아이보다 손주가 쑥쑥 성장하는 모습에서 매일 같이 경이로움과 신비로움을 깨닫는다.


요즈음 손주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르지만 날마다 새로운 날을 선사해 준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어느 별나라를 여행 갔다 왔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쑥쑥 성장하는 모습이 날마다 눈에 들어온다.


그런 변화와 성장의 경이로운 모습을 만나기 위해 금성에서 온 딸네 집을 찾아가는가 보다. 손주가 더 성장해서 말을 할 단계에 이르렀을 때 "너는 도대체 어느 별에서 왔니?"라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그런 손주의 대답이 몹시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저 평범한 수준의 대답이 나오게 될지 아니면 깜짝 놀랄만한 경이로운 대답이 나올지 그에 대한 정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내가 듣고 싶은 손주의 말은 "할아버지! 저는 지구라는 아름다운 별에서 여행을 왔어요?"라는 대답이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 어제까지 피지 않았던 벚꽃이 활짝 피었다. 온화한 봄비가 내리는 날에 벚꽃이 활짝 피었듯이 손주도 화성에서 온 사위와 금성에서 온 딸의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봄꽃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씩씩하게 성장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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