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육상 선수처럼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간다. 저문 해가 바뀌고 새로운 해맞이를 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월도 그럭저럭 끝나간다.
올해는 다가오지 않을 것 같던 무더운 여름도 성큼성큼 다가오고 물러나지 않을 것 같은 따뜻한 봄날도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서 여름에게 계절의 바통을 넘겨주려고 한다.
세종에 내려온 지도 어느덧 일 년 하고 반년이 훌쩍 넘어갔다. 이곳에 내려와 근무하면서 느끼는 것은 젊은 시절에 직장을 다니던 것과 나이 들어 직장에 다니는 기분이나 느낌이나 강도가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 직장에 다니려니 걸리적거리는 것은 덜한데 시간의 굴레인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자리를 지키며 버티는 힘이나 강도가 느슨해져서 그런지 힘들게만 느껴진다.
젊은 시절에는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아니 그 이상의 시간을 앉아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몰랐는데 나이가 들어앉아 있으려니 지루하고 시간이 더디게만 흘러간다.
내달부터 본격적인 여름철이다. 여름의 무더위와 싸우면서 한여름을 보내야 하는데 그 생각만 하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온몸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돋아나는 것 같다.
소나기 멎자 매미소리
젖은 뜰을 다시 적신다
비 오다 멎고
매미소리 그쳤다 다시 일고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가는가
소나기 소리 매미소리에
아직은 성한 귀 기울이며
또 한여름 이렇게 지나 보내는가 (김종길, '또 한여름')
시인이 느낀 무더운 여름날의 정경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여름날에 소나기가 내리다 그치면 매미가 요란하게 울어대고 다시 소나기가 내리면 매미소리가 그쳤다가 비가 멎으면 매미도 다시 요란하게 울어댔다.
그렇게 여름날은 몇 번의 소나기와 매미소리를 반복해서 듣다 보면 한여름이 지나간다. 여름의 무더운 날씨와 풍경을 아름답게 녹여낸 멋진 시란 생각이 든다.
여름이 다가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이번 여름에는 한여름이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은 왔다 갈 것 같은 불안한 생각이 스멀스멀 몰려온다.
여름의 상징은 무더위와 땀과 소나기와 매미소리와 시원한 그늘이다. 이들이 어떻게 뭉쳐지고 흩어지느냐에 따라 한여름을 잘 보낼 수도 비지땀을 뻘뻘 흘리며 무덥게 보낼 수도 있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무더운 여름이 나를 피해 가거나 슬쩍 지나쳐 가기를 바라지만 여름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여름은 어김없이 나를 거쳐 한여름에 땀을 흘리게 하면서 지나갈 것이다.
자연의 계절은 다가오지 말라고 소리쳐 외쳐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다가올 것이다. 사람은 계절의 흐름을 막거나 건너뛰어갈 수 없지만 계절은 버젓이 사람을 막거나 건너뛰어 갈 수 있다.
사람은 언제나 시간과 계절에게 어쩔 수 없이 이끌려 가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자연의 흐름 속에서 봄의 정취도 무더운 여름도 단풍의 계절도 느끼는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는 말처럼 무더위를 피할 수 없다면 한여름 속에 뛰어 들어가 땀을 뻘뻘 흘리며 더위를 즐기면서 보내는 것도 무더위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방법 중에 하나다.
앞으로는 오늘 아침보다 더한 무더위가 매일 같이 펼쳐지겠지만 그날이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루빨리 다가와서 무더위와 신나게 싸워가며 즐기면서 살자는 마음의 다짐을 가져보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