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봄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그 영향으로 날씨가 쌀쌀하지만 피부에 와닿는 대기의 온도는 온화하다. 구봉산을 운동 삼아 걸어 올라가는데 마주하는 풍경이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나무의 연초록은 더욱 짙어졌고, 황톳길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고, 새들의 지저귐은 청량한 소리로 들려온다. 봄비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자연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관목의 연두는 초록을 향해 정진해 가고, 교목은 나뭇가지 끝에서 연두색 스케치를 그리는 중이다. 이제야 자연의 숲이 관목의 초록과 교목의 연두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영국의 시인 토마스 엘리엇은 자신의 시 ‘황무지’에서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라며 4월은 가장 잔인달이라고 노래했다.
엘리엇이 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나는 연두의 4월은 사람에게 삶의 꿈과 희망을 주는 달이라고 생각한다. 4월은 뭇 생명의 탄생과 존재를 알리는 기쁨의 달이다.
구봉산 등산을 마치고 도로를 건너 승상산을 올라가자 청설모가 나무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반겨주고 그 옆 계곡에서는 고라니 한 마리가 나 때문에 놀랐는지 산자락을 향해 껑충껑충 뛰어간다.
승상산 정상에 올라가 호흡 한번 크게 내쉬고 잣나무가 우거진 비탈진 길을 내려가는데 이번에는 장끼가 "푸드덕푸드덕" 거리며 건너편 계곡을 향해 날아간다.
지금 주변에는 목련꽃, 개나리꽃, 진달래꽃, 벚꽃이 울긋불긋 화려하게 수채화를 그려간다. 마치 봄꽃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산자락과 도로가의 덤불숲에서 자기가 가장 예쁘다고 흰색과 분홍색과 노란색을 순서 없이 바깥세상으로 뱉어 내고 있다.
자연은 때가 되면 채움과 비움을 반복하며 생명을 이어가는데 연두의 사월은 새로운 채움을 알리는 시작점이다. 사람도 연두의 사월에 자신의 삶이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지 한 번쯤 되돌아보아야 한다.
젊은 시절에는 연두와 초록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다. 초록은 당연히 우리를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것은 지난한 생명력으로 한 해를 살아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 산자락의 초록을 바라보면 색깔이 연두인지 초록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나뭇잎이 바람에 뒤척일 때마다 초록과 연두로 수시로 변하는 것이 그저 경이롭게 바라보인다.
독일의 괴테는 초록에서 경이를 보았노라고 말했다. 초록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거기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닌 농익은 색깔로 다가온다. 아울러 초록은 내 삶에 소중한 보배이자 하루라도 못 보면 안달이 날 정도다.
오늘 아침에 만난 교목의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연두도 시간을 따라 서서히 초록으로 변해간다. 사람도 연두의 사월에 꿈과 희망을 품고 흐르는 세월에 몸을 맡기면 언젠가 초록을 해후하는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