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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의 봄

by 이상역

매년 오던 꽃이 올해는 오지 않는다

꽃 없는 군자란의 봄이란

잎새 사이를 내려다본다

꽃대가 올라왔을 멀고도 아득한 길


어찌 봄이 꽃으로만 오랴마는

꽃을 놓친 너의 마음이란

봄 오는 일이

결국은 꽃 한 송이 머리에 이고 와


한 열흘 누군가 앞에서

말없이 서 있다 가는 것임을

뿌리로부터

흙과 물로부터 오다가


끝내 발길을 돌려 왔던 길

되짚어갔을 꽃의 긴 그림자(고영민 시인, '적막')


군자란은 1월부터 3월 사이에 피는데 '난과'와는 관련이 없다. 반그늘 지며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잘 자라는데 몇 년 자라면 분열되어 포기나누기로 번식을 할 수 있다.


시인은 봄에 군자란이 피었다가 지는 과정을 가슴에 고이 간직해 두었다가 시로 풀어낸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봄과 함께 피어난 군자란의 꽃을 바라보며 적막함을 느끼는 것은 아무나 하지 못한다.


언젠가 고향 집에 갔더니 군자란이 몇 개 자라고 있어 어머니에게 화분 하나 가져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가져가라며 잘 키워보란다. 그 군자란 화분을 집에 들고 와서 베란다에 모셔두고 가끔 물을 주었더니 봄마다 작은 꽃을 여러 개 달고는 우아하고 빨갛게 활짝 피었다.


붉은색 기운이 감도는 군자란 꽃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군자란의 특징은 꽃의 우아함과 포기에 의한 번식이다. 뿌리에서 가지를 쳐서 새로운 싹이 돋아나면 떼어내서 새로운 화분에 심고 물을 주면 잘 자란다.


그리고 몇 년 지나 봄이 되면 튼실한 꽃대를 세워 소담한 꽃을 피운다. 군자란은 서양란에 비해 키우기도 수월하고 꽃도 잘 핀다. 까다롭지 않은 시골사람 같아서 화분 위 흙에 물기가 좀 마를 때 물을 주면 봄마다 꽃을 피워준다.


시인도 군자란을 키우면서 꽃대가 나와 꽃을 피운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해서 이미지를 형상화했다. 시인이 느낀 봄처럼 봄은 언제나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군자란의 밑뿌리나 흙속에서 올라온다.


고향에서 가져온 군자란은 포기나누기로 나누어 화분에 키우다가 이사하면서 지인에게 하나둘씩 출가시켰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만 이사 온 곳으로 가져와 올봄에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군자란 꽃이 피지 않는다고 봄이 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봄날에 군자란이 우아하고 소담하게 꽃을 피워야 봄같이 느껴진다. 군자란은 그늘진 곳에서 봄소식을 전해야 하는 의무감에 꽃봉오리를 준비하고 있다.


서양란에 비해 군자란의 꽃대는 두툼하고 튼실하게 올라온다. 봄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처럼 군자란의 꽃대도 고고하고 도도하게 우뚝 솟아나서 자신의 결정체인 꽃을 활짝 피울 것이다.


올해도 군자란 꽃이 그냥 지나치치 말고 꽃을 피워 봄날과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고향에서 피던 꽃만은 못하겠지만 봄날에 꽃을 활짝 피우고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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