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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24. 2024

강의 여행

여행이란 사전에 자기가 사는 곳을 떠나 유람을 목적으로 두루 돌아다니는 것으로 풀이해 놓았다. 즉 자신이 사는 곳을 떠나 아름다운 경치나 이름난 장소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이 여행이다.


직장을 물러나고 어찌어찌해서 중개사협회에 들어와서 일을 하다 내가 사는 곳을 떠나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한라산을 바라보면서 서귀포 인재개발원에 가서 강의를 하고 돌아왔다.


그간 협회에서 중개사법 개정이나 의원입법 또는 법원이나 경찰서의 사실조회 그리고 국토부에 접수된 민원을 검토하는 작업을 도와주었다. 그러면서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중개사법 해설집을 만들어 700부를 발간해서 회원들에게 배포해 주었다.


그렇게 협회의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지난해 연말쯤 국토교통인재개발원에서 국토부를 통해 협회로 중개 제도를 강의할 수 있는 강사를 선정해 달라고 요청해 왔다.


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에서는 내부 검토를 거쳐 중개사법 해설집을 만든 내게 중개사법을 잘 알고 있으니 인재개발원에서 가서 강의를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어와서 강의를 해 주겠노라고 수락하자 협회에서 국토부로 강사를 선정해서 통보했다.


중개사법은 제정한 지 근 사십여 년이 되어 가지만 변변한 통계자료가 없다. 그런 사정을 감안해서 중개사법 해설집 발간 이후 각종 통계자료를 보완하고 수정해서 중개사법 해설집 개정판을 만들었다.


사실 중개사법 강의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은 없다. 현직에 있을 때 중개사협회 등에 가서 중개사법 강의를 여려 번 한 경험이 있어 인재개발원에 가서 강의하는 것은 걱정하지 않았다.


중개사법 강의를 수락하고 곧바로 중개사법 해설집을 참고하여 강의할 수 있는 PPT 초안 자료를 만들어서 막내에게 보냈다. 그러자 막내는 회사에 다니면서 근 한 달간에 걸쳐 PPT 작업을 해서 초안을 보내왔다.


막내에게 중개사법 강의 초안 자료를 받아 중개사법 해설집과 각종 통계 자료의 확인 등을 거쳐 PPT 수정 및 보완 작업을 해서 강의 자료를 사전에 대충 작성해 놓았다.


그리고 올해 연초에 국토교통인재개발원에서 부동산중개실무과정의 중개 제도 강사로 선정되었으니 강의 자료를 작성해서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그에 따라 미리 작성해 놓은 강의자료를 최종적으로 수정해서 강사이력서와 함께 인재개발원 담당자에게 보냈다.


삶은 여행의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즉 자기 집을 떠나는 순간이 여행이다. 세종에서 서울 집으로 올라가든 고향을 찾아가든 아니면 제주로 강의를 하러 가든 모두가 여행이다. 단지 그 여행을 통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에 따라 여행의 내용과 깊이만 달라질 뿐이다.


인재개발원에서 보낸 공문을 살펴보니 강의가 교육 첫 날인 월요일이고 첫 강의로 잡혀 있다. 어쩔 수 없이 제주는 하루 전에 가야 한다. 드디어 중개사법을 강의하러 세종에서 청주공항으로 자가용을 운전해서 출발했다.


세종에서 청주공항까지는 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청주공항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기 위해 항공사를 찾아가 탑승 수속과 보안 검사를 마치고 2번 게이트 앞에 앉아 타고 갈 비행기를 기다렸다.


공항청사 안 게이트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며 청사 밖을 바라보니 멀리 산자락에서 초록이 물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강의하러 다니기 참 좋은 날이다. 자연은 연초록으로 물들어가고 활주로에서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는 비행기는 연어의 무리처럼 바쁘게만 바라보인다.  


비행기 탑승시간이 다가와 탑승권을 승무원에게 내보이고 비행기 좌석을 찾아가 앉자 잠시 후 비행기가 청주공항을 이륙했다. 그러고 보니 내 삶에서 비행기까지 타고 가면서 강의를 하러 갔던 기억이 없는 것 같다.


남들이 보면 참 대단한 일을 하러 가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청주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한 시간 만에 제주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했다.


비행기를 탈 때 제일 불안한 순간은 착륙할 때다. 비행기가 공중을 날다 바퀴를 내리고 육지에 착륙하는 순간 기체의 떨림과 기체를 멈추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잡으면 몸이 앞쪽으로 쏠리면서 마음이 불안해진다.


제주는 비행기에서 내려 청사를 빠져나오는 순간 육지와 모든 것이 달라 보이고 다른 나라에 온 기분이 들어서 좋다. 가방을 손에 들고 공항청사 4번 게이트로 나가 서귀포로 가는 공항리무진버스에 탑승했다.


