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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Jun 04. 2024

낯선 곳에서 시작

어쩌다 세종에 내려와 민간기관인 협회에 근무하면서 전세계약 만료로 원룸을 다시 옮겼다. 세종의 다정동에서 도담동으로 원룸을 옮기고 나자 다시 낯선 곳에 홀로 떨어져 시작해야 한다.


일요일 오후에 서울에서 먹을거리 등을 챙겨 내려와 하룻밤을 자고 출근하려니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직장에 근무하던 시절부터 세종에서만 원룸을 이리저리 옮겨 다닌 횟수만 여섯 번째다.


이사 다니는 것은 어쩔 수 없다지만 옮겨 다니는 신세를 생각하자니 가련한 생각이 든다. 가족과 떨어져 첫날 아침 바깥에 나가 산책을 해보니 이곳도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고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다.


세종에서 원룸을 옮기면서 느끼는 것은 빈한한 살림살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마술처럼 자꾸만 늘어난다는 것이다.


세종에 내려올 때는 단출하게 내려왔는데 엊그제 자가용으로 짊을 옮겨 보니 한 번은 부족해서 두 번에 걸쳐 옮겼다. 혼자 지내면서 짐은 최대한 줄이고 지내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짐이 하나둘 늘어만 간다.


요즈음 서울 집도 크기를 줄여 이사 가야 해서 짐을 줄이기 위한 전쟁이 한창이다. 살림살이하는 집의 특성은 집을 넓혀 가면 걱정할 것이 별로 없는데 집을 줄여 갈 때는 짐을 어디에 두고 사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둥지도 한 곳에 오래 머무를수록 짐이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난다. 그러다 이사를 가게 되면 버려야 짐이 산더니처럼 쌓여간다. 사람은 가끔 이사를 다니면서 사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사를 다녀봐야 자기가 얼마나 소유욕이 강한지 물건에 대한 집착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어서다. 최근에 서울 집에만 가면 내 방에 버릴 것이 없는데도 아내는 무조건 찾아내어 버릴 것을 내어놓으라고 협박한다.


세종에서 원룸을 구해 옮겼는데 방을 서로 나누어 사용하는 구조다. 그나마 안방을 사용하게 되어 전에 살던 물건을 버리지 않고 대부분 사용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나는 물건을 소유하면 버리기 싫어하는 스타일이다. 어떤 물건이나 나중에 어딘가에 쓸모가 있기 마련인데 무조건 버리고 나면 어느 날 버린 물건이 생각나거나 찾게 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그런 날을 대비해서 물건을 한 곳에 잘 보관해 두고 사용하면 되는데 보관해 둘 곳이 마땅치 않다고 그냥 버려버린다. 물건은 버리기와 보관을 잘 구분해서 관리하는 것도 살림살이를 잘하는 지혜라고 생각한다.


물건이란 일단 버리고 나면 그 물건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대가를 지불하거나 누구한테 부탁해야 한다.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버리고 다시 그것을 구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낭비다.


오늘은 원룸으로 이사 와서 첫 출근하는 날이다. 아침에 산책을 하고 평소처럼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출근준비를 마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사는 신세를 하소연하는 중이다.


사람은 첫날 첫 출근 첫 직장 첫사랑이란 말을 들으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첫날의 의미는 낯선 곳에서 하룻밤을 자고 나서 맞이하는 날이다. 낯선 곳에서 처음 몸을 움직일 때는 모든 것이 낯설게 다가온다.


마치 멀리 여행을 간 사람처럼 낯선 곳에 떨어져 하룻밤을 자고 나면 모든 것이 낯설고 서툴러서 헤매게 된다. 나는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아침 일찍 출근길에 나서려는 것이다.


원룸에서 직장까지 출근길의 동선이 머릿속에 어느 정도 그려지는데 그 길을 따라 걸어가면 된다. 길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가도 서로 연결성을 갖게 된다.


비록 길을 가다 잘못 들어 이리저리 헤맨다 하더라도 되돌아오거나 우회해서 가면 된다. 길이 갖는 연결성의 특징처럼 세종에서 원룸을 옮겨 다닌 것도 서로 연결성을 띄지 않았을까.


원룸을 이리저리 옮겨 다녀봤자 세종이란 지역적 범위 내이고 설사 층간소음이나 생활의 불편함으로 옮겨 다닌다 하더라도 서로 간의 연결성을 맺기 위한 삶의 몸부림이자 지난한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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