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은 녹음이 우거진 신록의 달이다. 봄날에 나뭇가지에서 새싹으로 돋아난 나뭇잎이 어느새 자라서 나뭇가지를 덮을 정도로 둥치가 묵직해졌다.
계절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구름처럼 빠르게 날아간다. 매년 가정의 달 오월이면 고민이 생긴다. 오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들어있지만 내게는 어버이날에 큰딸 생일과 겹쳐서다.
큰딸에게 어버이날이 중요하니 생일을 하루만 미루어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미리 당겨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버이날에 겸사겸사 행사 겸 생일잔치를 해왔다.
그러고 보니 어버이날에 두 딸에게 대접 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채 큰딸 생일만 챙겨주고 어버이날은 오는지 가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지난해 가을 큰딸이 손주를 낳으면서 양가 가정에 많은 변화의 바람을 가져왔다. 변화의 대상은 다름 아닌 집안의 대소사를 손주를 중심으로 결정하는 것과 양가 가정이 손주 양육에 참여한 것이다.
올해는 큰딸이 어린이날에 양가 가족 모두를 잠실의 한 식당으로 초대하면서 구체적인 장소는 약속 당일 전날 통보해 주겠으니 먼저 참석 여부를 알려달라는 연락을 해왔다.
큰딸의 통보를 받고 아내와 참석하겠다고 통보했다. 큰딸이 어린이날에 식사를 초대한 것을 보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과 자기 생일을 한꺼번에 치르자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일이 세 번에 나누어서 할 행사를 한꺼번에 치르는 것도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란 생각이 든다. 드디어 약속 전날에 큰딸은 잠실의 롯데월드몰 3층의 식당 이름을 알려줬다.
지금껏 결혼해서 어버이날에 두 딸과 함께 집 밖에 나가 무엇을 사 먹은 적이 없는데 큰딸은 이번에 큰 결심을 한 것 같다. 양가 가족 모두는 어린이날에 잠실의 한 식당에 모였다.
큰딸은 손주 때문에 조금 늦게 도착한다는 연락이 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큰딸과 사위가 손주를 유모차에 태우고 등장하자 식당은 손주를 서로 안아주려는 쟁탈전이 벌어졌다.
양가 가족은 식사를 하면서 손주를 안아 보기 위해 교대해 가며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양가 가족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손주의 재롱이나 손주가 노는 모습을 바라보기 바빴다.
평소 손주는 낯을 가리는 것 같은데 가족이 모여서 그런지 낯을 가리지 않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안겼다. 그리고는 자기를 안아준 사람을 빤히 바라보며 방긋방긋 웃어주었다.
식당에서 근 두 시간 동안 손주를 안아주고 손주가 재롱떠는 모습을 지커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가정에 아기가 태어나는 것이 이토록 많은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를 미처 몰랐다.
아기 한 명이 마치 온 세상을 밝게 빛나게 하면서 웃음을 선사하고 눈짓과 발짓과 몸짓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아기의 재롱에 양가 가족 모두 넋이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양가 가족은 손주를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큰딸이 사는 곳으로 이동했다. 큰 딸네 집에 도착해서도 손주를 안아보는 것과 손주의 재롱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손주는 자기 집에 도착해서도 연신 방긋방긋 웃으며 가족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렇게 가족에게 재롱을 떨며 웃던 손주가 갑자기 옷을 갈아입히는데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손주의 울음소리를 듣고 손주가 "나 이제 자고 싶어요."라고 외치는 소리로 알아 들었다. 나는 아기 띠를 두르고 손주를 앉혀 가슴에 안고 딸네 집을 나와 우산을 받쳐 들고 단지 내를 돌아다녔다.
그러자 손주는 십 분도 되지 않아 잠이 들었다. 손주를 딸네 집에 데려가 침대에 눕히고 양가 가족은 어린이날 행사를 마치고 큰 딸네 집을 나와서 헤어졌다.
올해 어린이날은 특별한 선물을 받은 보람되고 뜻깊은 자리였다.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는 것보다 손주를 안아보고 손주가 재롱떠는 것을 바라보며 양가 가족 모두가 웃음꽃을 피우며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내년 어린이날에는 손주가 성장해서 어떤 재롱을 떨게 될지 기다려지고 궁금하기만 하다. 올해 어린이날에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준 큰딸과 사위에게 고맙고도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