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안에 연지 곤지 바른 새악시
광혜의 푸른 꿈 마다하고
오롯이
흙에 기대어 사는 낭군 만났네.
서툰 호미질과 괭이질
어느덧 익숙한 내 것이 되었고
섬섬옥수 긴 손가락 나목처럼 야위어 가고
가녀린 등줄기 활처럼 휘어만 가네.
가는 인생 고달프다 노래하지만
무너진 등 위로 세월은 덧없이 싸여가고
앞산에서 구슬프게 우는 소쩍새 소리
마음에 외로움만 더하네.
낭군의 언약은 空約으로 굳어지고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 외기러기의 처량한 날갯짓
이내 신세와 다를 바 없네.
나는야 아직도 갈 길이 머-언
농사꾼 아낙네
내 품에서 자란 울음보들
내 곁을 떠난 지 오래고
잡초만 무성한 둥지에서
가는 세월의 고단함
시루봉을 바라보며 달래네.(이상역, '새악시')
이 시는 고향에서 홀로 계시는 어머님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어머니는 궁벽한 고향으로 시집와서 한평생 고향 외에는 바깥세상을 모른 채 사셨다.
팔 남매나 되는 대가족의 끼니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손과 발이 트도록 밭에 나가 김을 매면서 때가 되면 일꾼들 먹을 밥과 찬을 지어 광주리에 이고 비지땀을 흘리며 절안이라는 골짜기로 올라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어머니에게 호강 한번 해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하고, 구순을 넘기신 어머니는 오늘도 홀로 읍내의 주간보호센터에 다니신다.
나는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아버지의 아버지인 할아버지 얼굴을 본 적도 할아버지라고 불러본 적도 없다. 내가 태어났을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광혜원에 사시던 외할머니가 가끔 고향에 오셔서 나를 포함한 형제들을 돌본 적이 있다고 한다. 내가 아기적 일이니 기억에도 없을뿐더러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버지가 군대에 가고 어머니가 아이들을 돌보며 농사짓는 것이 안쓰러워서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도와줄 겸 몇 번 고향에 다녀가셨다고 한다.
유년시절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라면 정서적으로 안정도 되고 삶도 풍성해진다. 부모가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과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은 다르다.
요즈음 순주를 보러 가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낸다. 손주는 태어난 지 십구 개월에 들어섰는데 나이는 만 두 살이 되어간다. 한참 말도 배우고 고집도 부리고 재롱도 피우고 애교도 떤다.
그런 손주가 며칠 전부터 할아버지를 '하부지'라고 부르고 할머니는 '하무니'라고 혀 짧은 소리로 부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란 말이 어려운 지 '하부지'라고 줄여서 부른다.
이순의 중반에 이르러서야 손주에게 처음으로 할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어본다. 손주의 나날이 늘어가는 말솜씨 때문에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어난다.
지금껏 내가 불러보지 못한 할아버지를 손주를 통해 들으려니 새삼 삶의 의미가 새록새록 깊어만 간다. 삶은 아랫 세대를 향해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어 주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한다.
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지만 반대로 손주를 통해 할아버지란 소리와 매일 바라볼 수 있는 손주가 눈앞에서 재롱을 부리니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만 하다.
아마도 손주는 자기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소리의 의미를 잘 모를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성장해서 할아버지라고 부르던 말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자리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비슷하지가 않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절대자인 동시에 넘볼 수 없는 권위적인 자리다.
그에 비해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상대적이고 자주 넘볼 수 있는 자리다. 아버지는 자식에게 엄격한 선을 긋고 대하지만 할아버지는 손주에게 일정한 선도 없고 언제나 오냐오냐 하면서 받아준다.
손주는 일주일 단위로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일 정도다. 오늘은 어떤 말과 행동으로 가족에게 웃음과 놀라움을 선사할까 하는 기대감에 내일이 마냥 기다려진다.
손주에게 '하부지'소리를 듣게 된 것도 어머니가 지금까지 사시면서 베풀어준 사랑의 징검다리가 아닐까. 궁벽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을 키워낸 결실이란 생각이 든다.
내일은 어머니께 손주에게 할아버지란 소리를 들었다고 자랑해야겠다. 그러면 어머니는 무슨 말을 하시고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오늘따라 손주가 부리는 재롱과 '하부지'라고 부르는 소리를 다시 들어보고 싶다. 그리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빈대떡에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그리운 옛 노래나 불러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