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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Jun 14. 2024

출근길 단상

책상에 놓인 탁상 달력을 바라보니 다음 주에 하지가 들어 있다. 동지에 가장 길었던 밤 시간이 조금씩 짧아지다 하지가 되면 가장 짧아지고 낮 시간은 일 년 중 가장 길다.


하지는 일 년 중 태양이 가장 높이 뜨고 낮의 길이가 길어서 지표면은 태양으로부터 열을 많이 받게 되고 그 열이 쌓여서 하지 이후로는 기온이 상승하여 몹시 더워진다.


오늘은 아침인데도 출근하는데 더워서 등에 땀이 나고 숨이 턱턱 막힌다. 아침 햇살이 뜨거워서 건물이나 나무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터벅터벅 걸어왔다.


날씨가 무더운 날에는 누군가 지나가다 어깨를 툭 건드리거나 짜증 나는 말만 들어도 가슴에서 울화통이 확 끌어 오른다. 여름의 무더위가 일찍 찾아와서 그런지 대기의 온도도 아침부터 높이 올라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날이 습하지 않아 땀이 나더라도 그늘이나 시원한 건물 안에 들어서면 땀이 금방 마른다. 날이 더워지자 천변에 핀 꽃과 잡초도 아침부터 시들시들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오늘처럼 무더운 날은 바닷가나 냇가에 가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 최고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물놀이 가는 것을 그리워하고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원두막에 앉아 수박을 먹는 상상이나 하는 신세가 가련하기만 하다.


세종에서 홀로 생활하는 것이 단조롭다. 하루의 일과가 걸어서 원룸과 사무실을 시계추처럼 오고 가는 것이 전부다. 걸어가는 도중에 다른 곳으로 갈 일도 없고 퇴근하다 누군가 아는 사람을 만나기도 힘든 세상이다.


하루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 산책 갔다 와서 출근을 준비하고 집을 나서서 사무실을 향해 걸어가고 사무실에 도착해서 일을 보다 퇴근 시간이 되면 원룸으로 걸어가는 반복의 연속이다.


세종의 원룸과 사무실을 오고 가거나 아침에 산책을 가거나 길을 걸어가다 지금까지 아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모두가 처음 보는 얼굴이고 그 사람들이 어디서 온 사람들 인지도 모른 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신세다.


그렇다고 일부러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 아는 체할 수도 없고 나 좀 봐주세요 하고 먼저 인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나마 유일하게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사무실에 도착해서 같이 근무하는 직원뿐이다.


도시화와 디지털화가 발전할수록 사람들과의 거리는 멀어진다. 도시화 이전 아날로그 시절에는 길을 가다 사람을 만나면 인사를 나누고 어디에 사는지 무엇하러 가는지 등을 이것저것 묻고 지냈다.


그러다 다시 만나면 아는 사람으로 관계가 발전하고 친구나 선후배로 이어졌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런 시절이 아니라서 문명은 발전했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고립되고 소원한 관계로 변해버렸다.


도시화나 정보화로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마음은 넓어졌지만 반대로 사람을 바라보는 안목과 마음은 협소해졌다. 문명은 개인주의화로 자기 가족이나 특별한 인연이 있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공동체 문화가 좋은 것은 익명성 보장이 아니라 밖으로 드러냄이다. 누가 어디를 다니고 언제 결혼하는지 누가 아프다는 소식을 공유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날로그 문화다.


그런데 도시화가 되면서 옆 집에서 누가 죽거나 결혼하거나 누가 아픈지 등에 대한 것은 관심이 없다. 가족의 일을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자기만이 누리는 개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공동체 문화는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구분하지 않는데 도시화가 발전할수록 필요한 것과 불필요한 것을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게 구분 짓고 자신에게 소용이 없는 것은 가차 없이 버린다.


봄날에 여린 싹을 틔워 자란 잡초들이 지금쯤 사람이 움직이거나 걸어가는데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성장했다. 도로나 천변의 잡초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예초기를 든 사람이다.


천변에 잡풀이 무성하게 올라오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무리 지어 예초기로 풀을 깎고 있다. 예초기 돌아가는 요란한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면 천변의 잡초들은 벌벌 떨면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린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은 들여다볼수록 오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잡초도 소중하다고 열심히 기르는데 다른 누군가는 잡초는 베어내야 할 대상이자 민원의 대상이라며 아침부터 예초기로 잡초를 베어 버린다.


매년마다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지만 잡초를 베어내는 사람만 달라질 뿐이다. 넓은 천변의 풀을 깎으려면 한 달 이상은 소요될 것 같은데 대여섯 명이 예초기를 어깨에 메고 풀을 깎는 모습은 바라볼수록 장관이다.


도시를 구성하는 것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탕을 이룬 공원과 천이다. 그 공원과 천에는 수많은 나무와 풀이 자란다. 사람이 살아가는 주건 조건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 그들이다.


사람이 제 아무리 욕심을 내도 나무와 풀들이 조화를 이루는 바탕은 따라갈 수 없다. 계절은 무더위를 따라 성숙해 가는데 내 마음은 무더위와 반대로 몸을 움직이기도 싫은 무료한 일상 속으로 침잠해 간다.


내 앞에서 가는 세월이야 붙잡을 수는 없어도 내일은 오늘과 다른 날을 기대하며 무더위도 덜하고 작은 소망이라도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살아갈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라며 아침의 단상을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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