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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19. 2024

모정의 세월

푸른 물결 춤추고 갈매기 떼 넘나들던 곳

내 고향 집 오막살이가 황혼빛에 물들어 간다


어머님은 된장국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고

고기 잡는 아버지를 밤새워 기다리신다

 

그리워라 그리워라 푸른 물결 춤추던 그곳

아 저 멀리서 어머님이 나를 부른다('어부의 노래', 박양숙)


이 노래는 강화도에 사는 어부의 딸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아 부른 것으로 애잔한 멜로디와 함께 맑은 목소리가 돋보인다. 가수의 목소리에는 고향 마을의 노을 진 풍경과 부모님이 기다리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면서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이 담겨 있다.


부모님은 고향을 지키는 영원한 포구다. 고향의 포구를 지키는 어머니는 멀리 떠나간 자식을 그리워하고, 된장국을 끓여 밥상을 차려 놓고 밤새도록 고기잡이를 나간 남편의 귀환을 기다린다.


'어부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따뜻한 감성이 우러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준다. 이 노래 제목은 '어부의 노래'보다 '그리운 어머니'나 '어머니가 나를 부른다'로 바꾸는 것이 어울릴 것 같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누구나 어머니의 된장국을 그리워한다. 막 된장에 집 담장에서 딴 애호박을 송송 썰어 넣고 손두부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서 밥상에 올린 된장국은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이자 사랑이다.


나는 농사를 짓는 가정에서 오남삼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런 대가족을 거느리고 농사를 지으며 매일같이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삼시 세끼를 챙겨주셨다. 팔 남매 중 어머니가 사랑하지 않은 자식이 과연 있을까.


그동안 고향에서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면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학교를 다녔는지를 모르겠다. 팔 남매가 던 고향집은 방이 세 개였다. 안방, 작은 윗방, 건넛방에 여덟 남매가 어디서 자고 어떻게 생활했는지 아련한 시간 속으로 묻혀 버렸다.


유튜브에서 어부의 노래를 들어보면 제일 먼저 어머니기 떠오르고 다음은 아버지 그다음은 된장국이다. 어머니는 팔 남매의 끼니를 챙겨주며 농사를 지으러 논과 밭으로 나가셨다. 그리고 일꾼들 끼니를 챙겨주기 위해 집으로 내려와 새참을 짓고 챙겨서 광주리에 이고 가셨다.


커다란 광주리에 새참을 이고 오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그런 어머니는 힘들다는 푸념 대신 웃으면서 내게 어서 광주리나 받아서 내리라던 목소리가 아직도 귓전에서 아른거린다. 산골짝으로 일꾼들이 먹을 새참을 광주리에 이고 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 밖에 나오지 않는다.


고향에서 살던 시절 논보다 밭이 더 많았다. 논은 모내기나 벼베기와 탈곡 등 몇 번의 큰 일을 하면 끝이 나지만 밭농사는 끝이 없었다. 밭에 가서 김을 매고 돌아서면 풀이 돋아날 정도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논농사나 밭농사의 큰일을 할 때면 마을의 어머니들이 모여 일꾼들 밥을 해서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논이나 산자락까지 걸어서 가셨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다른 일을 해볼 기회나 엿보는 것조차 어렵다. 농사는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일이 끝없이 기다리고 있어 다른 곳에 눈을 돌릴 시간조차 없다.


농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건강한 몸이다. 몸이 아프지 않아야 논밭에 나가 일을 하고 밥을 짓고 자식의 끼니를 챙길 수가 있었다. 그런 어렵고 힘든 일을 어머니는 근 팔십 평생을 해오신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자식 둘 건사하기도 힘들다 하고 삼시 세께 챙겨 주는 것도 귀찮다고 한다. 그런데 힘든 농사를 지으면서 팔 남매 끼니까지 챙기셨던 어머니는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 위대하고 존경스럽다.


'어부의 노래'는 노래가 감상적이고 따뜻하게 들리지만 그 속내에는 고기잡이를 해서 먹고 살아가는 아버지의 고달픈 생활과 섬에서 다른 것은 할 것이 없고 오로지 고기잡이 하나로 살아가는 생의 고단함이 엿보인다.


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지 않을까. 농사나 고기잡이나 회사를 다니는 것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보면 힘들고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단지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가장 어렵고 힘들다고 푸념할 뿐이다.


어머니는 구순의 고개를 넘으셨다. 이팔청춘 열여덟에 고향으로 시집와서 근 팔십여 년을 오지 중의 오지에서 사셨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고향을 떠나서 산 적이 없다. 그 막막하고 무료한 공간에서 평생을 농사지으면서 얼마나 답답하고 고독하고 허전했을까.


그나마 오늘까지 어머니를 버티게 한 것은 팔 남매가 무럭무럭 자라서 자신들 앞가림할 정도로 성장해서 출가시킨 것이리라. 나도 그렇고 형제들도 그렇고 누이나 여동생들도 모두 그러할 것이다.


오늘은 어머니에게 '어부의 노래' 대신 초등 시절 어버이날이면 불렀던 '어머님 은혜' 노래나 목놓아 큰소리로 불러드리고 싶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르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초등 시절 어버이날이면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를 나이가 들어 불러 보니 눈가에 저절로 이슬이 맺힌다. 특히 군대 훈련소에서 조교에게 원산폭격이란 기합을 받아가며 '어머님 은혜"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기합을 받고 일어선 얼굴에는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되어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내 어머니. 부디 강건하고 건강하게 사시고 자식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오래도록 보시면서 평안한 삶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어머니 그간 고생하셨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하시지 못한 말씀을 이 자리를 빌려 대신 전합니다. "여보! 그동안 고생시켜서 미안하고 고마웠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 어머님의 은혜는 평생토록 영원히 잊지 않고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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