공항리무진버스를 타고 가면서 제주를 바라보니 푸른 바다와 우뚝 솟은 한라산과 검은 돌과 제주 고유의 풍경에서 그리운 냄새가 배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제주에는 참 많이 왔다 갔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처럼 업무적인 목적으로 여러 번 온 적이 있고 가족과 함께 여행을 몇 번 온 적도 있다. 그리고 젊은 시절 한 때 법무부 출입국에 근무할 때 직장에 사표를 내기 위해 제주를 찾아왔던 기억이 난다.


제주공항에서 출발한 공항리무진버스에서 한 시간쯤 되어 서귀포 인재개발원 근처에서 내렸다. 오늘은 아침부터 이곳에 오면서 점심을 먹지 않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근처 식당을 찾아가 점심부터 해결했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인재개발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인재개발원 청사에 들어서자 담당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 이름을 묻고는 내가 묵을 숙소 키를 건네주면서 간단한 안내 사항을 설명해 주었다.


손에 키를 들고 5층 숙소에 들어서자 만감이 교차했다. 현직에 근무하던 시절 교육을 받으러 와서 법환포구에 내려가 동료와 회를 사 먹고, 아침 강의 시작 전에 고근산에 올라갔다 내려왔던 일, 강의를 받던 수강생이 단체로 서귀포 시장에 가서 회식을 하던 이런저런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숙소에 앉아 잠시 쉬다가 저녁 시간이 되어 인재개발원 옆 식당을 찾아갔다. 그곳에 가보니 이전에 교육을 받으면서 저녁마다 찾아와서 술 한잔 하던 식당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낯선 식당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에 익숙하지 않은 식당에 들어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들아와 하루를 묵었다. 인재개발원이 제주에 있다 보니 강사에게 숙소와 식사를 제공하고 교통비와 항공비를 지원해주고 있다.


인재개발원도 이곳으로 내려오기 전에는 수원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수원에 있던 시절에는 강사를 구하기도 쉽고 부대비용도 나가지 않았는데 제주로 내려오면서 강사 구하기도 어렵고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인재개발원 주변 산책을 하고 아침을 먹고 강의 준비를 했다. 강의 준비라야 얼굴과 옷매무새를 다듬는 일이 전부다.


강의 시작에 앞서 인재개발원에 근무하는 동료를 찾아가 인사를 했다. 현직에 있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몇 분이 인재개발원에 근무하고 있어 일일이 찾아다니며 인사를 나누자 반가움과 함께 몸은 다시 현직에 근무하던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인재개발원에 근무하는 직원과 인사를 하고 강사대기실로 올라가 강의 시간을 기다렸다. 강의 시간이 다가오자 부동산중개실무과정의 과정장이 찾아와 함께 강의실로 내려갔다.


강의실에 들어가서 과정장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인사를 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나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강의와 관련 없는 인생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나는 강의할 때마다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수강생들에게 글을 써 볼 것을 권유하는 것이다. 업무와 관련한 것이든 취미와 관련한 것이든 글을 써서 책으로 만들어 볼 것을 수강생들에게 말해준다.


이어서 자기가 사는 부동산에 관심을 갖고 살아가라고 한다. 공무원은 직장을 물러나면 연금 외에는 아무것도 없고 직장을 떠나 사회로 나가면 직장의 업무는 더 이상 써먹을 것이 없다.


따라서 자기가 사는 집을 몇 번 사고팔아 은퇴 시점에 자기 집을 은행 빚이 없도록 소유하라고 말해준다. 지금까지 강의를 받으면서 인생에 대한 삶의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는 강사는 없었다.


강사란 오로지 지식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는 것도 강사의 역할이다. 그렇게 세 시간에 걸쳐 중개사법 강의를 끝내고 인재개발원에 근무하는 동료와 헤어지고 청사를 나왔다.


청사를 나와 다시 공항리무진버스를 타고 제주공항으로 향했다. 제주공항에서 이곳으로 올 때와 인재개발원에서 제주공항으로 갈 때의 제주도 풍경이 사뭇 다르고 더 안온하고 포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탑승 수속과 보안 검사를 마치고 청주공항으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렸다. 탑승 시간이 되어 비행기에 탑승해서 청주공항으로 향해 가는데 창밖을 내다보니 비행기가 구름 속에 갇혀 날아가는 것처럼 나도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 마치 꿈속에 갇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사람은 어디에 가서 살든 어느 자리에서 근무하든 근무하는 동안 성실하게 일해야 인정을 받는다. 내가 현직에 근무하던 시절 선배나 후배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모처럼 제주 서귀포까지 찾아가서 강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그런 인연이 작용되어 맺어진 결과란 생각이 든다. 물론 인재개발원에서 강의할 수 있는 자리는 오롯이 나만이 수행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다.


다음의 강의 자리는 기약할 수 없다지만 1박 2일로 제주에 가서 강의를 하고 온 일은 꿈속의 일로 남게 되었다. 오늘 중개사법 강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기회를 준 모든 사람에게 이 자리를 빌려 고맙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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