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식사 후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천호대로에 들어서자 온 세상이 하얗게 눈에 들어온다. 도로변의 가로수나 산자락에 자라는 나뭇가지마다 흰 눈이 소복소복 쌓여 있다.
봄날에 좀처럼 만날 수 없는 광경이 세상을 밝게 비춘다. 봄날에 대설이 수북하게 내려 흰 눈을 짊어진 나뭇가지가 땅을 향해 축 늘어진 모습을 보니 가슴 한편에서 찬 기운이 아닌 따뜻한 온기가 솔솔 피어난다.
내 가슴에 온기가 송송 피어나는 이유는 흰 눈이 내려 세상을 환하게 비추고 있다지만 가슴에는 따뜻한 봄기운을 느껴서다. 사람은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품고 살아야 한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동안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것은 수없이 많다. 봄꽃을 맞이하거나 사랑하는 연인을 기다리거나 고향에 가는 꿈을 꾸거나 군대에 가서 부모님 면회를 기다리는 것 모두 가슴에 온기를 지펴준다.
사람의 일이 다 그러하듯 오늘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지 말고 가슴에 따뜻한 온기 하나는 품고 살아가자. 가슴에 온기를 안고 출근길에 나서면 세상이 밝아 보이고 매일 보는 아침의 태양도 달라질 것이다.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천호대로 변을 걷다가 상일근린공원 언덕에 올라서자 흰 눈을 뒤집어쓴 나무숲이 환하게 밝히며 나를 반긴다. 봄철에 나뭇가지마다 3~5센티씩 눈을 짊어진 모습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모처럼 흰 눈이 내리자 세상이 밝아졌다. 마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에 들어선 것처럼 흰 눈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교목은 교목대로 관목은 관목대로 흰 눈을 가지마다 이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봄철에 무거운 눈을 짊어진 나무에게 "그 짐을 벗어서 내게 주시오"라고 말을 건네자 나무가 "그대가 짊어진 짐이나 잘 지고 살아가시오"라고 말하는 것 같다.
나무 크기에 따라 짊어진 눈의 무게와 양이 다르듯이 사람도 인생의 깊이에 따라 어깨에 짊어진 인연의 무게와 양은 다를 것이다. 나무가 "당신 어깨에 짊어진 짐이나 덜고 사시오"라는 충고의 소리로 들려오는 듯하다.
명일근린공원을 걸어가는데 출근길 교통이 꽉 막혀서 체증이 심해졌다. 차 속에 갇혀 짜증 내는 운전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에게 가슴에 따뜻한 온기 하나 품고 천천히 운전하면서 가라고 말을 건네주고 싶다.
사람의 일이란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듯이 교통체증에 짜증 내지 말고 흰 눈이 세상을 밝게 비추듯이 그들도 가슴에 온기 하나 품고 여유롭게 출근길에 나서면 마음이 한결 가볍고 밝아지지 않을까.
오늘처럼 흰 눈이 세상을 가득 채운 날은 가슴에 따뜻한 온기를 품고 은은하고 잔잔하게 피우며 살아가자. 그래야 봄날에 찾아온 꽃샘추위도 넉넉하게 이겨내고 출근길에서 일어나는 온갖 짜증과 고통도 가라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