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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18. 2024

개구리 우는 소리

새벽에 눈이 떴다

뜬금없는 개구리울음소리

요란도 하다

 

논밭도 없는 이 메마른 동네

어디서 그렇게 울어대나

참, 이상도 하다

 

일어나

가만가만 찾아가 봤더니

부엌의 자동 압력솥에서

열심히 밥이 끓고 있다 


한여름 내내 들판에서

벼들이 집어삼켰던

그 울음들이 뜨거워

다시 토해내는가 보다.('개구리울음소리', 임보)


이 시를 읽으면 시인이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와 일어나서 부엌으로 갔다. 부엌에 나가보니 자동 압력 밥솥에서 밥이 끓는 소리를 개구리울음소리로 치환해서 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을 알 수가 있다.


여름날에 논에서 억척스럽게 울어대던 개구리울음소리를 밥솥이 칙칙 거리며 돌아가는 숨 막히는 소리로 시에 마음을 녹여 형상화한 것이다.  


나도 어젯밤에 시인처럼 논도 밭도 없는 아파트 단지에서 한밤중에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어렴풋이 들었다. 잠결에 소리가 들려와서 개구리울음소리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가만히 누워서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아파트 단지인데 어디서 개구리가 우는 것일까. 아파트 단지에 물을 볼 수 있는 곳은 작은 폭포를 만들어 놓은 곳이나 물고기를 놓아기르는 연못밖에 없다.


그런데 어디서 개구리가 몸을 잔뜩 움츠리고 앉아 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잠결에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 논에 모를 내기 위해 써레질을 끝내고 물을 대면 그곳에서 개구리가 밤이 새도록 울어 댔다. 어떤 날은 개구리 우는 소리가 너무 듣기 싫어 논가로 달려가서 고래고래 그만 울라고 소리를 지르면 잠시 그칠 뿐 뒤돌아서면 바로 울곤 했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도 멀리서 들으면 교향악처럼 정겹게 들려오지만 가까이서 들으면 소음 수준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시골의 텃논에서 듣던 개구리울음소리를 아파트 단지에서 들으려니 좀 낯설게 다가왔다. 


아파트 단지에서 개구리가 우는 것은 아마도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에 이곳이 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봄날은 화사하게 피는 꽃과 새싹이 돋는 나무와 개구리울음소리 등을 통해 소리 없이 다가온다.


밤이 이슥하도록 울어대던 개구리도 한밤중이 되자 들려오지 않았다. 개구리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초등 시절 친구들과 뚝새풀이 우거진 논을 뛰어다니며 작은 막대기를 들고 개구리를 잡던 추억이 떠오른다.


당시 먹는 것이 귀하던 시절이라 개구리를 잡아 버들가지에 뒷자리를 걸쳐 불을 피워 구워 먹곤 했다. 그리고 이웃집에서는 개구쟁이에게 개구리를 잡아 오면 사서 집에서 기르는 돼지에게 삶아서 먹였다.


친구들과 논두렁을 하나씩 골라잡아 회초리를 들고 두렁을 툭툭치고 가면 개구리가 공중으로 펄쩍 튀어 오른다. 공중으로 튀어 오른 순간 개구리가 안착할 곳을 예측해서 온몸을 던져 개구리를 잡았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자라는 동물이란 생각이 든다. 왜 지나간 순간과 시간은 늘 그리움으로 다가오는지 그 이유와 연유를 모르겠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는 신성불가침의 영역인 것 같다.


그렇다고 지난 시절이 행복하다거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그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샘물처럼 지나간 추억이 머릿속에서 돋아날 뿐이다. 그나마 그런 빈약한 추억거리를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가는 것에 자족하고 만족하며 사는 것이 슬프기만 한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구리와 관련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개구리는 여름에 개구쟁이의 놀잇감이고 겨울에는 또랑을 긁어가며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잡아먹히는 대상이었다.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자 엊저녁에 들려오던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개구리가 울음을 멈춘 것인지 아파트 단지 안이 조용해졌다.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 아파트 단지 주변 공원으로 산책을 가는데 작은 폭포에서 개구리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에 울던 개구리인가 확인하기 위해 폭포로 다가가자 개구리가 울음소리를 뚝 그쳤다.


내 삶의 지도를 되돌아보니 개구리울음소리와 친하게 지내던 시절이 대부분인데 도시에 나와 살다 보니 개구리울음소리마저 잊고 지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어젯밤에 낯설게 다가온 개구리울음소리도 우연히 다가와 지나간 계절과 추억을 생각나게 하고 자연의 순환에 따라 찾아온 봄날의 계절 속으로 오늘의 시간에 묻혀 젖어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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