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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Apr 25. 2024

이름값

이름값이란 세상에 알려진 상태나 정도에 맞는 노릇이나 됨됨이를 말한다. 뜻과 해석은 좋은데 과연 자기 이름값에 걸맞게 살아가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지구에 발을 내딛고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자기의 이름을 달고 산다. 피부색이 다르든 부자든 가난하든 남자든 여자든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름을 짓는 방법은 나라마다 지역마다 인종마다 각기 다를 것이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태어난  월 일 시의 사주를 적어 철학관을 찾아가서 작명다. 물론 철학관을 찾아가지 않고 한자의 횟수 등을 따져 작명하는 사람도 있고 순우리말로 작명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아기에게 작명을 해주는 것은 아이의 존재를 드러나게 하는 징표이자 생명을 다른 존재와 구분하고 구별 짓는 신성한 의미가 담겨있다.


내 이름의 작명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는 부모님에게 전해 들은 적이 없다. 나는 성이 이가이고 이름은 상역이다. 그간 삶을 살아오면서 내 이름을 불러준 적이 수도 없이 많았다.


그러나 아무리 이름을 강조해서 불러줘도 제대로 알아듣사람이 드물었다. 이름을 상대방에게 불러주면 대부분 상협이나 상혁으로 알아들었다.


지난해 딸이 손주를 낳았다. 손주가 태어나자마자 이름을 어떻게 작명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내 이름과 관련한 갖은 사연을 겪은 터라 손주의 이름은 남들이 부르기 쉽고 알아듣기 쉬운 것으로 짓자고 다.


어느 날 딸이 철학관에 다녀오더니 학관에서 보내준 이담(吏譚), 예준(藝準), 노찬(嚧贊), 유안(裕侒), 루이(屢利) 등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카톡에 올려주었다.


그리고는 철학관에서 이름을 작명할 때는 성씨별로 써야 할 수리격이 따로 정해져 있으니 자기가 보내준 한자 이름이 최선이라며 그중에 하나를 선택해서 지으라고 했단다.


찰학관에서 보낸 쪽지를 자세히 살펴보니 아기의 사주 즉 태어난 연 월 일 시와 오행(목 화 토 금 수), 이름에 대한 수리와 해설을 풀어놓은 것이 적혀 있었다.


양가 가족은 손주의 이름을 두고 각자 생각해 둔 것과 철학관에서 보내준 이름을 보고 생각나는 대로 이것저것 거론했다. 그러더니 딸은 시댁은 이담이로 친가는 유안으로 의견이 갈라졌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나는 딸이 철학관에 가기 전에 이담이란 이름을 머릿속에 생각해 두고 있었다. 단지 이름의 한자를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하는 것에 고민하고 있었다.


아내는 유안이란 이름이 좋다 딸에게 유안으로 짓자고 주장하고 나는 딸과 사위에게 이담이라는 이름이 부르기도 좋고 알아듣기 쉽다고 주장했다.


손주를 두고 딸네와 작명이 오고 가면서 양가가 송파의 한 식당에 모여 이담과 유안을 놓고 거수까지 했으나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딸과 사위는 이담이로 정해서 구청에 출생신고 했다는 연락이 왔다.


사람의 이름은 누구나 부르기 쉽고 알아듣기 쉬운 것이 좋다. 특히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다문화 시대에 외국인이 이름을 부르는 것에 부담이 없고 알아듣기 쉬워야 한다.


오늘 손주 이름의 작명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제 삼아  글로 남기는 것은 나중에 손주가 커서 자기 이름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되었는지 소중하게 알아 두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손주의 이름은 양가 가족의 오랜 논의 끝에 '이담'으로 정했다. 이름을 정하고 나서 손주의 이름을 큰소리로 몇 번을 불러보았다. "이담아!" "담아!" 참 부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 이름이란 생각이 든다.


손주가 커서 이름값을 하는 참된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이담'이란 이름은 가볍지도 않고 부르기도 좋고 누구나 알아듣기 쉬운 이름인 것 같다. 


사람은 자기 이름의 작명 과정을 알아야 한다. 작명도 태아처럼 고통과 고민을 통해 드러나는 탄생의 비밀이기 때문이다. 자기 이름의 탄생 과정을 제대로 알아야 자기 이름을 사랑하고 부르게 된다.


철학관에서 보낸 쪽지에는 '이담'이란 이름에 대한 해설을 "온화하고 선량하여 순리로운 수리로써 평생 행복하게 산다."로 풀이해 놓았다.


종종 유튜브에서 점집 무당이 종이쪽지에 적힌 사람의 사주와 이름만 보고도 그 사람의 팔자와 운명을 말하는 것을 시청하곤 한다.


사람의 사주와 이름만 갖고도 팔자와 운명을 말하는 것이면 이미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팔자와 운명이 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손주는 어떤 팔자와 운명을 갖고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자기 이름인 '이담'이란 꼬리표를 달고 무럭무럭 자라서 국가나 사회에서 이름값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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